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로 마음에 새기는 복음의 기쁨-8]

외화내빈(外華內貧)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겉보기(expression)에는 화려하여 감탄을 자아내지만 실재(reality)는 형편없음을 일컫는 말입니다. 사상누각(沙上樓閣, 砂上樓閣)이란 말도 있습니다. 모래 위에 집을 짓는다는 말인데, 영어로는 종이상자로 집을 짓는다는 표현에 해당합니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지고 성수대교가 붕괴된 적이 있었습니다. 영상으로 그 건물과 다리를 본다면 얼마나 그럴 듯 했겠습니까. 세월호가 침몰했습니다. 무엇으로도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외화내빈도 아니고, 사상누각도 아닌 것 같기 때문입니다.

외화내빈을 떠올리는 장면이 교회에도 있습니다. 교우들이나 신부님들이 유럽 성지순례(?)를 다녀와서 하시는 말씀 중에 단골메뉴처럼 등장하는 말입니다. “굉장히 크고 오래되었으며 화려한 성당인데, 성당에 주일미사 참례하러 갔더니 제대 앞에 몇몇 사람만 모여 있더라.”라는 식의 평가입니다. 유럽 교회가 ‘외화내빈’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덧붙입니다. “우리나라의 성당하고는 너무 다르더라.” 평일에도 성당을 찾는 교우가 많고, 주일에는 성당이 좁아서 분가하거나 증축해야 할 지경이라는 것입니다. 주일날 성당 앞 도로에 두 줄로 주차하는 것을 도로교통법 위반으로 단속하느니 않느니 하는 이야기까지 나눕니다. 말하자면, 우리는 ‘외화내화’이며 ‘축복’이라는 것입니다.

ⓒLuis Llerena

정말 우리 교회는 ‘외화내화’의 ‘축복’일까요? 성당을 새로 짓거나 증축해야 할 정도로 붐비기는 합니다. 그렇게 교회가 ‘외화내화’의 길을 걷는 사이에, 지난 호에서 말한 ‘번영의 신학’을 쫓는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요? 하느님께서 너무나 사랑하셔서 당신 아들을 건네주신 ‘하느님 백성’은 어떻게 살고 있지요?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세상, 그리고 당신 스스로도 보시기에 좋았다는 이 세상은 어떤 모습을 드러내고 있나요? 혹시 제도로서의 교회는 ‘외화내화’ 하는데, 하느님 백성은 메마른 사막에서 마실 물과 먹을 음식을 구하느라 방황하며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렇다면, 이렇게 말하는 것이 적절할 것 같습니다. ‘교회의 외화내화’와 ‘세상의 외화내빈’이라고 말입니다. 제도로서의 교회는 화려하고, 그 안의 교우들은 양적으로 팽창합니다. 신앙의 성숙은 여기서 말하지 않겠습니다. 세상은 세월호처럼 겉보기에는 호화롭고 안락한 유람선 같지만, 무수한 시민은 세월호 사건의 희생자처럼 ‘죽음’의 극한으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교회의 이런 ‘외화내화’의 축복과 세상의 ‘외화내빈’을 ‘끔찍한 참화’라 하며 다음과 같이 밝힙니다. “영적 세속성(spiritual worldliness)은 ... 여러 형태를 띠고 나타납니다. 그것은 정교하게 개발된 모습을 갖고 있기 때문에 분명히 드러나는 그런 외적인 죄와 언제나 결합되지는 않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죄가 없는 것을 보고, 모든 일이 마치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처럼 내보입니다. 그러나 만일 이런 영적 세속성이 교회에 스며든다면, 단순히 도덕적이기만 한 다른 모든 세속성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한 참화(infinitely more disastrous)를 가져올 것입니다.”(93항) 여러 형태를 띠고 나타나는 이 ‘영적인 세속성’*은 ‘교회의 공간을 점유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갖습니다.(95항) 그리고 “경건한 것처럼 보이는 것 뒤에, 교회를 사랑하는 것(love for the Church) 뒤에도 숨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주님의 영광이 아니라 인간의 영광과 개인적 행복을 추구하는 것에 불과합니다.”(93항)

한편에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자신의 경제적 이익과 권력의 욕망을 채우고 있는 소수(교회든 사회든 그 공간을 독점하려는 소수)가 있고, 다른 한편에는 대다수 하느님의 백성과 세상이 죽음의 변두리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이를 교황은 “끔찍한 참화”라고 합니다.

*영어 본문은 'worldliness(세속성)'와 'secularization(세속화)'을 구별하고 있다. 여기서는 'worldliness'를 사용하는데, 2항을 참조하는 것이 그 의미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세상을 휩쓸고 있는 ‘소비주의’와 ‘개인적 이기주의’의 물결에 교회가 그 정신과 태도와 생활로 동참하는 현상을 'worldliness'라고 볼 수 있다.


박동호 신부/신정동성당, 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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