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3일, 90일차 생명평화 오체투지 순례

오체투지 순례는 희망과 나눔의 한마당이자 축제이다. 감히 '희망'을 꿈꾸는 행위가 허락되지 않는 시대이다. 모두가 어렵고 힘들 때, 희망을 포기하고 싶을 때이지만, 생명과 평화의 작은 무게를 함께 나누길 자청하는 순례자들이 있어 힘을 얻으며 희망을 찾는다.

<부처님도 그러했듯이>
이른 시간. 매일 보았던 아침 시간 정체된 도로를 피하고자 일직 나선 길. 차량의 정체를 예상하고 나선 걸이지만, 무려 5분 만에 출발지점에 도착하였습니다. 출발 시간은 9시인데, 국도변 황량한 공터에 8시에 도착하였으니 진행팀 난감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참가자들도 도착하지 않은 시간, 수경스님이 자리를 펴고 '부처님도 길에서 사셨는데 뭐 어떠냐? 길거리 인생이 그렇지'라시면서 잠을 청합니다. 수경스님은 어제 부처님 오신날 화계사에 다녀오신 이후 몸이 매우 피곤하신 상태입니다.

잠시 후 순례 참가자들이 속속들이 도착하면서 하루 일정이 시작되었습니다. 오늘은 오누이로 의심(?)받은 모자가 함께 참여하고, 멀리 광주에서 오신 참가자도 있고, 예비 부부가 함께 참여하기도 하였습니다. 시간이 조금 남은 시간 참가자들의 모습이 활기차고 밝기만 합니다. 오늘은 날이 화창하였는데, 날씨를 가지고 이야기 하던 전종훈 신부님의 '아이고.. 어제 정말 힘들었다. 뒤에서는 징 울리지, 앞에서는 빗물이 막지..'라는 말에 참가자들 모두 배꼽잡고 웃음을 터트립니다.

화성으로 가는 길부터 아파트 공사장이 유독 눈에 많이 보입니다. 도로 공사 현장도 많고, 전체적으로 공사장이 많이 보입니다. 작년 12월 14일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는 "건설현장에서 망치소리가 울려 퍼질 때 국민은 희망의 소리를 들을 것이고, 정부에서 내놓고 있는 경제위기 극복 비상대책에서 중요한 것은 속도. 모든 국민들이 KTX를 탄 것처럼 속도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전광석화같이 공사를 착수하고 질풍노도처럼 몰아붙여야 한다. 이 대통령에게도 오늘은 낙동강, 내일은 영산강, 한강에서 대통령이 지휘봉을 들고 진두에서 땀 흘리는 모습을 보일 때 국민들이 감동받을 것"이라고 말했다죠. 덕분인지 모르지만 속도전과 망치소리 강조하던 정치는 결국 사람도 죽고 자연도 죽이는 정치를 만들었습니다.

정치가 개념도 없이 시대에 뒤떨어지게 속도전과 해머소리를 강조하는 모양새니, 나라 모양이 공사판으로 돌아가는 듯 합니다. 2008년 12월 기준으로 미분양 주택 물량이 전국적으로 20만호에 달한다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서울로 가는 길에는 어디나 아파트 공사장만 보입니다. 혹여 건설경기를 살리겠다고 또 정부가 미분양 아파트를 국민 혈세로 매입하여 건설사만 살리고 국민은 곡소리 나는 일이 발생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입니다.

<오체투지 순례 축제>
주변이 공사판이든 어떻든 엄마 아빠를 따라 나선 꼬마는 즐겁기만 합니다. 햇살은 따갑고 오전부터 도로 열기로 땀이 흐르건만, 쉬는 시간이면 아이는 민들레 꽃대를 부여잡고 신기해하고, 순례 중에는 자못 어른보다 심각한 모습으로 기도 순례길을 나섭니다.

매주 일요일마다 부부가 참여하였던 이시희 이경님 선생님은 오늘은 자녀들과 함께 길을 나섰습니다. 이 선생님 가족은 "배려는 그 이전에 소통과 이해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우리 사회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 그 중 아이들, 청년들을 먼저 배려해야 한다"면서, "언젠가부터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 해졌다. 이러한 점을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순례 참여 첫날은 정말 어려웠지만 이제 갈수록 편해진다. 여섯 번째 참가하는데, 때마다 다르다. 남은 길도 희노애락을 느끼면서 가고 싶다" 합니다.

오늘 참여자 중에는 앞으로 가족이 될 분들도 있었습니다. 서울 송파에서 오신 이상수님과 동반자분은 서울 송파에서 촛불을 밝히고 있다 합니다. 촛불 1주년이 되는 요 몇일 사이 서울에서만 무려 200여명이 연행되는 일이 벌어졌다는데, 세상이 답답해서 울화통이 난다면서, 오체투지 순례 취지에 동의하여 일부라도 함께 하고 싶어 참여했다는 이 선생님은 "‘촛불’도 이제는 소진된 느낌인데 다시 그 기운을 느끼고 싶었다. 해 보니 편안하고 힘이 나지만 이분들은 매일 어떻게 하나라는 걱정도 앞선다”고 합니다.

이 선생님은 “우리사회는 공정한 룰도 없이 경쟁체재로 치닫고 있다. 나누면 충분히 다함께 풍족하게 살 수 있는데 한쪽은 부를 축적하고, 다른 한쪽은 극빈하게 살고 있는 것을 보면 처참한 마음만 생긴다. 같이 더불어 살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야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이 선생님은 마지막으로 “오체투지는 낮은 곳으로 임하는 마음가짐인 것 같다. 저 역시 다시 촛불을 들고 이 사회가 상식이 통하고 바른 사회로 가게끔 노력하겠다.”고 합니다.

점심시간. 비록 도로변 공터이지만, 자리를 펴고 준비해온 식사를 합니다. 도시락도 있고 김밥도 있고 비빔밥도 있습니다. 마치 소풍 나온 사람들 같습니다. 주변에는 굉음을 내며 달리는 차량이 가득하지만,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는 듯이 웃음소리만 가득합니다. 거기다가 순례 참여자의 오렌지를 이용한 저글링 묘기까지 덤으로 바라보니 영락없이 소풍입니다.

그렇듯이 오체투지 순례는 축제입니다. 누군가는 이 길에서 고통을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분명 축제입니다. 지난 시기 우리가 경험했던 촛불 축제라는 천국의 나날이 지옥의 한철로 변하고, 촛불을 봐도 경기를 일으키는 가엾은 영혼들이 나라를 운영하는 시대에 살며, 국민의 공복이 국민에게 몽둥이를 휘두르는 황당한 모습을 처연하게 바라봐야 하지만, 여기 순례에서는 그 무엇에도 굴하지 않는 희망의 축제 대열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비록 이 길이 느리고 고통어리지만, 그 길에서 우리는 감히 허락되지 않는 희망을 찾고, 생명의 마음과 평화의 몸짓을 함께 나눌 수 있기에 오체투지 순례는 축제입니다.

<따듯해진 도로>
오후 순례길. 아래에서는 손을 대기에도 멈칫해지는 한껏 달구어진 아스팔트의 열기가 오르고, 위로는 햇살이 몸을 관통하는 듯 합니다. 한 걸음 한 걸음 발걸음을 옮기기에도 몸은 무거워지는 시간들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날이 무더워지면서 세분 성직자도 한껏 몸이 무거워지고, 특히 무릎이 좋지 않은 수경스님은 쉬는 시간에 얼음주머니를 이용하여 무릎의 통증을 줄여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오랜 거리를 진행한 듯 하지만, 휴식 공간까지 진행한 거리는 150여m 시간은 10여분에 불과합니다.
그렇게 힘들게 온 힘을 다해 순례를 가던 상황. 화성시 초입의 고가도로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는데, 인근 아파트 베란다에서 '화이팅'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무슨 일인가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한 가족이 순례단을 알아보고 손짓과 큰 목소리를 순례단을 격려합니다. 순례 참가자들 역시 손을 함께 흔들어 인사를 합니다. 작은 몸짓 작은 소리 하나가 때로는 천군만마보다 더 큰 격려인 듯 합니다.

오늘 점심을 준비하신 이호광(대불청 경기지부) 선생님은 “오늘 참여하니 오체투지에서 느림의 미학이 느껴집니다. 빠른 차들이 보이기도 하고, 또 천천히 이동한 것 같은데 어느새 저만큼 와 있으니 느림으로 누릴 수 있는 것이 많은 것 같다.”면서, "만일 부처님께서 계신다면 우리에게 조화롭게 살아가라고 했을 것 같다. 특히 현실적으로 첨예하게 벌어져 있는 개발과 자연보전에 대한 조화를 말씀하셨을 것 같다”고 합니다.

오누이로 의심 받았던 장윤정 어머니와 김준석 학생(고2). 준석 학생은 "엎드리며 오체투지를 하다 보니 머릿속이 하얘진다"고 합니다. 하루의 일정이 끝날 즈음 다시 준석 학생은 "이게 가치 있는 것 같다. 머리 속이 복잡하지 않고 단순 명료해진다"고 하고, 장윤정 선생님은 "생각이 단순해지고 적어도 이시간 만큼은 생명 평화에 대해 생각 할 수 있는 것이 의미 있다"고 합니다.

가족 및 함께 활동하시는 분들과 멀리 문경에서 9시 반에 출발하여, 오후 순례에 참여하신 노석윤(경북 문경시민환경연대) 선생님. 지역에서 4대강 정비사업과 관련하여 단체 토론회 및 모임 등을 통해 공론화 활동을 하고 있다 합니다. 오체투지 순례가 "요즘 세상이 힘들다. 생명 평화를 지킬 수 있는 작은 자리가 됐으면 한다. 사람 생명의 소중함을 많이 느끼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노 선생님은 "1%만을 위한 정책을 펴는 정부가 개발 위주 정책, 삽질 정책을 최우선으로 한다. 4대강 살리기는 운하를 위한 발판이다. 근본적으로 4대강 살리기는 강에 콘크리트 칠을 해서 물줄기를 바꾸는 생태 파괴적인 행위다. 너무 민심을 모른다"고 걱정어린 의견을 주셨습니다.

나승구 신부님은 오후 간담회에서 "어제, 오늘 가면서 저의 화두는 ‘내가 기어간다고 세상이 바뀌나’였다. 세상은 변함없는데 무리가 아닌지, 혹시 하느님의 영역을 넘보는 것이 아닌지. 어제는 비도 왔다. 헌데 우비가 없으면 비가 오고, 우비를 가지고 오면 날씨가 맑았다. 이렇게 알 수 없는 것이 세상인 만큼 어떻게 세상을 즐기는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이치를 알고 얼굴이 환해졌다. 한 순간, 한 순간 내 할 일을 충실히 하는 것이 내 할 일이 아닌가. 또 나약한 것이 인간이라는 것을 알아가는 것만으로 오체투지의 의미는 클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합니다.

그렇게 오늘 하루의 순례도 병점성당 앞에 도착하여 무탈하게 마무리되었습니다.

<길 위의 신부>
축하해주세요. 문규현 신부님께서 1976년 5월 사제서품을 받고 1978년 전북 완주군 고산성당의 주임신부로 부임했으니 오늘로 34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문규현 신부님의 사제서품 34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순례단에 작은 촛불 하나 켜졌습니다.

이날을 축하하기 위해 수경스님이 축하노래를 선창하고, 전종훈 신부님이 함께 노래합니다. 형님신부 문정현 신부와 함께 길위에서 우리 사회의 생명과 평화를 이야기하시는 신부님.

1989년 판문점을 걸어 넘으며, "하느님 아버지, 당신이 오천 년 역사를 통해서 한 민족으로 이끌어주신 이 강토이건만, 분단의 45년을 서러움으로 지낸 오늘 이 시각, 저희는 이 분단을 넘고자 합니다. …… 분단 44년 8월, 이 분단을 어찌해 주시렵니까? 누구라도 제 고장, 제 부모를 찾고자 하는 이들이 자유롭게 이 선을 넘나들 수 있는 내일을 살아갈 수 있도록 축복의 땅이 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했던 신부님. 이제는 묘향산으로 가는 기도 순례길을 나섰습니다.

"교회는 사회 속에 존재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회적 환경을 외면한 채 인간의 구원을 말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잘못된 환경을 바로잡기 위한 것이라면 그것이 '정치참여'라는 잘못된 표현으로 몰아세우더라도 역할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는 성서가 부여한 교회의 사명이기도 합니다."라며, 이 땅에 살아가는 노동자와 농민, 말 못하는 뭇생명과 함께하는 한 길을 걸어왔습니다. 신부님은 새만금의 뭇생명의 죽음에 가슴 아파 수많은 밤들을 잠 못 이루시고, 부안 핵폐기장 건립 반대운동을 통해 재생가능에너지의 중요성을 알리셨죠.

문 신부님은 종교인으로서, 사제로서, 그리고 시대를 살아가는 양심으로, 오늘도 하염없이 머리를 조아리며 "다시 순례길을 떠납니다. 다리 불편한 스님과 늙은 사제입니다. 이 둘이 오체투지, 온 몸을 땅에 내리고 보듬으며 갑니다. 가늠도 안 되게 고되고 하염없이 느린 길을 기꺼이 갑니다. 허나 우리의 고행이 도리어 생명의 길, 희망의 길이 되길 바랍니다. 이 순례가 위로의 길, 용기의 길이 되길 바랍니다. 이 여정이 민족의 길, 화해의 길이 되길 바랍니다."라며, 길을 가고 있습니다.

문 신부님의 기도는 우리 모두의 희망을 위한 기도입니다.

<함께하는 사람들>
- 수브라(프랑스) / 장경훈 / 이영우 신부 외 3명(천주교사회교정사목위원회) / 나승구 신부(신월동 성당 서울) / 장윤정 외 1명(분당) / 임태성(광주) / 정윤심 외 1명(라디오인) / 한근춘(수원대학교) / 최정설 외 1명(산돌학교 남양주) / 문정현 신부 외 2명(평화바람) / 박인국, 노석윤 외 5명(경북 문경) / 황수진(온양) / 이선진(순천) / 이시희 이경민(대전) 가족 등이 함께하였습니다.

<일정 안내 - 변동 가능>
● 5월 04일(월) : 병점 초교 앞 - 수원시 권선동 비행장삼거리
● 5월 05일(화) : 휴식
● 5월 06일(수) : 구간조정일
● 5월 07일(목) : 수원시 권선동 비행장삼거리 - 인계동 인계초교앞
● 5월 08일(금) : 인계동 인계초교앞 - 조원동 장안구청사거리 인근
● 5월 09일(토) : 조원동 장안구청사거리 인근 - 파장동 효행공원입구
● 5월 10일(일) : 파장동 효행공원입구 - 의왕시 오전동 의왕지구대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 이시희(대전), 문경시민환경연대, 대불청 경기지부, 작은안나의 집, 박은희(오산), 천주교평화동성당 빈첸시오회, 평화동성당 제대회, 이선진(순천), 황수진(온양), 정윤심-이상수(서울), 병점 성당 등이 후원해주셨습니다.

* 순례 수정 일정과 수칙은 http://cafe.daum.net/dhcpxnwl 공지사항을 참고 바랍니다.

2009. 5. 3
기도 - 사람의 길, 생명의 길, 평화의 길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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