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민주화-근본적 정체성 회복의 길 6

오늘날 시대의 징표는 성직자들의 쇄신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한국의 평신도들의 정서는 성직자들이 올바로 시대에 맞는 정체성을 보이면 그대로 따르는 편이다. 한국교회의 미래를 염려하는 많은 지식인들은, 신자들에게 절대 영향력을 주는 성직자들이 시대의 징표를 제대로 알고 구체적인 쇄신의 방향을 제시하고 투신하지 않는다면, 물질적으로 지성적으로 수준 높은 한국 국민들과 점점 멀어지고 유럽교회처럼 상징적인 문화의 사치품으로 남게 될 것이라는 전망을 하고 있다. 사실 이런 현상을 사목자(주교, 사제, 수도자)들이 느끼고는 있지만, 그러나 정작 그들 스스로 반성하고 쇄신의 길로 가고 있는지는 회의적이다. 단지 소수의 사제들만의 고민거리일 뿐이다.

왜? 교구장 자리, 본당신부 자리… 등의 위치는 특별한 과오가 없는 한 어느 누구도 제재 할 수 있는 법적인 권한이 없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기본정신과는 거리가 먼 장치이다. 철통같은 기득권의 자리이다. 30년간 한국교회에서 사목한 어느 외국 선교 사제의 독백이 연상된다. “한국인 성직자들(주교, 신부)은 귀족 같은 신분의 삶을 누리고 있습니다. 넓고 시설이 좋은 사제관, 전연 걱정이 안 되는 경제적인 안정, 착하고 순명정신으로 길들여진 평신도들, 그리고 1970-80년대 정의구현, 인권회복 운동으로 사회의 빛이었던 소수의 사제들 때문에 도매금으로 상승된 사회적 지위… 고급 승용차, 빈번한 골프운동, 휴가 해외여행… 부러움의 대상이지요. 이것은 예수님의 정신도 아니고 교회의 정신도 아닙니다. 반성하고 쇄신돼야 합니다. 그래도 가난하고 소신 있게 투신하고 있는 사제들이 있기에 한국교회는 유지되지만, 앞으로는 큰 문제가 될 것입니다.”

사제들의 문제

한국교회의 중심인 서울대교구가 2000-2001년 시노드를 진행하면서 교구소속 374명의 사제들에게 여론조사를 했는데, 그 내용은 교구장(27.4%), 본당신부(19.4%), 보좌주교(17.4%)가 변해야 한다고 응답했고 교구의 인사문제, 재정문제에 대하여 투명성이 있다고 동의한 이는 10%이고 90%는 부정적인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지난 2007년 8월 서울대교구의 재정보고를 일반에 공개한 것은 긍정적인 개선의 의미가 있다. 또한 2000년 우리신학연구소의 “수도자들의 눈에 비친 성직자 상”이라는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사제들의 종합적인 인상으로 독불장군(46.6%), 행정가(27.9%)로 비춰지고 있다. 이러한 인상은 본당 또는 기관의 전결권을 갖고 있는 사제가 수도자들이나 평신도들과는 충분한 협의를 하지 않고 독단적으로 결정을 내린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정신적인 스승(7%), 사목자(19%)로 보고 느끼는 정서는 아주 적은 수치로 나타난 것은 본연의 사제직을 소홀히 하고 있다는 표시다.

또한 청빈생활을 소홀히 한다(63.9%), 소외계층에 관심이 적다(81.4%), 물질생활은 상류(41%) 또는 중상류(54.3%)라고 답변한 이면에는 한국의 본당 기관이 90%이상 대도시, 중소도시에 집중하고 있기에 지방과 시골에서 소박하고 가난하게 살고 있는 사제들에 대한 의견은 포함되지 않은 것 같다. 이런 중상류의 생활에 젖다보면 민중의 아픔, 교회의 올바른 정체성, 사제직 본연의 정체성에 구멍이 생기기 마련이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이러한 측면을 깨우치고 있다. “사제들은 자발적으로 가난을 받아들여, 그 가난으로 더욱 뚜렷하게 그리스도와 동화되고 거룩한 교역을 더욱 더 수월하게 수행하도록 권유받고 있다.”사제의 생활과 교역에 관한 교령「사제품」17항. 또한 “사제는 참으로 모든 사람에 대하여 책임을 지고 있지만,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사람들이 사제에게 특별히 맡겨져 있다.”「사제품」6항.

쇄신의 방향

이런 여론조사의 결과는 사제직 쇄신의 긴박성을 알려주고 있지만, 오늘도 그 쇄신의 과제는 여전하고 어떤 변화의 징표도 보이지 않는 듯하다. 7년이 지난 지금 여론조사를 다시 한다면 더 높은 부정적 수치가 나타나지 않을까? 그나마 조금의 위안은 교구의 행정체제(특히 경제적인 면)는 조금씩 투명하게 발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수도자들뿐 아니라, 대부분의 평신도가 바라는 사제직의 모습은 가난하고 소박한 생활, 고통 받는 이들을 위한 진솔한 희생의 삶, 시대의 징표를 인지하고 전파하는 역할, 평신도들을 군대조직의 부하들처럼 여기지 않고 동등한 하느님 나라의 백성으로 대하는 태도, 돈과 명예를 탐하지 않고 장상에게 아부하지 않는 정신, 기도와 묵상을 게으르지 않는 영성의 삶, 또한 성무집행을 정성껏 하는 사목생활 등등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항상 잊어서는 안 된다.

또한 사제들로 형성된 교회제도권 상층부에 대해 고뇌와 우려를 안고 쇄신의 기본적인 방향 전환을 간구하는 국내 신학자들의 의견도 이미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 그 의견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한국교회는 로마교회의 지점이 아니다. 한국 민족을 위한 하느님 백성의 교회다. 조국의 민족문제, 통일문제, 사회정의에 대해 소수의 사제들만이 헌신해 왔다. 그간 교회는 외적 팽창에만 치중했고, 물질적으로는 풍요하지만 영성적인 면은 빈약하다.

2) 한국교회의 가장 큰 문제는 성직자들의 지적 빈곤이다. 한국 국민들의 상식적인 수준과는 차이가 많다. 그 결과 직업화된 성직 계급은 가난과 정의와는 무관한 교회 모습으로 되어가고 있다. 또한 각 지방마다 설립한 7개의 신학교는 지적 덕목 이하의 사제들을 배출시키고 있다. 이 심각한 문제를 인지하고 개선해야 할 책임이 있는 교구장 주교들은 교구이기주의 안에 안주하고 있다.

3) 교회 내에 일하고 있는 수도자, 평신도, 일반 직원에 대한 인권문제도 심각하다. 순명과 명령만이 통하는 현실이다. 민주주의가 나름대로 정착한 한국사회와는 또 다른 사각지대의 모습이다.

4) 쇄신과 반성은 필연이자 시대의 요청이고, 교회의 올바른 정체성의 정립을 위하는 길이자 공의회 정신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소신 있는 개혁의 소리가 통하는 언론·방송·출판의 자유로운 기능이 전제되어야 한다.

교회 쇄신 기본자세는 전통적, 관행적으로 누려온 성직자들의 권위의식과 우월감을 포기 내지 양보하지 않는 한 결코 한 걸음도 나갈 수 없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권고들은 나름의 의미를 지닌다.

“복음화는 인간성의 쇄신이며, 문화의 복음화입니다”(바오로 6세).
“회개와 쇄신을 통해 교회가 거듭나야 하는데, 우리 주교들부터 쇄신돼야 합니다”(전 주교회의장 박정일 주교).
“교회는 언제나 새로워져야 하고, 교회쇄신을 위해 과거의 과오에 대한 역사적인 신학적 해석이 있어야 합니다. 여기에서 새로운 선교 열정이 솟아올라 민족의 복음화가 되고 정의와 평화가 한반도에 강물처럼 흐르게 될 것입니다”(제3차 교회사 성찰과 심포지엄, 정명조 주교, 2001년).
“우리는 참회를 통하여 정의와 평화가 가득한 세상을 만들어 나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2001년 12월 31일 주교단교서).

/안승길 2008.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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