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여기 인권]

 

용산참사 현장에서 봉헌된 촛불평화미사를 마치고 음식을 나누어 먹고 있는 참석자들.(사진/ 김용길) 


지난 3월 28일 용산 철거민들의 빈소가 있는 순천향 병원에서 참사현장인 용산까지 시국미사에 참석하기 위해 유족들과 함께 봉고차로 이동했다. 한남동을 빠져 나와 강변북로를 거쳐 용산에 이르는 동안 개나리와 진달래, 목련을 볼 수 있었다. 나는 기분이라도 전환시킬 겸 “저 꽃 좀 보세요”라고 함께 가는 유족들께 말을 건냈더니 “아직 차디찬 냉동고에 있는 남편을 생각하니 가슴도 얼어붙었다”고 말씀하신다.

오늘로 용산참사가 일어난 지 70일째가 된다. 참사 현장에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싶게 사람들과 차들이 오가고 주변 지역에 철거는 계속 진행 중이다. 지난 1월 30일 경찰의 과도한 폭력 진압으로 5명의 철거민과 1명의 경찰관이 숨진 곳이라는 흔적은 문화예술인들이 남겨놓은 설치작품 뿐이다. 파괴된 건물 사이로 불어오는 봄바람은 을씨년스럽다. 재개발로 인해 사람이 6명이나 죽었지만 개발의 환상은 아직까지 한국사회에서 꺼지지 않고 있다. 서울에서 철거가 진행되고 있는 곳은 용산 재개발 현장뿐만이 아니다. 남산 산책로는 남산 르네상스라는 이름으로 옛스런 돌계단들이 온통 아스팔트 길로 덮여지고 있으며 한강 역시 몸살을 앓고 있다.

현재 서울 35개, 경기 13개 등 전국 60여 지역이 뉴타운 및 재정비촉진지구로 지정되어 있으며 서울 수도권 20여 곳에서 추가 지정을 추진 중에 있다. 서울에서만 재개발 299개 구역, 재건축 266개 구역이 지정되어 있다. 부동산정보업체 따르면 2008년 상반기 서울에서 관리처분인가가 난 사업장은 총 16곳, 개발면적은 63만3,643㎡로 조사됐다. 2007년에 비해 관리처분인가 8곳, 개발면적 32만4,362㎡ 보다 2배가량 증가한 수치이다. 가히 개발광풍이라고 불릴만 하다.

‘개발 광풍’은 사람답게 살려는 욕구를 마치 나쁜 주술에 걸린 것처럼 무감각하게 만든다. 돈만 벌 수 있다면 사람 목숨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며, 사람답게 살려고 저항하는 몸부림을 생떼쓰기로 둔갑시킨다. 27여명의 검사들이 기껏 조사해서 밝혀놓은 사망원인이란 것이 철거민 스스로 화염병을 던지는 바람에 사고가 발생했다는 어이없는 결과이다.

진실을 밝히기 위해 노력하는 유가족들은 병원이 생활터전이 되어버렸고, 또 다른 개발의 희생자를 만들지 않기 위해 투사가 되었다. 검찰은 이미 대책위 공동집행위원장 이태년 씨를 구속시켰고 김종회, 박래군 씨에게는 사전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이들은 병원에서 때 아닌 감옥살이를 하고 있다.

살려고 망루에 올라간 용산 4구역 철거민들은 죽어서야 내려왔고, 경찰의 과잉진압은 덮어지고, 철거민들은 테러리스트가 되어버렸다. 진실은 사라지고 사람들은 망각을 선택하면서 용산참사는 잊혀진 듯하다. 그러나 나는 묻고 싶다. 가난한 사람들을 쫒아내고 생명까지 앗아가면서 이룬 개발이 과연 우리를 행복하게 할 수 있느냐고. 사람답게 살고자 하는 저항을 짓밟으면 권력에 가까이 갈 수 있느냐고. ‘사람다움’의 진정성이 사라지고 가난한 사람들의 피와 한숨, 눈물이 녹아있는 이 도시에서 당신은 살고 싶으냐고. 그리하여 돈을 향해 쫒는 자본의 탐욕과 이들을 해바라기 하는 권력의 폭주를 그만 멈추라고 말하고 싶다.

진실이 밝혀지고, 죽어간 사람들의 명예가 회복되는 순간까지 개발의 광풍이 불러온 주술에서 깨어나자. 죽어간 사람들을 기억하고 진실을 밝히려는 사람들과 함께 연대하자. 이미 문상을 다녀왔어도 순천향 병원 영안실에 있는 분들을 만나고 유가족의 손을 잡자.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고발운동에 함께 하고 장례비 마련과 유가족 후원을 위한 모금운동에 지갑과 주머니를 털자. 그리하여 아직 봄을 느끼지 못하는 유가족과 수배자들의 가슴 한구석에 따스한 봄볕을 쪼여주고 봄바람을 불어넣어 주자!  

최은아/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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