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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쇄신의 과제 3. 교구간의 높은 장벽 없애야교회의 민주화-근본적 정체성 회복의 길 6

신자들은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으나 사제들은 안 된다

5시간 내에 모두 이동할 수 있는 99.678㎢의 남한 땅에 15개(군종교구 제외) 교구가 높은 담을 쌓고 있다. 강원도 동해시의 인구는 8만 명인데 같은 시 안에 춘천, 원주, 군종 교구로 분리된 사목구(본당)가 있다.

신자들은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으나 사제들은 안 된다. 같은 하느님 백성으로 합쳐야 하지 않을까? 교구장들의 의지와 결단만 있으면 현행 교회법 하에서도 합칠 수 있다. 신자들과 사제들은 원하고 있지만 결정권자들은 관심조차 없는 것 같다. 절차상의 번거로움 때문일까?

남한 땅의 15개 교구는 지리적인 구분과 행정구역을 참조하여 설정되어 왔다. 1960년대는 남한 인구의 변동이 크지 않아 지역중심의 교구행정에 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47년이 지난 지금 남한 인구의 85%가 도시에 집중되어 지방은 농업에 종사하는 소수 노인들만 살고 있다. 그로 인해 교구간 신자들의 편차는 심각할 정도로 벌어져 있다.

도시로 이주하는 신자들은 10만 명 이상, 사제들은 전혀 이동이 안 되고

서울대교구와 안동교구를 비교해 보자. 교구 면적은 안동이 18배, 지역 인구는 서울이 13배, 신자 숫자는 서울이 30배, 본당 수는 서울이 6배, 사제 수는 서울이 12배 크다. 서울의 큰 본당 1년 예산 4분의 1도 안 되는 안동교구청 예산, 서울대교구의 1년 신자 증가 수는 126,094명으로 안동교구 총 신자 수(45,732명)의 3배다(2006년 통계). 매년 안동교구 교세 같은 것이 3개씩 늘어난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지방교구에서 도시로 이주하는 신자들은 10만 명 이상이지만 이에 따른 사제들은 전혀 이동이 안 되고 있다. 이런 사목행정과 정책은 모순이 아닌가? 교회법 때문인가? 교회행정과 교회법은 효율적이고 능력적인 사목을 위한 것이지 법 자체를 위한 것은 아니다.

현행의 교구, 본당 중심의 행정구조는 16세기 개신교 분열 후에 당시 봉건시대의 지배 형태처럼 주교, 신부 중심으로 제도교회를 강화시켜 더 이상의 분열을 막기 위한 안전장치였다. 교구장은 마치 봉건영주처럼 사제들을 통치하고 있었고, 교구행정은 철저한 지배구조로 이루어졌고 교구 간에도 서로 경쟁하면서 높은 장벽을 쳤다. 그런데 현재는 종교분열의 위험성도 없고, 대부분의 신자들은 건강한 상식과 지식이 있다(봉건시대는 90% 이상이 문맹). 지금은 신자들의 학식, 정보, 경험, 판단력이 성직자들보다 월등히 높다. 21세기가 국가와 민족 간의 장벽도 허물어야만 하는 글로벌 시대로 가고 있지 않은가? 더구나 현재의 한국의 국민의식은 지역-집단 이기주의가 팽배한 상태이기에 교구간의 장벽과 편차를 유지한다면 보편성을 강조하는 교회위상에도 문제가 야기 될 수 있다.

일반사회는 구조조정과 빅딜정책을 쓰면서 방만한 행정의 모순을 고치려고 애쓰고 있는데, 한국교회에서는 15개의 교구청 운영에 소모되는 예산과 인사문제, 7개의 신학교 난립문제 등 산적한 행정의 모순점을 타개하려는 교회의 책임 있는 지도자들(주교들)의 관심은 보이지 않는다. 체념인가? 교구장들 서로가 협의하여 효율적인 방안을 제시한다면 평신도와 사제들은 모두 기쁘게 수용할 수 있는데 말이다! 의제를 위한 진단조차도 안 하고 있다. 아니면 로마교황청의 눈치만 보고 있는가? 한국교회는 한국 사람을 위한 교회이고, 하느님 백성의 공동체이다. 이것이 오늘 우리 시대의 강력한 요청이다.

교구간의 장벽은 교회 발전의 큰 장애

반드시 각 교구간의 행정시스템은 재조정되어야 한다. 한국교회 전체를 위해서도, 로마교황청을 위해서도 그렇게 되어야 한다. 서울교구 시노드의 임원으로 열심히 일한 어느 평신도의 소리가 지금도 필자의 귓전에 울리고 있다. “교구간의 장벽은 교회 발전의 큰 장애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 사람들이 논의한 가운데 가장 많이 나온 의견이, 교구는 그대로 유지하되 사제들을 초교구적으로 이동시켜 효율적인 배치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평신도의 90% 이상 이렇게 요구를 하지만, 교구장님은 관심도 없는 듯 답변이 없습니다. 이것은 충심어린 요청입니다. 안타깝습니다.”

교구간의 장벽이 이런 식으로 존재하는 한, 한국교회는 점점 더 왜소해지고 허약해질 것이다. 1987년 이후 주교회의에서 전국 단위의 평신도 액션단체를 거부한 것도 교구간의 장벽을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함이 아니었던가? 우리 시대 민주주의 발전과정에 통합되지 않는 교회의 전근대적인 체계는 머지않아 박물관으로 가지 않을까? 이것은 기우가 아니라 현실이다.

/안승길 2008.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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