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11일부터 30까지 경복궁 근처에 있는 자인제노 갤러리에서 판화가 류연복을 만났다. 드림실험교회에서 펴내는 마음공부 잡지 <풍경소리>를 만들어내는 김민해 목사와 동석했는데, 갤러리는 '자연+인간'이란 뜻의 '자인'이다. 작가의 생김새부터 특별해서 카메라를 끌어당겼다.

류연복 씨의 이번 전시회는 올해 초 아랍에미리트의 샤자대학교에서 열린 대한민국 진경산수판화 초대전을 마치고 개최하는 귀국전이다. 아랍에미리트에서 한글을 가르치고, 한글로 된 먹글씨를 통해 작품을 만들었다. "이슬람에서는 화화나 조각이 없다. 문양과 글씨만 발달했는데 그들은 글씨가 그림"이라 했다.

대추리 싸움 때는 류연복 씨가 붓글씨로 작품하는 걸 보고, 문정현 신부가 "그거 나도 해겠다!" 했단다. 얼마후 대추리에 다시 가보니, 문 신부가 종이랑 먹을 준비해놓고 글씨를 쓰면서 하는 말 "잘 안 돼네..."

류연복 씨는 1980년대 벽화운동과 민중목판화운동에 참여했으며, 1988년 창간때부터 1996년까지 <한겨레신문>의 제호와 함께 실린 백두산 천지 판화가 바로 그의 작품이다. 

▲ 류연복 <백두산 천지도> 글씨는 <오륜행실도>에서 집자


류연복 화백은 1984년 대학을 졸업하면서 서울미술공동체를 결성하여 벽화팀 '십장생'의 일원으로 벽화운동을 시작하였고, 1986년에는 정릉에 있는 자신의 집 담에 <상상도>라는 벽화를 그리다 경찰에 연행되었다. 당시 같이 연행된 사람 중에는 사다리 만들어주는 목수일을 하다 벽화의 진달래꽃에 색칠하는 일을 돕던 최병수 씨도 있었는데, 그는 이때 경찰이 직업을 목수가 아니라 화가로 적어 그때부터 화가의 길을 걸었다는 일화도 있다. 

그후 류화백은 민족미술협의회(민미협) 사무국장, 민예총 대외협력국장 등을 거치며 문화운동의 현장을 지키다, 1993년 <그림마당 민>의 마지막 기획전을 자신의 <새싹 키우기 전>으로 치룬 후 경기도 안성으로 삶의 터전을 옮겨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전시회라고 해서 찾아간 길이었는데, 그날 초저녁부터 낮술을 먹었다. 서울식 추어탕 맛도 보고...막걸리를 맛있게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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