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송전탑 반대 대책위 사무국장 이계삼 씨 인터뷰

지난 8월 19일 창원지방법원 밀양지원에서 밀양 송전탑 반대 투쟁을 하다 공무집행방해 등으로 기소된 주민과 활동가들에 대한 결심공판이 열렸다. 검찰은 밀양 어르신들에게 징역 3~4년을, 이계삼 밀양 송전탑 반대 대책위 사무국장에게 징역 3년을 구형했다. 십 년이 다 되어가지만 밀양의 싸움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더 공부하기 위해 교직을 떠난 이계삼 씨가 사직서를 낸지 며칠 지나지 않아 밀양의 이치우 어르신의 분신 사건이 일어났다. 그 일을 계기로 이 씨는 책 쓰고 공부하려던 계획을 잠시 미뤄두고 밀양 송전탑 반대 농성에 뛰어든다. 잠시 함께 하려던 그의 계획과 달리, 그는 4년째 밀양 송전탑 반대 대책위원회 사무국장 자리를 맡아 밀양의 어르신들 곁을 지키고 있다. 개인적인 계획들은 아직 하나도 시작하지 못했다. 대신 이 씨는 현재 밀양의 이야기를 담은 <에너지 정책 백서>를 준비 중이다.

“<에너지 정책 백서>가 하려는 이야기는 결국 밀양 765kV 송전탑 사업이 꼭 필요한 사업이 아니었다는 겁니다. 밀양의 송전탑은 신고리 원전 증설계획과 관련이 있어요. 765kV 송전탑은 탑신만 100m가 넘는 굉장히 큰 설비예요. 우리나라의 가장 큰 원전 10개에서 생산하는 전기를 송전할 수 있는 송전선이 걸리고요. 이렇게 큰 송전탑이 필요한 이유는 한 곳에 너무 많은 원전을 지었기 때문이죠. 거기서 생산되는 전기를 초고압으로 튀겨서 손실 없이 보내려는 것인데, 세계적으로도 이런 거대 설비가 주거지를 지나가는 경우는 없어요. 신고리 원전이 꼭 필요한 것도 아니에요. 올 여름에도 전기가 남아돌잖아요. 발전 설비 중 20% 이상이 놀고 있어요. 원전은 하나를 건설하는데도 엄청난 돈이 걸려 있는데, 유지운영에만 매년 7천억이 들어가요. 원전의 수명이 60년 정도니까 그것만 봐도 40조 넘는 돈이 들어가죠. 큰 이권이 걸려 있다 보니, 수도권으로 전기를 보내는 계획이 폐기되자 그걸 대구권으로 보내겠다고 바꾸면서 계속 진행한 거예요. 엉뚱한 이유를 내세워서 매우 중요하고 필요한 설비인 것처럼 포장해서요.”
 

▲ 이계삼 씨는 밀양에서 어르신들을 통해 가장 큰 힘과 깨달음을 얻는다고 말한다. ⓒ한상봉

올해 12월 5일은 밀양 송전탑 반대 투쟁 10주년이 되는 날이다. 이미 송전탑 공사는 완료되었고, 송전도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200세대의 주민들이 합의하지 않았고, 계속 싸울 의지를 강하게 내비치고 있다. 반대하는 주민들이 당한 인권침해와 마을공동체가 파괴되는 과정도 백서에 포함될 중요한 내용이라고 이계삼 씨는 말한다.

“개발할 때면 반복되는 일인데, 돈으로 주민들을 갈라놓고 회유하다보니 마을공동체는 찬반으로 나뉘어져서 결국 파괴돼요. 반대하는 주민에 대한 인권침해는 언론에도 많이 알려졌죠. 민주적 절차를 전혀 거치지 않은 채 사업 승인을 받고, 공권력과 한전의 막대한 자금을 앞장 세워서 반대 주민들을 겁박하고 탄압했어요. 송전선이 지나가는 마을은 그 자체로 자연사한다고 보면 되요. 파괴된 마을공동체가 재건되는 건 어려운 일이에요. 누가 송전선이 지나가고 파괴된 공동체에 와서 살려고 하겠어요? 회복의 출발은 진실 규명이에요. 투쟁이 정당했다는 승인이 필요하죠. 그러려면 한전과 정부가 자신의 과오에 대해 인정을 해야 해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밀양의 상황을 어두운 표정으로 말하던 이계삼 씨는 그럼에도 밀양의 어르신들을 통해 힘과 배움을 얻는다고 이야기한다. 밀양은 유래 없는 시골 어르신들의 투쟁을 보여준다. 가장 약한 노인, 그 가운데서도 여성 노인이 대부분이다.

“가장 큰 배움은 밀양 어르신의 존재죠. 시골 마을에서 농사짓는 것밖에 모르고, 국가에 반기를 드는 것이 아니라 나랏일이라면 협조해야 한다고 믿어왔던 어르신들이 투쟁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깨달아가는 과정이 감동적이에요. 또한 그분들이 투쟁하는 모습도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죠. 처음에는 자신의 논밭, 집, 건강을 지키려고 시작했지만, 시선이 넓어지면서 약한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는 다른 현장에도 열심히 찾아가세요. 누군가를 만나면 그들의 힘을 이용하는 게 아니라, 고마움을 잊지 않고 되갚아주려고 하시는 모습을 보게 되죠. 사람을 가리지 않고 환대하고 아껴주시는 모습은 다 말할 수 없을 정도죠. 그런 분들이 나라와 후손을 걱정하면서 합의하지 말고 끝까지 싸워야 한다는 결의를 다지시는 모습은 참 놀라워요. 십년 동안 고통스러운 일이 많았는데 무너지지 않는 그 의지가 대단하죠. 한국사회에 큰 변화는 주지 못했더라도 크게 각성시키는 계기였어요. 어르신의 존재에 대한 재발견이라고 생각하죠.”

자신의 소임을 다하는 소박한 삶을 꿈꾸었다는 이계삼 씨는 밀양에서 보낸 시간동안 ‘싸움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고 했다. 자신의 일만 열심히 하는 삶이 다른 한편으로는 ‘근본적인 변화에 대한 책임과 부담을 외면하는 삶’이었다는 깨달음이었다. 이 씨가 밀양의 상황을 알리기 위해 돌아다닌 수백 곳에서 사람들은 안타까워하고 마음 아파했지만, 밀양을 찾아와 연대한 이들은 많지 않았다.

“밖에서 보는 사람들은 밀양 할매들을 측은해하고 안타까워하는데, 뒤집어 생각해보면 밀양 할매들 고통은 할매들 잘못이 아니잖아요. 오히려 안타까워하는 그 사람들이 전력을 소비하고, 밀양과 같은 사건이 일어나도록 십년 넘게 놔둔 이들이잖아요. 원하든 아니든 이 구조에서 이익을 누리는 것은 안타까워하는 바로 그 사람들이죠. 자신의 문제인데 이 고통을 타자화해서 바라보는 것 같아요. 엄기호 씨 말을 빌리면 ‘너의 죽음에서 나의 안전을 확인하는’ 그런 구조죠. 이 일이 나에게도 벌어질 수 있다는 상상력을 잃어버린 시대예요. 저도 예전에는 안타까워하고 그걸 글로 쓰는 사람들 중 하나였어요. 하지만 이젠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투쟁은 고달프고 갑자기 생기는 돌발 상황도 많아요. 그 전에는 집 안에서 자조하면서 지냈다면, 이제는 어르신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고 몸으로 부딪치고 하는 과정이 생동감 있어요. 힘들지만 이게 진짜 삶인 것 같아요.”


이희연 기자
/ 뜻밖의 소식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