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신학 나들이]


살아있는 복음

▲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회 창립자, 마리 드 라 빠시옹 수녀
물론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준거점은 복음이다. 그런데 다른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그리스도와 개인적인 만남을 가지고, 그분과 친밀한 삶을 영위해 왔는지를 아는 것도 그리스도의 뒤를 따르려는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된다. 우리 보다 앞선 이들이 어떤 신앙 체험을 했는지, 어떻게 일생을 통하여 각 인생의 단계마다 주님께로 돌아서고, 그분의 이끄심에 자신을 내맡겼는지를 보는 것은, 그러므로 피와 살을 가진 한 인간이 자신의 문화와 신학 체제 안에서 생활한, 살아있는 복음을 읽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요즘 우리 수도회의 창립자인 마리 드 라 빠시옹이라고 하는 한 신앙인 안에서 힘차게 활동하시며 사건과 상황들을 통해 조금씩 당신과 닮은 모습으로 변모시켜 가신 성령의 활동을 발견하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부활 하신 예수께서 숨을 불어넣어 주신, 그래서 지금 이 순간도 내 안에 살면서 복음을 생활하도록 이끌고 계시는, 바로 그 성령 말이다. 마리 드 라 빠시옹이 평생을 두고 추구했던 “참된 힘”이라는 문제는 오늘날 복음을 생활하는 우리에게도 말해주는 바가 있지 않을까 싶어 나누고자 한다.

참된 힘이란 무엇인가?

19세기 프랑스의 귀족들 대부분이 그러했듯 마리 드 라 빠시옹에게 교회는 절대적인 하느님의 대리자였다. 당시 이러한 교회의 교황령이 이탈리아 통일 운동으로 위협을 받고 있었으므로 마리 드 라 빠시옹은 일찍부터 교회의 힘에 대한 질문이 일어났다. 당시 사고방식으로, 교황령을 잃어버린 교황은 상상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수도회에 입회하기 전부터, 그리고 종신서원 때까지도 “베드로의 쇠사슬”을 끊기 위하여 자신을 봉헌하였다. 교황이 온전한 자유를 가지고 교회를 이끄는데 교회의 힘이 있다고 확신했던 것이다.

현실에 발을 딛고서

그러나 사물을 보는 마리 드 라 빠시옹의 시각은 경험을 통해 점점 더 깊어져갔다. 인도에서 선교생활을 하면서 그는 교회가 이 세상 권력자들로부터 고난을 당하는 교황이자 황제라는, 이상화된 한 인물만이 아니라 포도밭의 수많은 일꾼들로 이루어져 있음을 깨달았다. 선한 의지가 있지만 나름대로의 한계와 망설임, 실수, 그리고 때로는 약함도 있는 평범한 남녀노소들이 곧 교회였던 것이다.

훗날 유럽으로 돌아와, 새로운 선교수도회의 창립자로 로마에 살게 되면서 그는 고통스런 현실을 몸소 체험으로 알게 된다. 자신에 관한 악의적인 소문이 교회 안에 떠돌고, 심지어 교황의 측근까지 영향을 미쳐서 아무 잘못 없이 총장직에서 면직을 당하게 된 것이다. 교황의 이름으로 무고하게 가해진 이 처분에 대하여 그는 단 한 번도 자신의 입장을 말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지 못했다. 그로서는 신앙의 시련이었다.
“한 순간 신앙이 바위 위에 있는 듯 굳건하지만, 다음 순간 하느님께서 내 말은 듣지도 않고 판단하시고 이유도 없이 단죄하실 것 같이 느껴졌습니다. 하느님 외에는 그 누구도 어머니이신 거룩한 가톨릭 교회로부터 내가 얼마나 고통 받았는지 짐작할 수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나는 분명하게 교회를 삼키고 있는 악들을 봅니다. 하느님의 은총으로, 나는 교회의 상처로 상처를 받았습니다.”

사랑과 진리는 내 생애의 두 가지 갈망

이 무렵 그의 묵상에서 자주 나오는 단어가 사랑과 진리이다. “사랑은 항상 진리입니다. 진리는 항상 사랑입니다. 이 둘은 내 전 생애에 있어 두 가지 목마름입니다.”

이 사랑과 진리야말로 참된 힘이다.

“참된 힘, 그것은 하느님입니다. 지상에서 어떤 힘이 진리와 애덕일수록 그는 참된 힘입니다. 아름다운 삼위일체의 품속에 들어갈 때마다 나는 더 이상 내가 아니라 참된 힘, 즉 진리와 사랑이신 하느님으로 온통 채워져 다시 나오게 됩니다. 세상에 참된 힘을 전달해줄 수만 있다면 이 세상 전체를 하느님께 드리게 되리라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그에게 선교는 인종과 국가, 종교, 문화가 어떠하든 모든 장벽을 뛰어넘는, 사랑과 진리의 나라를 구현하는 것으로, 이 비전은 가톨릭 선교신학 역사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결백이 밝혀진 후 세상 곳곳으로 급속히 퍼져가는 수도회의 총장으로서, 마리 드 라 빠시옹은 자신이 겪은 것이 그다지 이례적인 현상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온 유럽을 여행하고, 많은 이들과 만나면서 “현실에서 악들이 교회에 미치고 있는 영향”들을 목격했다. “그들은 복음을 그럴 듯하게 포장했으며, 그 결과, 스스로 두려워 떨고 있습니다.” “세상은, 심지어 가톨릭교회도 진리와 애덕에서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이웃을 향한 속임수와 부정의... 이런 것들이 가톨릭 신자들을 포함한 대다수 사람들의 무기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사제들이나 수도자들조차 여기에 끼어들고 있습니다.” 또한 자본주의의 폐해도 통찰했다.

“나는 이 지상의 모든 것이 ‘참된 힘은 돈에 있다.’고 말하는 것을 봅니다.” 이제 마리 드 라 빠시옹이 기도하는 “쇠사슬에 묶인 베드로”는 교황이라는 인격을 넘어서 “진리와 사랑이 결핍된 세상”을 의미하게 되었다.

이탈과 가난

이러한 세상과 교회에 대하여 마리 드 라 빠시옹은 말한다.

“가난하신 이의 왕이신 예수님과 가난한 이들의 사부이신 프란치스코는 말합니다. ‘참된 힘은 사랑이며, 이탈이자 가난이며 하느님이다.’ 예수님은 사랑이시요, 우리를 사랑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시려고 자신을 비우시고 사랑으로 육화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프란치스코는 이 참된 힘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아신 분이었다.

“프란치스코 나의 사부님, 당신처럼 가난하다는 것은 눈먼 이들은 알지 못하는 태양광채를 관상하는 것과 같습니다. 태양은 사랑이시며 하느님이십니다. 지상 사물에 마음을 주면 이 빛을 볼 수 없습니다. 세상에 황금송아지의 경배가 지금처럼 만연한 적이 언제 또 있었습니까? 에와의 자손들이 비참 속에 신음하오니, 사부 프란치스코여, 저희를 찾아오소서.”

참된 힘의 승리를 위하여

그리하여 그의 사명은 참된 힘을 위해 싸우는데 있었다. 사랑과 진리가 승리하고 이 지상을 다스리게 될 때까지, 예수님과 프란치스코가 보여주었던 그 방식으로.

우선 그 자신이 가난해져야 했다.

“참으로 가난한 이는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영적으로나 물질적으로 모든 것이 자신에게 박탈되도록, 자신에게 비워지도록 내버려두는 사람입니다. 하느님만 소유한다면 그는 포기 가운데에서 평화 중에 머무릅니다.”

그렇게 투명해진 시선으로 새로 일어나는 가톨릭 사회운동의 가치를 이해하고 그 선구자들과 협력하였다. “그분은 성프란치스코의 참된 딸답게 사회정의를 위하여 일했으며, 프란치스코처럼 가난한 이들과 작은이들에게 다가갔습니다.”(스위스 한 사회학자가 그의 사후 한 증언)

그리고 자기 수도회의 딸들에게도 가르쳤다. “무시당하는 사람들의 친구가 됩시다. 정의를 지지하고, 진리를 수호하는 사람들의 편에 섭시다.”

선종 1년 전, 생애 마지막 피정 기록에서 다음과 같은 구절을 발견한다.

“제가 21살이었을 때 하느님, 저는 당신이 제 삶의 여정에서 무엇을 원하시는지 이해하지도 못했거니와 참된 힘이 무얼 의미하는 지도 몰랐습니다. 그러나 이 순간 저는 참된 힘이 찬란히 빛나는 것을 봅니다. 그것은 하느님 자신이 성령을 통하여 교회에 전해주신 진리와 사랑입니다. 이 세계가, 심지어 가톨릭 세계까지도 진리와 사랑에서 너무나 멀어져 있는 것을 봅니다. 우리는 진리의 결핍으로 시들어 있으며, 사랑의 결핍으로 상처를 입고 있습니다. 오소서, 성령님! 오시어 참된 힘을 다시 세우소서!”

피정은 이렇게 마무리된다.

“나는 마리아께서 인도하시는 곳으로 갑니다. 나는 내 삶을 참된 힘의 승리를 위하여 봉헌할 것입니다. 승천하신 산 위에서 겸손한 침묵 가운데 사도들의 방주, 피난처가 되신 마리아가 그러하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

홍현정/ 수녀,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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