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교회의 여성소위 세미나

가정폭력 피해자, 이주민, 미혼모 등 힘든 처지에 있는 여성들을 지원하고 연대하는 시설에서 일하는 가톨릭 여성들은 신자들의 관심과 교회의 지원이 더 많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가정폭력 피해자를 마주한 본당 사목자나 수도자가 기도하며 참고 견디라고 충고하는 것은 문제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국 천주교주교회의 평신도사도직위 여성소위원회는 11월 17일 ‘도전받는 여성들에 대한 교회의 사목적 배려’를 주제로 세미나를 열고 가정폭력 쉼터, 미리암 이주여성 센터, 미혼모자 기관, 세월호참사 희생자의 형제자매들을 위한 공간 ‘우리함께’에서 일하고 있는 여성들로부터 사례 발표를 듣고 교회의 역할을 논의했다.

이미지 출처 = http://cafe.naver.com/vietnamsketch/80755

발표자로 나선 정 세쿤디나 수녀(예수의 까리따스 수녀회)는 가정폭력 피해 여성 쉼터에서 일하고 있다. 2002년 문을 연 이 쉼터는 정원 12명으로 가정폭력 피해 여성과 자녀를 보호하는 한편, 직업훈련과 구직 등 사회 복귀를 지원하고 있다. 입소 중인 피해 여성 보호를 위해 보호시설의 이름, 위치 등 자세한 사항은 발표에 포함되지 않았다. 세쿤디나 수녀에 따르면 서울시내 비슷한 기관으로 12개 시설이 있으며, 이 가운데 3개가 가톨릭 사회복지 기관이다.

정 수녀는 가정폭력은 개인만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문제라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며, 피해 여성과 자녀들을 위한 지원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가톨릭교회에서는 혼인은 해소될 수 없다는 교리 때문에 몇 십 년 동안 폭력을 당해도  참고 견디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이어 세쿤디나 수녀는 부부 모두가 천주교 신자인 가정에서 생기는 가정폭력 사례도 많다면서 이에 대한 신자 재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본당 공동체와 수도자의 역할에 대한 비판도 나왔다. 세쿤디나 수녀는 가정폭력 피해자의 상담 요청에 대해 교회에서는 “기도하겠습니다. 참고 견디면서 기도하면 달라질 것입니다” 등의 말로 위로하면서 피해자가 폭력을 계속 견디도록 방임하고, 실질적인 상담이 이뤄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교회 상담 담당자들이 여성 긴급전화 1366 정도는 알고 대처해야 한다고 했다. 또 여성시설처럼 규모가 작고 국가 지원 예산이 부족한 시설을 우선으로 교회가 관심을 갖고 적극 지원해 주기 바란다고 요청했다.

우정원 미리암 이주여성센터 소장도 천주교 본당 차원에서 성당 근처에 사는 다문화가정, 이주여성을 지원하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우 소장은 지역마다 어려움을 겪는 이주여성, 다문화가정이 있는데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 방치되는 경우가 많다면서, 빈첸시오회가 지역의 가난한 다문화가정을 더 찾아가고, 가까운 곳에 친정엄마나 큰언니 역할을 할 수 있는 멘토가 있다면 한국 생활 적응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리암 이주여성센터는 ‘새 세상을 여는 천주교 여성 공동체’ 부설기관으로 상담, 한국어학교, 결혼이민자 공동체 조직과 지원, 신자와 주민 대상 인식 개선 교육을 해 왔다.

▲ (왼쪽부터) 정 세쿤디나 수녀, 우정원 소장, 남인숙 위원. ⓒ강한 기자

발표에 이어 약 30분 동안 자유로운 질의응답과 토론에서는 가정폭력 피해자와 가해자가 가진 특징이 있는지, 각 기관의 운영비는 어떻게 마련하는가 등 질문과 답변이 나왔다. 남인숙 주교회의 여성소위원회 위원(대구대교구 여성위원장)은 가정폭력 문제는 결혼 초기에 반드시 해결해야 하며, 피해자가 자기 잘못 때문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한편, 기도와 상담 가운데 무엇이 우선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도 있었지만 깊은 토론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남인숙 위원은 기조발제에서 “현대 여성들이 법과 제도 안에서 예전보다 상대적으로 사회 진출이 진일보했다고 평가하지만 사회의 여러 위기상황 속에서 남성들보다 매우 취약하다”면서, 이혼 여성이 자립하고자 할 때 남자보다 경제적으로 불리하며 일자리를 구하기도 어렵다고 지적했다. 남 위원은 특히 부모의 이혼과 가정 해체로 거리에 내몰린 ‘청소녀’에 대한 사목적 관심이 필요하다고 교회에 제안했다.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이날 세미나에는 여성소위원장 염수정 추기경과 위원, 수도자 등 여성 20여 명이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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