마을 문화공간 '꿈꾸는 달팽이' 지키는 노희숙 씨

서울 오류동 골목에 자리 잡은 북카페 ‘꿈꾸는 달팽이’.

카페에 들어서자 인문학 소모임 회원들 토론 소리가 들린다. 카페 한 켠 주민들이 집에서 남는 물품을 가져다 놓은 곳에서는 한 손님이 아이들에게 필요한 크레파스를 찾아든다. 조금 지나 손뜨개 소모임 회원 두 명이 들어서며 커피를 주문하고, 카페 앞 초등학교에서 하교한 아이는 엄마를 기다린다.

북카페 ‘꿈꾸는 달팽이’는 한 개인의 생계를 위한 카페가 아니다. 2년 전, 노희숙 씨(루시아)와 친구들이 마을의 문화를 만들어 보자며 마련한 이른바 ‘마을 놀이터’다.

6년 전, 오류동 성당에서 환경지킴이 활동을 했던 노희숙 씨는 3년쯤 활동하다가 잠시 아이들과 시골의 삶을 택했다. 1년 뒤 돌아왔을 때, 많은 것들이 변했고, 그는 다른 무언가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을 따라 놀이터에 있다 보면, 부모들도 친구가 된다. 4-5명 모인 친구들 가운데 4명이 천주교 신자였다. 그들과 함께 생협 활동, 마을 모임 등을 하고 조금씩 가치관을 공유해 갔다. 그러면서 그들 사이에 같은 바람이 생겼다. “평범한 이들이 자연스럽게 서로를 채우면서 살아갈 수 있는데, 그런 활동이 공간이 없어서 이뤄지지 못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문화를 공유하는 거점이 필요했다. 그래서 그들은 생각을 나누고 삶을 나누고 문화를 만들어 가면서 결국 마을을 다시 살아나게 하는 시작점, 맥이 뛰는 자리를 만들기로 했다.

각자의 생활이 있고, 자금이 드는 문제라서 바로 실행하기는 어려웠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생각했을 때, 서울시가 공간지원공모사업을 진행했다. 안 되면 다른 방법을 찾자는 마음으로 신청했고 다행히 지원을 받게 됐다. 그렇게 만든 공간이 ‘꿈꾸는 달팽이’다. 처음부터 뜻을 함께 했던 친구들은 1년씩 돌아가면서 상근을 맡고, 또 주변의 여럿은 후원자가 됐다.

오류동 골목길 북카페 '꿈꾸는 달팽이'. 마을 문화를 함께 만들어 가기 위한 공간이다. ⓒ정현진 기자

올 한 해는 노희숙 씨가 상근자로 카페를 돌본다.

그는 “유지를 해야 하고, 인건비도 필요하니까 수익구조는 중요해요. 하지만 그보다 가치를 생산하는 것이 훨씬 중요합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르니 부담감이 있었지만, 지금은 의연해졌어요”라고 말한다.

지난 2년간 카페에서는 무슨 일들이 일어났을까?

성당에서 환경지킴이로 교육과 활동 프로그램을 짜면서도 늘 고민했던 것은 참여자들이 원하는 것을 스스로 선택하기 어렵다는 한계였다. 무엇을 원하는지, 어떻게 얻을 것인지가 아니라 옳고 그름의 기준으로 판단하고 선택해야 했다. 그래서 카페 프로그램을 짜면서 가장 우선 순위에 둔 것은 자율성과 모든 것은 “지역의 문화를 만들 주민들의 몫이고, 카페는 단지 자극제가 될 뿐”이라는 기준이었다.

그래도 시행착오는 있었다. 노희숙 씨는 “문턱이 너무 높았다”고 평가했다.

그는 “우리가 주민들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과 주민들이 필요한 것 사이에 체감이 너무 달랐고, 그것을 파악하지 못했다”며, “그것을 깨닫고 문턱을 아예 없애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는 “뭔가를 차려 놨지만 사람들이 카페 안으로 문을 열고 들어오지 않은 것은 단순히 홍보가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것 자체가 상당히 적극적인 행위인데, 정작 문턱이 너무 높았다”고 말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은 카페가 아닌 골목에 장을 펼치는 일이었다. ‘골목에게 말을 걸다’라는 이름으로 카페 앞 골목에서 전시회, 프리마켓, 놀이 등을 진행했다. 다행히 주민들은 호응했고, 비로소 카페 문을 열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른들을 위한 프로그램뿐 아니라 청소년 문화예술기획단도 꾸려졌다.

노희숙 씨는 마을마다 고유한 문화를 만들어 가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며, "그곳 가운데 하나가 성당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정현진 기자

노희숙 씨는 현재 손바느질 모임, 인문 소모임 등이 자발적으로 꾸려져 진행되는데, 이 모임의 지속성이 중요한 것은 누구 한 사람이 아니라 참여하는 주민들의 힘으로 문화가 구성되고 지속되는 순환구조가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카페 앞에 나무 벤치를 만들어 둔 일을 말했다. 마을에 오가는 노인들이 힘들 때, 잠시라도 앉아 쉴 곳이 없다는 의견에 따라 몇몇이 직접 만들었다. 자연스레 그곳은 동네에서 쉼터가 됐다. 노 씨는 이런 것이 마을의 문화를 하나하나 바꿔 가는 것이라며, 그 과정에서 주민들 사이에 소통도 많이 이뤄진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 3년째를 맞는 카페를 어떻게 이어갈지 여전히 잘 모르지만 서두르지 않겠다고 말한다. 그는 “이곳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주민들이 많아졌고 그들과 더 깊은 관계를 맺는 것이 지금은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곳이 어떤 곳으로 존재하기 바라느냐고 묻자, 카페 벽 한쪽에 붙은 글귀를 가리킨다. “누구나 하고 싶은 것을 하는 놀이터”라고 쓰였다.

그는 “이 공간의 사명은 단순하다. 공간을 만들었다고 일방적으로 무엇을 주는 곳도 아니다. 그저 공간일 뿐이고, 이곳에 모인 사람들이 함께 꿈틀대고 실천하고 공론화시키는 일들이 이뤄지는 곳”이라며, “이 공간에서 삶과 생각과 재능을 나누고 그렇게 채우면 관계가 만들어지고, 그것은 또 마을의 관계가 된다. 그렇게 마을은 살면서 공동체성을 회복할 것”이라고 말한다.

노희숙 씨는 또 다른 바람을 살짝 비췄다. 마을에 하나씩 있는 성당이 마을의 ‘놀이터’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그는 “성당 역시 지역 문화, 관계의 거점이 될 수 있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성당이 문턱을 조금 낮추고, 신앙의 여부와 상관없이 지역민들의 삶과 문화를 위한 장을 열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마을 노인들이 오가다 쉴 곳이 필요하다는 제안으로 함께 만들어 둔 벤치. 노희숙 씨는 이런 제안과 논의 과정, 그리고 쉼터가 자리잡은 모든 것이 바로 문화라고 말했다. ⓒ정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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