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상식 속풀이-박종인]

영성체를 못 하는 사제라니? 무슨 뜬금없는 이야기냐고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중죄를 지어 성체를 못 영하는 게 아니라, 신체 반응으로 인한 사유가 있기에 오늘 속풀이에서 다뤄 보고자 합니다.

세상에는 온갖 알레르기가 있다고 합니다. 알레르기는 과민반응이란 뜻을 가진 그리스어에서 기원합니다. 알레르기 즉, 과민반응을 일으키는 물질을 항원(알레르겐)이라고 합니다. 꽃가루나 항생제 등을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이 항원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은 과민반응을 보이지 않지만, 어떤 사람들은 특정한 물질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입니다. 기분이 안 좋아지는 증상에서부터 가렵고 피부나 호흡기가 부어 시각적으로 티가 나는 반응까지 다양합니다.

제 동생은 복숭아 알레르기가 있었습니다. 매우 심했습니다. 어느 정도였느냐면 어머니께서 복숭아를 사와 냉장고에 넣어 두셔도 몸이 느낄 정도였습니다. 또 제 친구 하나는 들깨 알레르기가 있어서 들깨가 들어간 음식을 먹으면 두드러기가 납니다. 또 어떤 친구는 달걀 알레르기가 있고요. 같은 공동체에 사는 선배 신부님은 온도차에 민감해서 일교차가 생기면 계속 재채기를 하십니다. 아무튼 사람마다 다양한 양상을 보이는 것이 알레르기입니다. 체질이 변하지 않는 이상, 어떤 특정한 물질에 알레르기 반응을 하는 사람은 그것을 피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증세가 심하면, 호흡기가 부어 숨을 못 쉬고 사망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떤 청년이 밀 알레르기가 심합니다. 조금만 먹어도 두드러기가 생기고 호흡기에 이상이 옵니다. 이런 사람이 영성체를 해야 하는데 밀이 원료인 성체를 어떻게 영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는 사제가 되길 원합니다. 과연 가능할까요?

▲ 성체 분배 ⓒ정현진 기자

일단, 사제가 되고 말고를 떠나 신자로서, 이런 사람은 알레르기 때문에 성체를 영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가톨릭 신앙을 못 갖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교회는 사목적 배려를 통해, 이런 신자들에게 성혈을 모실 수 있도록 합니다. 그럼 밀가루 알레르기에 덧붙여 포도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이 있다면? 흠.... 성혈을 성작 한 가득 따라 마시지 않는 이상 큰 이상은 없다고 여겨집니다. 아무튼 이런 상황에 처한 분이 계신다면, 사제와 상의하여 방법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럼, 밀 알레르기가 있는 청년은 과연 사제가 될 수 있을까요? 제가 아는 어떤 분은 밀 알레르기가 있는데도 사제였습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성혈을 통해 성체성사를 수행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런 경우에는 개인의 열망과 성숙한 인품이 더욱 중요하다고 하겠습니다.

밀 알레르기와는 다른 경우이지만, 저는 얼마 전에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나려는 신자에게 양형 영성체를 하는 것은 주의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보통 작은 공동체 차원의 미사에서, 저는 양형 영성체를 하도록 초대합니다. 그래서 그때도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은 채, 양형 영성체를 유도했는데 그 모임에 알코올중독 치료를 받은 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개인적으로는 ‘성혈을 살짝 찍어서 영성체를 하는데 그게 어때서?’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술 한 방울도 피해야 하는 이들에게는 성혈이 자극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알코올중독 치료를 경험했던 분의 조언이었습니다.

이러한 현실은 결국 우리 각자와 하느님이 만나는 다양한 방식을 경험하게 해 줍니다. 평범하게 보이는 것이 평범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박종인 신부(요한)
서강대 인성교육센터 운영실무.
서강대 "성찰과 성장" 과목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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