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칠레의 알바로 신부, 페루의 크리스 신부

서울 돈암동에 있는 성골롬반외방선교회(이하 골롬반)에 피지, 필리핀, 타이완, 홍콩, 칠레, 페루에서 20여 명의 선교사들이 모여들었다. 4월 13일부터 18일까지 세계에 파견되어 있던 성골롬반외방선교회의 양성 담당 사제들이 모여서 모임(Formation Conference Meeting)을 갖기로 했기 때문이다.

성골롬반외방선교회에서는 각 나라에 선교사로 파견될 신학생들을 미국의 시카고 국제골롬반신학원에서 모두 모여 공부하는 정책을 쓰고 있다. 이들은 여기서 함께 공부함으로써 공동의 경험과 유대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 "과연 그게 바람직한지" 물으면서, 파견될 선교지의 고유한 문화 속에서 신학생을 양성하는 게 더 옳지 않은지 성찰하려고 이번에 모임을 갖게 된 것이다. 더불어 이번 양성 담당자 모임에서는 신학생들이 서품을 받기까지 양성기간이 너무 길지 않은지 성찰하려고 한다. 남미의 경우에 통상 12년 정도가 걸린다고 한다.

이번 모임을 위해 한국을 방문한 두 명의 선교사를 만났다. 지난 4월 9일 성목요일 십자가의 길 전례가 열린 용산참사 현장에 오기백 신부와 함께 왔던 알바로 마르티네스(Alvaro Martinez, 칠레) 신부와 크리스 사엔스(Chris saenz, 페루) 신부다. 오기백 신부의 주선과 통역으로 돈암동 골롬반선교센타 3층에서 인터뷰를 했다.

▲ 성골롬반외방선교회 한국지부에서는 평신도선교사 등을 양성하여 해외에 파견하고 있다. 

▲ 오기백 신부는 아일랜드 출신으로 한국에서 노동사목을 비롯해 가난한 이들과 오랫동안 활동했으며, 지금은 홍보 담당으로 일한다.

 

 

 

 

 

 

 

 

 

 

 

 

-돔헬더 카마라 대주교가 학장으로 있으면서 해방신학의 못자리가 되었다는 브라질의 레시페 신학교가 교황청의 문제제기로 폐쇄된 것으로 안다. 남미의 신학생 양성과 관련해서 해방신학에 대해 말해달라.

알바로: 칠레의 경우엔 비교적 전통적인 교회 모습을 갖고 있다. 해방신학은 2-3명이 중심이 되어 진전시켜 온 것인데, 남미교회는 해방신학의 영향을 받아 사회참여에 나선 것이라기보다, 군사독재 시절에 교회가 가난하고 억압받는 이들과 함께하다 보니 민중의 교회가 된 것이다.

크리스: 구스타보 구티에레스 같은 해방신학자들은 소그룹을 중심으로 활동했으며, 다른 나라에는 많이 알려져 있지만 정작  그가 활동하던 페루에서는 활성화되지 못하다가 최근에야 다시 페루에서 받아들여지고 있다.  페루는 현재 오푸스 데이(Opus Dei) 출신의 주교가 리마의 교구장을 맡고 있어서 해방신학이 발붙이기 어렵다. 구티에레스 역시 교구 신부였다가 교구장 주교의 견책에서 보호받기 위해 수도회로 적을 옮겼다. 그래서 지금 구티에레스는 다른 교구에서도 마음대로 세미나를 열 수 있게 되었다.

▲ 알바로 마르티네즈 신부는 칠레에서 양성담담으로 일하며 TV앵커로도 활동한다.

알바로: 나는 칠레 <가톨릭 TV>에서 쇼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앵커를 겸하고 있는데, 최근에 칠레 남부의 아이신(Aisyn) 교구의 주교가 원주민들에 대한 대기업들의 착취를 고발하는 편지를 신자들에게 보낸 적이 있다. 그러자 레오나르도 보프가 주교의 입장을 지지한다는 뜻으로 칠레에 방문해서 강연을 해주기로 했다. 그러나 칠레의 가톨릭대학에서 허락을 얻지 못해서 결국 일반대학에서 강연을 했는데, 청중이 2천 명이나 모여들었다.

우리 <가톨릭TV>에서도 처음엔 아이신 교구 교구장 주교와 함께 보프가 나와서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는데, 결국 다른 주교들에게 욕 먹을까봐 따로 따로 인터뷰를 했다. 칠레 역시 주교들의 다수는 오푸스 데이 등 보수적인 주교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보프와 인터뷰한 내용은 아직도 방송을 하지 못하고 있다. 

크리스: 칠레의 비야리카(Villarrica) 교구에 새로 교구장이 임명되었는데, 오푸스 데이 준회원이다. 지난 1월 말에 칠레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당시 신학교 교장 신부가 '(교장을) 오래 못할 것 같다'고 고민하고 있었다.

페루의 수도인 리마 교구의 후안 시프리아니(Juan Cipfiani) 추기경 역시 오푸스 데이다. 15년 전쯤 후지모리 대통령 시절에 페루 원주민을 대변하던 투팍 아마루(Tupac Amaru) 반군들이 일본대사관에서 인질극을 벌인 적이 있는데, 중재를 청하고 나선 추기경은 결국 정부쪽에 정보를 줘서 반군들을 소탕한 적이 있다.  그는 후지모리 대통령을 옹호했지만 최근에 후지모리 대통령은 부정부패로 15년형을 받았다.

▲ 레오나르도 보프는 권력화된 교회를 비판한 <교회, 카리스마와 권력>이란 책 때문에 파문을 일으켜 1984년 교황청의 제재를 받았으며,  구스타보 구티에레스 신부는 <해방신학>이란 저술과 활동으로 '해방신학의 아버지'라는 별칭을 얻은 페루의 신학자다. 현재 보프 신부는 환속하여 평신도 신학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구티에레스 신부는 교구에서 수도회로 옮겨갔다.

-보수적인 주교들이 포진한 가운데 신학생 양성에 문제가 발생하지는 않았는가?

알바로: 보수적인 주교들이 속속 교구장에 임명되면서, 문제를 느낀 수도회나 선교회에서 자기 신학생들을 교구신학교로 보내지 않고 다른 데로 보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최근에는 교구 신부들이 불만을 갖고 문제 제기를 해서 산티아고의 추기경이 조금씩 개방정책을 쓰고 있어서 앞으로는 조금 희망이 보인다. 학생도 바뀌면서 수도회들이 다시 교구신학교로 학생들을 다시 보내고 있다.

크리스: 페루는 다르다.  교구신학교는 갈수록 보수화되고 있다. 예를 들어, 성(性)문제나 감정표현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독신자로서 겪는 갈등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는지 전혀 다루지 않는다. 대화를 할 수 있는 사목자가 아니라 일방적으로 지시하는 사목자를 모델로 하고 있다. 그래서 일반 신자들은 사목자들을 믿고 신뢰하지 않는다.         

그래서 수도회와 선교회에서는 교구신학교에서 학생들을 빼내서 'ISET'이라고 불리는 신학원에 학생들을 보내고 있다. 이 신학원은 선교수도회들이 자발적으로 모여서 운영하는 학교이며, 남녀평신도와 선교사, 수도자들이 함께 공부하는 개방적인 학교다.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오는 신학생들도 있다.

-지역사회에 대한 교회의 태도는 어떠한가? 

알바로: 칠레에서도 교구마다 다르다. 교구장의 성향에 따라서 움직이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아이신 교구는 생태계 문제에 관심이 많은데, 칠레 남쪽에 위치하여 비가 많이 오는데도 대기업들이 댐을 만들어 통제하여 '물 문제'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바예나르(Vallenar) 교구는 칠레 북쪽에 위치한 사막지대인데, 금-은광산이 있어서 대기업들이 금과 은을 캐기 위해 산 위에 있는 빙하를 없애려고 한다. 그래서 교구장은 이를 반대하고 있다. 이처럼 교구의 환경에 따라서 대응하는 방법이 다르다. 다시 말해, 칠레교회는 하나로 볼 수 없으며, 교구장의 성향이나 이슈, 환경에 따라서 다른 모습을 보인다.

크리스: 교회가 지역 문제에 참여하게 되는 경우에 공통적인 것은 모두가 '다국적기업의 횡포" 때문이라는 것이다. 기업과 지방정부가 결탁하여 생태계 문제나 원주민 피해를 낳는다는 것이다. 현장에서 이 기업들은 간혹 사회복지에 기여하기도 하는데, 이를테면 예수회에서 운영하는 '그리스도의 집'(Hogar de Cristo)  같은 곳을 지원한다. 여기서는 가난한 아이들에게 컴퓨터 교육을 시키기도 하는데, 지역에 좋은 인상을 주고 있다. 그러나 이곳에선 아이들의 의식화를 가로막는 효과를 낳고 있다.

알바로: 중남미의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겠지만, 칠레에선 전기, 벌목, 어업 등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데, 특히 '물' 문제가 심각하다. 칠레 헌법에는 "물은 국민의 것이며 공동선을 위해서 써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지만, 기업이 샘을 파고, 여기서 나오는 물의 80%를 광산에서 마음대로 써버리고 오염된 물을 흘려보내기 때문에 당장 식수문제가 발생한다. 물론 지방정부가 허락한 거다.

벌목회사에선 파인(pine)이나 유칼립투스 등 많은 양의 물을 먹고 빨리 자라는 나무를 심기 때문에 물 부족으로 원주민들은 이사를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칠레 남부의 기업에선 대규모로 옥수수를 심지만 주민들은 여전히 가난하다. 게다가 이 옥수수들이 짐승 사료용으로 가공되기 때문에 원주민들이 가져다 먹을 수도 없다. 그런데도 실제 이 지역의 대다수 주교들은 이런 문제보다 '콘돔 사용' 문제에 더 신경을 쓰고 있다. 한심한 일이다.

이를테면 칠레의 수도인 산티아고의 추기경은 올해 부활절 메세지에서 낙태 문제와 장기기증에 대해서만 다루었다. 

▲ 크리스 사인스 신부는 오랫동안 칠레에서 원주민과 살았으며, 지금은 페루에서 양성담당으로 일한다.

-페루와 칠레뿐 아니라 교황청에서 새로 임명한 대부분 고위성직자들이 보수 성향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래도 중남미에는 원주민 중심의 그리스도인기초공동체(BCC)가 광범위하게 퍼져 있어서 다행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이 점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크리스: 주교마다 편차가 있기 마련이지만, 그래도 지난 2007년에 브라질의 아파레시다(Aparecida)에서 열린 중남미주교회의(CELAM)에서는 대륙의 모든 주교들이 참석하여 그리스도인기초공동체(BCC)를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대륙선교에서 소그룹 위주의 도시선교를 선언했다. 그리고 주교회의에 처음으로 평신도대표들과 여성, 에큐메니칼 교회단체들을 초대했다. 다행한 일이다.

한편으론 새로 신설된 교구에서는  새로운 그룹이 형성되고 있는데, '네오 카스쿠메노스(Neo Cathcumenos, '새로운 교리'라는 뜻)'라는 양성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한다. 여기서 가르치는 교리는 상당히 보수적인 내용을 담고 있으며, 거기에 속해 있는 신자들끼리만 모여서 미사를 드리고, 배타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여기에 속한 사제가 본당에 부임하면, 이 프로그램을 실행하고, 그 사람들 중에서 사람을 뽑고, 이 사람들을 중심으로 미사를 봉헌한다. 이밖에는 '루멘 데이(Lumen Dei, 하느님의 빛)나 '오푸스 데이'같은 보수적인 조직들이 확산되고 있다. 

[결국 고위성직자들과 평신도 그룹 등 전반적으로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이 공존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물론 대부분 주교들은 보수 성향이 강한 편이고, 그러한 맥락을 따르는 평신도운동이 확산되는 가운데, 한편에선 원주민들의 권익을 옹호하려는 그룹도 활동하고 있고, 특히 선교회나 수도회를 중심으로 진보 성향의 그룹도 남아 있는 셈이다.] 

[인터뷰가 진행되는 도중에 알바로 신부가 자리를 비웠다. 군복무 후에 복학하기까지 6개월 정도 칠레에서 사목체험을 하고 온 서울교구와 의정부교구  소속 신학생 7명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인터뷰는 크리스 신부를 중심으로 마무리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 목요일 십자가의 길을 용산참사 현장에서 드리던 날, 오기백 신부님과 오셨는데, 소감을 듣고 싶다.

크리스: 비극적인 현장에서 연대하는 모습을 보고 감동했다. 비록 말은 못 알아 들었지만 그 마음은 충분히 전달받을 수 있었다. 미사 끝나고 원로사제인 문정현 신부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는데,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데 나이가 장애가 되지 않는다는 걸 느꼈고, 나이가 많아도 항상 배울 수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나는 그날 아무 것도 가져오지 않았는데 음식을 나눌 수 있었고, 따뜻한 관심 안에 있다고 느꼈다.

크리스 신부는 본래 미국 출신으로, 2000년에 사제서품을 받고 칠레에서 8년 동안 사목활동을 했으며, 현재는 페루에서 원주민들과 생활하며 신학생 양성과 영성지도를 맡고 있다. 부모가 한국 아이들을 입양하여, 지금은 위에 누님 두 분이 한국인이라고 한다. 그리고 칠레에서 김종근 신부와 한국인 수녀들을 만날 기회가 많아서 한국에 대해 잘 알고 있다면서, 특별히 성골롬반선교회 평신도로 선교사로 칠레에 왔던 장은열 골롬바 씨를 기억했다. 그녀는 칠레에서 가난한 이들과 함께 사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는 것이다. 또한 한국 신자들이 너그러운 편이어서 후원도 많이 해주었다고 전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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