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일당, 꽃으로 물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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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일당 꽃으로 물들다.
기쁨이 있는 곳에만 꽃이 있는 것이 아니다.
슬픔이 있는 곳에도 꽃이 있다.
슬픔과 분노로 가득찬 용산에 희망의 꽃들이 모여든다.
진실을 감추려고
사실을 왜곡하려고
이명박 정권은 애를 쓰지만
남일당을 잊지 않는 사람들은
슬픔이 아닌 꽃으로 희망을 만들고 있다.

기억해야만 하는 5명의 영혼들....
우리는 그들을 위해
오늘도 꽃을 들고 남일당으로 간다.

슬픔을 지우고
희망을 만들기 위해
꽃으로 남일당을 물들인다.
 
 
 
4/27(월) 미사
 
 
4/25 저녁 7시, 용산참사 현장에서 생명평화미사를 봉헌했습니다. 이날 미사는 안승길 신부님(원주교구), 정석현 신부님(의정부교구), 문정현 신부님(전주교구)께서 공동으로 집전하셨습니다.
 
 
 
미사 후,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그동안 모금한 3100만원을 용산참사 유가족들에게 전달했습니다.

 

지난 13일 저는 받지 말아야 할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용산 참사현장에서의 미사를 맡아달라는 당부의 전화였습니다.
"예"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듣지 말아야 할 말을 들었습니다.
"강론해"
나는 또 "예"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받지 말았어야 할 전화와 듣지 말았어야 할 말...
나는 왜 이곳에서 미사를 드려야 할까....?
강론은 무엇을 해야 할까...?
잠시 고민을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해야 했습니다.
그 모든 일은 그냥 '하는 일'이 아니라
'반드시 해야만 하는 하느님의 일'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곳의 이야기, 이곳에 계신 분들은
내 이야기이며 내 가족의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어린 시절 1,2월....
다른 친구들이 새 교과서에 예쁜 포장지를 씌우는 일로 바쁠 때,
우리집은 늘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가기 위해 짐을 꾸리는 일로 바빠야 했습니다.
부모님은 지금도 전세를 살고 계시지만
그때 역시도 우리는 전세살이여서 매년 봄이면 꼬박꼬박 이사를 했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 새로 이사간 집 주인이 때가 지나도 전세값을 올리라는 말을 안 하는데,
우리에겐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2년, 3년이 지나도 세를 올리지 않아 참 신기하게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집 주인이 믿고 있는 종교를 따라서 믿기로 했고
그것이 성당에 다닌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유는 오로지 하나,
집 주인이 전세값을 올리지 않아서...

그런데 작년 5월, 집 주인이 말했습니다.
"이명박님이 대통령이 되셨으니 아파트 값이 올라갈 것이다. 방을 빼달라..."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랐던 것도
어떤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배불리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2000년 전에는 빵이 사람을 배부르게 했지만
요즘은 돈이 사람을 배부르게 합니다.
예수님이 가르쳐 주셨던 표징은 바로 "함께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아프고, 상처받고, 고통받고, 배고픈 사람들을 돌보라고 얘기하십니다.

사람을 보지 않고 돈을 보는 건설업자, 정치인들, 경찰관들은
사람이 아니고 그냥 괴물입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 우리는 "사람과 함께" 나아가려고 합니다.
우리는 괴물이 아니기 때문에
차가운 땅바닥에 앉아서 우비를 뒤집어 쓰고 있는 옆의 사람을 보고 함께 걸어가야 하며
옆의 사람이 신앙인이든, 신앙인이 아니든 함께 가는 것,
그것이 사람이 살아가는 길입니다.

세상은 사람이 아닌 돈이나 넓은 아파트.좋은 집을 보라고....
우리보고 괴물이 되라고 유혹을 합니다.
우리는 사람입니다.
동지들과 이웃해서 함께,
사람들과 손을 잡고 끝까지 함께 살아갑시다.
그렇게 살도록 저도 노력하겠습니다.

 

 
 
 
1. “용산참사 100일, 국민추모주간” (4/27~5/2)
 
 
용산범대위는 27일 오전 참 현장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용산 참사 희생자들의 명예회복과 진상규명, 책임자처벌을 이루기 위해 다음달 2일까지 강력한 대정부 투쟁을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용산범대위는 참사 100일째인 29일에는 가슴에 리본을 달고 낮 12시를 기해 온 국민이 함께 추도 묵념을 올려주기를 부탁했습니다.
 
이날 오후에는 전국교수노동조합,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학술단체협의회 등 교수3단체가 기자회견을 열고 △이명박 대통령의 직접 사과 △특별 검사제 도입 △뉴타운 재개발 정책의 전면 재검토 △민주세력에 대한 탄압 중단 등을 요구했습니다.
 
용산참사 100일, 국민추모주간 일정

4월 27일(월) “추모주간 선포”
10시 30분 용산특별법 공청회 (국회의원회관 218호)
11시 추모주간 선포식 기자회견 (용산참사현장)
13시 청와대 1인시위 (유가족, 대표자)
15시 교수 기자회견 (용산참사현장)
19시 생명평화미사 / 촛불 추모제(용산현장)

4월 28일(화) “청와대 규탄의 날”
11시 청와대 항의방문 (청운동)
19시 생명평화미사 / 촛불 추모제(용산현장)

4월 29일(수) “참사100일, 범국민추모의 날”
11시 용산현장 100인 농성돌입 행동
12시 추모묵념 및 분향, 문화행동
13시 청와대 1인시위
19시 범국민추모제 (서울광장)

4월 30일(목) “책임자처벌 촉구의 날”
12시 책임자 처벌 촉구 릴레이 자전거 행동
(용산현장->용산구청->용산경찰서->경찰청->서울시청->청와대)
13시 청와대 1인시위
19시 생명평화미사 (용산현장)

5월 1일(금) “노동자, 학생 연대의 날”
10시 재판(중앙지법)
12시 30분 학생 메이데이 참가단 집회
13시 청와대 1인시위
15시 노동절 집회 (서울광장)

5월 2일(토) “촛불과 함께하는 범국민추모의 날”
13시 청와대 1인시위
17시 용산참사 범국민추모대회 및 촛불 1년 (서울역)

2. 용산 현장에서 듣는 저항의 라디오, 행동하는 라디오 '언론 재개발'

 

1. 용역깡패들 남일당 건물 펜스작업
4월 27일(월) 오후 4시 무렵 남일당 건물 1층에 경찰의 보호를 받으며 용역 깡패들이 들어가 펜스를 치고 철거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이에 유가족과 철거민 그리고 시민들이 용역들에게 강하게 항의하였고, 용역 깡패들은 욕설을 퍼부으면서 온갖 협박과 폭력을 일삼았고 심지어 쇠파이를 휘두르기까지 했습니다.
고 양회성 씨의 부인 김영덕 님께서 울분을 억누르고 이야기를 전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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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4월 29일 용산참사 100일 참가 안내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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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그들을 잊은 당신, 지금 행복합니까?"
[울부짖는 용산 ①] 나는 묻는다

- 박래군 (이명박정권용산철거민살인진압범국민대책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

용산 참사 100일을 맞는 사람들

이제 '용산 참사 100일'이다. 한 겨울에 일어났던 용산 참사, 이제 계절은 바뀌어 봄, 산과 들에 봄꽃이 흐들어지게 피어나더니 어느새 그 꽃들은 지고 신록으로 덮어 버렸다. 눈 내리는 겨울에 시작한 이 싸움은 봄의 절반 이상을 지나고 있으니 곧 여름을 볼지도 모른다.

1월 20일, 용산 남일당 건물 옥상에서 일어났던 참사를 아직도 많은 이들이 기억하고 있을까? 우선 100일을 맞으면서 드는 생각이다. 아직도 장례를 치르지 못한 채 유가족들이 추모객이 거의 끊긴 장례식장을 지키고 있다는 사실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알까도 의문이다.

나는 용산범대위의 공동집행위원장으로 지난 2월 20일 참사 한 달을 맞아 현장에서 진행된 촛불 집회에서 진심으로 유가족들에게 사죄했다. 참사 한 달이 넘었지만, 정권의 사과도 받아내지 못하였고, 진상 규명도 못했음을 사죄했다. 그래서 돌아가신 분들의 명예를 회복하고 하루 빨리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하겠노라고 다짐했다.

그런데 다시 두 달을 넘어, 석 달, 이제는 100일을 맞게 되어 너무도 죄스럽다.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고, 먹어도 먹는 것 같지 않고, 목 놓아 울어도 시원하지 않은 유가족들의 피 말리는 100일, 아마도 유가족들에게는 한만 채곡히 쌓인 100일일 것이다.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정부는 용산 참사를 외면한 채 유가족과 전철연, 용산범대위를 고립, 고사시키려 작정한 것으로 보인다. 용산범대위가 제시한 5대 요구안에 대해 어떤 반응도 없이 무시할 뿐만 아니라 지쳐 떨어질 날을 기다리는 듯 순천향병원 장례식장의 경계를 더욱 강화하고, 틈만 나면 장례식장을 침탈하여 수배자들을 잡아갈 듯한 기세다. 그러므로 매일 이곳은 전쟁터다. 크고 작은 일로 경찰이 신경을 자극하여 비상이 걸리기 하루에도 여러 번이고, 그럴 때마다 항의하던 전철연 회원들이 연행되고, 구속되기도 한다.

정부는 2월 9일 검찰 수사 결과로 모든 게 끝났다는 태도에서 전혀 달라진 게 없다. 철거민 5명과 경찰특공대원 1명이 죽고, 여러 명이 크고 작은 부상은 입은 대 참사를 두고 '철거민 유죄, 경찰 무죄'라는 결론만을 내놓은 채 이를 믿으라고 강요했다. 더욱이 당시 일어났던 연쇄살인범 강호순 사건을 이용하여 사건을 은폐하려고 청와대가 나서서 시도하지 않았던가.

나는 그날의 밤 상황을 생생히 기억한다. 하루 종일 남편이자 아버지인 가장들의 생사가 확인되지 않아 울부짖으며 발을 동동 구르던 유가족들을 기만하여 경찰서에 잡아놓은 사이에 검찰수사본부가 대규모로 꾸려지고,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가족들에게 통보도 하지 않은 채 부검하기에 이르렀다. 그런 끝에 기자들을 통해 시신이 순천향병원에 있다는 말을 듣고 혼비백산하여 달려온 유가족들에게 절차를 이유로 시신 확인조차 못하게 막던 경찰들, 그리고 끝내 날을 넘겨 새벽에서야 자신의 가족의 참혹하게 불에 탄 시신을 확인하고는 혼절하던 유가족의 모습, 그 지옥 같던 밤을 잊을 수 없다.

지금은 '전쟁' 중

그러면서 떠나지 않았던 의문은 그것이었다. 과연 남일당 건물 철거민들의 농성 진압 작전이 김석기 당시 서울청장의 승인으로 진행되었을까? 최고책임자가 과연 서울경찰청장이었을까? 청와대는 사후에나 알았을까? 검찰의 대규모 수사본부도 검찰이 알아서 자체적으로 판단하여 꾸린 것일까? 등등이 떠나지 않았다. 마치 철거용역업체의 뒤에 재개발조합이 있고, 그 뒤에 사실은 삼성물산과 같은 건설자본이 웅크리고 앉아서 조종하고 있듯이, 검찰의 뒤에는, 경찰의 뒤에는 무엇이 있을까에 대한 의문이 떠나질 않았다.

평소 철거 지역은 무법천지로 심각한 인권 침해가 다반사로 일어나는 지역이다. 용산4구역도 마찬가지여서 덩치 큰 깡패들이 저지르는 폭력과 모욕, 협박은 공포로 다가왔다. 그때마다 경찰은 너무 멀리 있거나 용역들의 편이었다. 덩치 큰 깡패들에 폭행을 당하고도(철거 지역에 동원되는 용역들은 조폭 조직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폭로되었지 않은가) 오히려 철거민만 영업 방해니 폭행죄니, 협박죄니 하는 등의 혐의로 경찰 소환 조사를 받고, 사법 처리되기 일쑤다. 철거민들은 헌법에서 규정한 기본권을 보호해주지 않아도 좋은 '비국민'으로 취급되었다. 그런 끝에 철거민들이 선택하는 마지막 방법이 망루농성이었다.

그 방어용 망루에서 몇 달이고 버티다 보면 조합이 협상하자고 들어오기 마련인 것이어서, 그때까지 버티기로 작정하고 오른 용산4구역 철거민들이었다. 대화를 하자며 폭력을 피해 올라간 그들에게 어떤 대화나 설득, 협상도 없이 무력으로 진압해 버린 게 용산 참사다. 장기화될 수 있는 농성을 25시간만에 특공대까지 동원해 진압하는 초강도의 진압작전을 과연 경찰이 세울 수 있을까? 박종환 전임 경찰종합학교 교장이 퇴임 인터뷰에서 지적하였듯이 경찰의 판단보다는 정치적 판단이 앞섰을 것이다. 정부는 현장에서는 경찰의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는 지적에 함구로 일관하고 있다.

그리고 아무 것도 해결된 것이 없음에도 용산4구역에서는 3월 11일부터 야금야금 철거작업이 진행되었고, 다시 이 철거작업을 막다가 철거민들은 여전히 깡패들에게 폭행당하고, 욕을 얻어먹고, 경찰에 연행된다. 용산4구역의 철거민들은 언제고 경찰에 의해 구속될 수도 있는 위기에 몰려 있다. 이처럼 지독하게 편파적인 법집행이 가능한 것은 철거민들은 싹 쓸어버려도 된다는, 기본권을 지닌 국민으로 대우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직은 장례를 치를 수 없다

그러므로 참사 100일을 맞으면서도 장례를 치를 수 없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진상 규명도, 책임자 처벌도 이루어지지 않았고, 용산4구역에서 철거민들이 요구하던 소박하기만 한 이주 대책과 생계 대책이 마련되지도 않았다. 오히려 용산 참사를 겪은 이 와중에도 국회에서는 재개발 요건을 완화하는 재개발 관련법들이 통과되었으니 말해 무엇하랴. 서울에만 뉴타운, 도심 재개발 사업 지역이 500군데가 넘고, 그곳에서 언제고 용산과 같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음에도 살인 개발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묻는다. 이 지독하기만 전쟁에서 법과 원칙을 말할 수 있는가. 법은 늘 건설자본과 권력을 쥔 자들의 이익을 보호하는 도구일 뿐, 가난한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주지 않는다. 오히려 가난한 이들의 피눈물을 강요하는 법을 지키라고 강요하는 체계적인 국가폭력을 우리는 용산에서 본다.

그리고 다시 묻는다. 무엇이 폭력인가. 전철연이 폭력집단인가. 그렇다면, 철거 현장에서 일상이 되어버린 철거용역업체의 폭력은 왜 방치되어도 좋고, 기껏해야 저항폭력에 불과한 철거민들의 생존을 위한 몸부림만 폭력으로 매도되고, 사법 처리의 대상이 되는가. 오히려 폭력의 희생자인 이들과 연대하기를 주저하는 이들은 대체 어떤 폭력을 저주하는지 답해야 한다.

다시 묻는다. 용산을 보고도 아직 이 나라가 인권이 보장되는 민주주의국가라는 착각 속에 빠진 이들이 있다면, 민주주의국가에서 집회와 시위의 자유가 용산이란 이름 앞에서는 얼마나 무력한가를 보고, 집회·시위의 자유가 이처럼 철저하게 짓밟혀도 되는지 묻고 싶다. 용산범대위가 하는 집회는 100일 동안 다 한 건도 '허가'를 받지 못하고, 오히려 추모제를 치룬 죄 때문에 많은 이들이 소환되고, 구속되고, 수배되는 이 현실을 해명해 보라.

그래서 '용산'은 비켜갈 수 없는 우리 모두의 과제다. 수많은 과제들이 있겠지만 사람 목숨 여섯이나 희생된 21세기 서울의 한복판에서 일어난 학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어떻게 민주주의를 말할 수 있을까. 혹자는 말한다. 먼저 장례를 치러야 하는 게 아니냐고.

나도 빨리 장례를 치르고 이 짐으로부터 벗어나고 싶다. 이 불안하기만 수배의 굴레를 벗기 위해서라도 간절하게 장례를 치루고 싶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라도 신부님들이 매일 미사를 드리고, 아직도 사람들이 매일 현장을 찾아 촛불을 들고, 돈을 모으고, 쌀과 김치를 보내고, 간절한 소망을 담은 편지를 보내는 것처럼 먼저 용산 참사를 해결하기 위해 힘을 모아야 한다. 이 시대의 현실을 처절하게 증언하는 용산 문제로부터 비켜나서 인권과 민주주의는 없다.

용산 참사 100일,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해 함께 하는 많은 이들의 연대의 물결을 보고 싶다. 살기 위해 올랐던 망루에서 죽어 내려온 그들을 잊고 우리는 자유로울 수 없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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