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7일, 104일차 생명평화 오체투지 순례

서울 순례 구간 2일차. 우여곡절 끝에 동작대교 한강 다리를 넘어 강남에서 강북에 도착하였습니다. 모두가 서울을 꿈꾸는 상황에서도 서울은 아직도 부족하다 하고, 높디 높은 빌딩들을 자랑합니다. 하지만 감동 없는 도시의 외형보다 그 사이 이름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나누는 일상의 평화와 희망이 우리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사당역의 화려한 환영인파>
화려한 환영 혹은 우여곡절의 출발. 그리고 동작대교를 통해 한강을 건넌 순례단. 오늘 하루 순례단의 출발과 일정 마무리는 말 그대로 우여곡절의 연속이었습니다. 104일차 일정 출발을 위해 출발지인 사당역에 도착하니, 순례단보다 앞서 순례를 기다리는 것은 수많은 경찰 차량들이었습니다. 도로의 바깥 차선은 경찰차량이 줄을 이어 있고, 영문을 모르는 시민들은 당혹스러운 표정들이었습니다. 진행팀도 이를 어찌 해야 하나 논의를 지속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어제 서울에 도착한 순례단의 행렬이 길고, 경찰의 예상을 뛰어넘은 참가자들의 규모에 경찰이 많이 놀랐나 봅니다. 다행히 순례단의 출발 바로 전에 경찰 차량들은 사라졌지만, 하루 순례 내내 많은 경찰 관계자들이 순례단 행렬을 인도에서 따르는 기이한 풍경이 연출되었습니다. 기도순례조차 일반교통방해죄의 차량 통행을 방해한 행위로 설명하는 경찰 측의 모습이 안쓰럽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순례 발걸음은 어떤 상황에서도 평화롭기만 합니다. 하루 일정을 함께하신 수녀님들도 화계사의 학생들도, 그리고 이를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들도 모두 평화롭기만 합니다.
순례단이 처음 출발하였던 지리산 노고단과 그동안 지나온 경로와 비교하여, 서울은 말 그대로 높디 높은 빌딩 천국입니다. 이른 아침마다 들려오던 새들의 지저귐 소리 바람 소리 물 소리 사람 소리 하나 없이 들리는 것은 차량의 소음뿐이고, 희뿌연 시야 속으로는 빌딩만이 보일 뿐입니다. 그 모습과 소리에 감동을 받았다 말하는 사람이 없는 것을 보면 좋은 모습은 아닌 듯 합니다.

광주 까리따스 수녀회의 박 에밀리아나 수녀님은 “계룡산 참여 후 새로운 마음이 생겼다. 우리 모두가 세상과 화해하며 평화 건설을 위한 취지에 저 역시 세상에 보석하고 희망을 주고 싶었다” 합니다. 에밀리아나 수녀님은 “정부는 눈앞에 것만 바라보고 미래에 대한 비전과 사람들의 행복을 도외시 하고 있다. 사람들이 마음을 비우고 겸손해 진다면 많은 문제가 해결될 것인데, 또 자기 자신을 하나의 존재로 성찰한다면 사람답게 사는 길을 깨달을 수 있다고 생각 한다”고 합니다.

그냥 있을 수 없어 조그마한 도움이 되고자 순레단의 서울 구간에 자원봉사자로 참여하신 김세열 님. "신원사 중악단을 출발한지가 엊그제 같은데 어제는 남태령 고개를 넘는 것을 보고 너무도 감격스러웠다. 오늘도 동작대교를 넘으니 이 또한 감회가 새롭다”고 하십니다.

김세열 님은 “소통의 부재가 가슴 아픈 사회다. 종교간 갈등, 빈부간의 격차, 그리고 가진 자들을 위한 정책 등의 해소를 위해, 깊게는 자기 자신과의 싸움을 위해 오체투지 순례를 한다”고 하시고 “사실 따지고 보면 모든 문제는 경제적 가치관 중심의 욕심에서 비롯된 것 같다. 나 역시 먼저 나를 이기면 남의 시선에 걸림 없어 자유로울 것 같다”고 합니다.

<평화를 두려워하는 세력에 연민을 느끼며>
사당역에서 출발하고 총신대역과 이수역을 거친 순례단. 아침마다 그렇지만, 매번 순례단의 위치를 문의하는 전화들이 많이 오시면서 속속들이 순례단의 대열이 길어집니다. 오체투지 순례에 참여하는 참가자들이 종교인인지 아닌지는 중요한 구분이 아닐 것이다. 다만 오체투지 순례의 취지에 함께 마음을 나누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 자리에 참여하는 분들의 동기는 정말 다양합니다.

"말로 안 되니 말로 안 되니 몸으로 보여 준다(이장섭) / 소통을 위한 기도를 위해(정진서) / 사람, 생명, 평화의 길을 위하여(심상호) / 자기를 낮추고, 남 탓하기 앞서 자기 자신부터 돌아보기 위해서(김위진) / 좀 더 많은 사람이 함께 참여해야 할 것 같아서(박상미. 어제 같은 상황은 평화롭게 몸을 낮추며 함께 가는데 공권력으로 과잉통제를 하는 것은 문제가 있었다) / 스스로를 반성하기 위하여(박정서 수녀) / 너무 분노가 넘쳐 가만히 있으면 사람 노릇을 안 하는 것 같아서(용산에서 사람이 죽었는데 너무나 뻔뻔하고, 이러한 일에 모두 무감각하다. 나도 이런 일이 닥칠지 모르는 일이다(강은숙) / 아집과 집착을 버리기 위하여(김일재) / 나를 위해 너무 소비하고 재원을 사용함을 참회하기 위해(양윤순) / 세상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고 봉사를 하게 해 달라는 기도를 위해(이경민)"

이 마음 그 자체가 기도입니다. 하늘에 사람의 길을 갈 수 있도록 빌고, 땅에 생명의 눈을 가질 수 있도록 빌고, 그 사이에 평화의 기운이 넘치도록 지극한 마음으로 기원할 뿐입니다. 순례에 참여한 사람들의 저마다의 지위고하는 중요치 않습니다. 다만 그 마음이 고맙고 감사하게 기억되고 서로에게 전해질 뿐입니다.

어제의 남태령일도 기억에 남지만, 우리에게는 폭력을 이기는 평화의 마음이 더 중요할 것입니다. 누군가의 폭력마저 처연함과 연민의 시선으로 이겨내고, 평화에 대한 저들의 두려움에서 발로한 폭력을 또다른 폭력이 아니라 평화의 마음으로 이겨낼 수 있는 용기가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우여곡절 끝에 사당역을 출발한 순례단. 오전 일정을 경문고등학교에서 하루 일정을 마치고 이수로터리 고가차도 밑에서 식사를 하였습니다.

<누군가의 삶의 터전을 지나며>
정든 삶의 터전과 공동체를 떠나 새로운 공간에 새로운 시민권을 가진 존재가 되어야 한다.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자본과 권력에 의해 삶의 터전을 강제로 이주당하고, 개인적으로 거부하여도 강제적인 법과 제도를 통해 통해 삶의 공간과 시간이라는 기억을 송두리째 빼앗기고 떠나야 하는 상황. 순례단이 요즘 수도권에서 가장 많이 듣는 주제 중 하나는 재개발 재건축 이야기입니다.

오늘 순례단은 오후 순례 시작과 함께 그 모습을 만났습니다. 순례단이 지나는 맞은편 도로변에는 붉은색 굵은 글씨의 플래카드 걸려있고, 골목에는 빼곡이 플래카드가 바람에 날리고 있었습니다. 그 글자 하나 하나에는 원주민들의 애환어린 삶의 기억들이 있을 것이고, 그곳에서 삶을 가꾸어 가는 주민들의 추억이 있을 것입니다. 그 분들이 가지었을 공포가 부디 삶의 일상성을 회복한 평화로 이어지길 기대합니다.

<한강을 건너다>
경문고등학교 앞에서 오후 일정을 출발한 순례단. 점심 시간 이후 순례단 대열이 급격히 늘어났습니다. 도선사의 혜자 주지 스님께서 많은 신자들과 함께 순례단을 반기고, 오후 일정을 함께하셨기 때문입니다.

혜자 스님은 “오체투지 순례단의 사람, 생명, 평화의 길이라는 주제가 너무 훌륭하다. 마음으로 항상 동참했지만 이제야 왔다. 오체투지는 온 몸을 땅에 던지는 수행방법으로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는 힘을 갖게 된다. 이러한 마음가짐 속에서 실천행이 따른다면 세상을 바르게 이끌 수가 있다"고 하시며, 혜자 스님은 “참 나를 찾으면 사람답게 살수가 있다. 부처님 말씀에 심청정 국토청정(心淸淨 國土淸淨)이라고 했다. 내 마음이 먼저 청정해야 세상이 변할 수 있다”고 강조하십니다.

인도 하나 없는 이수로터리를 포기하고, 동작역을 통해 동작대교로 이동한 순례단. 드디어 한강에 올라섰습니다. 우리 민족의 애환을 곳곳에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며 말없이 억겁의 세월을 흐르는 한강. 곳곳에 비경과 상처를 간직하고, 지금도 오세훈 서울 시장의 웃기지도 않는 운하 계획으로 위협받고 있는 한강. 지리산 노고단을 떠나 금강을 지났던 순례단이 이곳 서울에서 한강을 만났습니다. 한강은 요즘 오세훈 시장의 한강르네상스 계획으로 곳곳에서 몸살을 앓고 있다 합니다.

그 한강을 바라보며 드디어 순례단이 동작대교 위에서 오후 순례를 시작하였습니다. 동작 대교 위로 지나는 바람의 손길에 순례자들의 몸이 휘청이고, 순례단의 깃발은 사정없이 흔들립니다. 바로 옆에는 차량이 손살 같이 달라가고 정기적으로 지하철 차량이 왕복합니다.

자연이 주는 선물인 바람의 손길 한번에도 몸이 흔들리는 연약한 몸이지만, 한 걸음 한 걸음 그리고 지심어린 기도 마음은 흔들림 없습니다. 어린 학생들도 나이든 보살님들도 말없이 순례에 희망의 마음을 보탤 뿐이었습니다. 노란 순례단의 조끼가 동작대교 위를 물들이고 몸으로 써내려가는 것은 고통이 아니라 희망입니다. 누군가를 대상으로 하기도 하며, 세상과 함께 나누기 위한 희망이도 합니다.

"처음에는 세상 아픔에 등 돌리고 있었지만, 지금은 그것을 참회하고 다시 찾고 있는 것 같아 행복하다(이시희)"고 하며, "현 상황이 안타깝다. 나 자신을 돌아보기 위해 왔다. 그동안 촛불을 너무 높게 들었다. 촛불을 낮게 들어 실천하고 그 마음으로 생활하겠다"는 마음 모두 세상을 변화시키는 희망입니다.

오늘 순례는 동작대교 북단 끝에서 시원한 바람 속에 희망을 실어 보내며 마무리되었습니다.

<함께하는 사람들>
- 수브라(프랑스) / 김이수(퇴촌) / 안현(서울) / 정진서(서울)이장섭 외 2명(경인연대) / 이시희, 이경민(대전) / 조재은 외 15명(작은 실천에서 시작하는 어린이 책 진보모임) / 김일재(분당) / 주정숙 외 3명(평통사) / 한근춘(수원대학교) / 이로벨따수녀 외 2명(까리따스수녀회) / 한세진(서울) / 박태화(서울) / 김위진(영주) / 홍주연 외 1명(서울) / 박상미(정의구현사제단) / 이미숙 외 24(화계사 중고등학교학생회) / 강은숙(안산) / 김한기 외 12명(정토회) / 혜자 스님 외 100여명(도선사) / 김세열(서울) / 백연선(대전) 님 등이 참여하였습니다.

<일정 안내 - 변동 가능>

● 5월 18일(월) : 이촌 지하차도 입구(시작) - 용산로 용산2가 국민연금공단 맞은편(남영역)
● 5월 19일(화) : 휴식
● 5월 20일(수) : 용산로 용산2가 국민연금공단 맞은편(남영역)(시작) - 명동성당
● 5월 21일(목) : 명동성당(시작) - 조계사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 안은정(수원), 안찬숙, 김광철(초록교육연대), 일진 스님(운문사), 이세권(서울), 도선사, 까리따스수녀회 등에서 후원해주셨습니다.

* 순례 수정 일정과 수칙은 http://cafe.daum.net/dhcpxnwl 공지사항을 참고 바랍니다.

2009. 5. 17
기도 - 사람의 길, 생명의 길, 평화의 길을 찾아서
진행팀 문의 : 010-9116-8089 / 017-269-2629 / 010-3070-5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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