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호 신부에게 길을 묻다

평소 좋은 글과 말씀으로 우리를 위로해주는 ‘산위의 신부님’ 박기호 다미아노 신부를 만났다. 겨울나무 사이를 지나 산 깊은 곳의 마을로 찾아가 만나보고 싶었으나, 여의치 못해 도시의 한 공간에서 만나야 했다. 1998년 예수살이공동체를 시작하여 충북 단양에 ‘산위의 마을’을 설립한 박 신부는 2004년부터 그곳에 들어가 여럿이 함께 살고 있다.
 

▲ '산위의 마을' 박기호 신부. ⓒ한상봉

‘산위의 마을’은 애초 반소비주의로 시작했는데, 어려움은 없으신지요?
예수살이는 시대의 키워드를 소비문화에서 찾으면서 시작되었죠. 소비문화가 갖는 엄청난 위력을 교우들에게 알리고, 여기서 벗어나는 실천생활을 끌어내고 싶었어요. 이제 17년 되었는데, 지금 생각해도 ‘소비문화’라는 키워드를 잡고 신앙 안에서 대안을 찾으려고 한 점은 잘 한 것 같아요. 소비문화가 우리의 삶을 구체적으로 규제하고, 지금도 그 폐해가 점점 심해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으니까요.
문제는 공동체의 영성을 우리가 잃어버린 데서 오는 것 같아요. 소비문화를 극복하는 해법은 결국 삶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인데, 자본주의를 사는 우리 현대인들이 소비문화를 과연 넘어설 수 있는지 걱정 됩니다. 그 간극이 너무 커서 소비문화를 접는다는 것은 사회생활을 할지 말지, 자식교육을 할지 말지, 결단을 내리라는 주문처럼 들려서 어려움이 생기죠.

공동체 생활이 소비문화를 넘어서는데 얼마나 도움이 될까요?
예수살이는 두 가지 방식으로 접근했어요. 하나는 ‘운동’인데, 도시에서 비소비적으로 살아보자는 것이고요, 다른 하나는 공동체인데, 산속에 일종의 쉼터를 만들어보자는 것이죠. 그래서 새로운 삶의 징표로서 ‘산 위의 마을’을 만들었습니다. 이 공동체마을에서 새로운 삶을 실험해 보자는 것입니다. 문제는 사람인데, 공동체는 혼자 할 수 없으니 함께 할 사람이 필요합니다. 공동체에서 함께 할 사람들을 찾아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좋은 식구들을 양성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는 것을 경험으로 깨닫게 됩니다. 첫 마음은 그대로인데 이런 방식으로 하나의 큰 흐름을 만들어 갈 수 있을지 여전히 고민이 됩니다. 신념은 있지만 실현에 대한 벽을 느끼는 거죠. 어떤 연유로든 마을에 찾아온 이들을 제대로 의식화 시키고, 그들의 삶을 변화시키는데 충분히 성공하지 못한 것 같아요.

공동체에서 인간관계가 제일 힘들 것 같아요. 관계에서 오는 갈등은 어떻게 극복하시는지요?
지난번에 교구장님을 뵈었는데, 산위의 마을은 수도회를 하는 것이냐고 묻더군요. 우리는 수도회는 아니지만, 우리의 삶 자체를 수도회처럼 이상적으로 추구하지 않으면 우리가 바라는 공동체의 삶을 얻어낼 수 없다고 느낍니다. 기도와 노동, 친교와 성사생활을 통해 우리가 희망하는 공동체를 이루고 싶은 거죠. 특히 노동을 두려워하지 않는 생활을 목표로 삼아 살고 있는데, 식구들이 노동에 대해서는 잘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 그런데 사람관계가 가장 힘들죠. 사람이란 본성적으로 자존심, 명예 그런 것들이 중요하잖아요. 이런 것들을 잘 조율하는 게 힘들죠. 매일 저녁 기도 중에, 그날 일어난 일 중에서 마음에 걸리는 것을 하느님 안에서 성찰 고백하는 시간을 꾸준히 갖고 있어요. 일상생활을 구체적으로 성찰하는 것입니다. 처음엔 형식적인 게 되더라도 자기 성찰 기회를 꾸준히 가질수록 내면의 인식능력이 높아집니다. 처음에는 화를 낸 후에야 자신이 화를 냈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만, 자꾸 성찰하다보면 화를 내려는 자신을 미리 느끼게 되는 거죠.

교회 안에서 ‘산위의 마을’ 같은 공동체는 처음인데, 신부님 역할이 중요한 것 같아요.
저는 그냥 제 길만 바라보고 걷고 있습니다. 주변에서는 제가 공동체에서 물러난 뒤를 걱정하시는 분도 계십니다. 공동체의 지속성이 유지되겠느냐는 거죠. 처음엔 생각하지 못했던 점인데, 이제는 적절한 시기에 물러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 나이가 66세가 되니 생각이 많아집니다. 계속 마을을 이끌어 갈 사람이 필요합니다. 뭐든지 식구들과 함께 논의하고, 사심 없이 결정하는 사람, 주인의식과 기본 신념을 확실하게 갖춘 이에게 멤버십을 부여하도록 마음을 쓰고 있습니다. 또 신앙공동체니까 성사생활 없이는 공동체가 제대로 유지되기 어려울 것 같아서 예수살이 길벗사제들이 예전보다 더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제가 언제까지 이 역할을 할 수는 없으니까요.

벌써 일선에서 물러날 생각을 하시는 건가요?
이미 촌장 역할을 오래했습니다. 제가 물러나야 젊은 사람들이 성장합니다. 어떤 단체나 공동체든지 처음 개척한 창립자보다는 그 운동을 이어받는 차세대에서 발전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해요. 프론티어들은 건설자입니다. 그저 비 새지 않고 바람 들이치지 않을 정도의 집을 짓는 것이고, 그 다음 세대가 그 안에 문화적 공간도 만들고 공동체를 완성하는 것이지요. 수도회 창설자들도 영성적인 것만 가지고 시작하잖아요. 우리 공동체의 기본은 영성, 구성원, 생산양식 이렇게 세 가지인데, 지금 보자면 제가 이룬 성적은 C학점 밖에 안 되는 것 같아요. 생산양식으로는 육체노동을 건강하게 받아들이게끔 이뤄냈지만, 다음 세대에서 구성원과 재정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바랍니다.
가톨릭교회에서도 개신교의 아미쉬공동체처럼 가정을 가진 이들이 무소유의 삶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그런 모임이 있으면 좋겠어요. 사실 이런 운동은 21세기에 큰 신앙운동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운동체가 각 교구 마다 하나씩 있었으면 좋겠다고 주교님들 만나 뵐 때마다 강조합니다. 몇몇 교구에서 그런 바람을 가진 사제가 나타나는데 교구와 사제의 관심이 합쳐지면 가능하겠지요.

▲ 산위의 마을은 기도와 노동으로 소비사회를 탈출하는 실험을 거듭한다.

공동체 생활에서 찾을 수 있는 가장 큰 가치는 무엇인가요?
공동체 생활을 통해서 내가 뭘 얻는 게 아니라, 공동체 생활을 함으로써 악령으로 포박된 현대 물질주의 사회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해방의 문제죠. 지금 현대인의 삶 자체가 복음서에 등장하는 악령의 세력에 장악되어 있다는 것을 우리가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게 가장 큰 문제입니다. 소비문화, 돈 문화 자체가 어떻게 악령의 기능을 하는지 분명히 알아야 해요. 공동체 생활을 통해서, 이런 악령에 의지하지 않고 도움 받지도 않으면서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주어야 합니다. 성령에 이끌려 살아가면 악령에 복무하고 있는 물질과 돈의 우상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세계관을 가져야 합니다. 이런 세계관과 인생관이 분명해지는 게, 바로 공동체 생활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의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미 소비문화에 젖어있는 우리가 무엇부터 시작할 수 있을까요?
옛날에 했던 장애체험이 기억납니다. 오른손이 없다고 생각하고 왼손으로 글씨를 써보는 거지요. 손이 없으면 발, 발이 없으면 입으로 뭐든 할 수 있다는 경험을 해봐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 아주 절실하게 여기던 것을 잃어버리고도 살아갈 수 있는지 질문을 던져봐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 삶을 지배하고 있는 우상인 돈과 라이센스, 고등교육, 스펙 등 이런 게 없으면 우리는 살 수 없을까요? 아니요, 살 수 있습니다! 공동체 생활을 하면 그게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런 점에서 공동체 생활이 반드시 농업과 결합이 되어야 하는 것이지요. 산업화 사회의 특징은 전문성을 강조하는 것인데, 이런 사회에서 전문성을 뺏어버리면 그 사람은 완전히 무력해집니다. 그래서 공동체는 한 인간이 가지고 있는 기능적인 건강성, 즉 다양한 노동의 능력을 찾아내려고 합니다. 우리 마을 같은 데 살다보면, 고학력 전문성의 허구를 생활 속에서 깨닫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컴퓨터를 아주 잘 하지만, 밭일이나 기계에 엔진오일을 넣는 일은 잘 못합니다. 그렇지만 하다보면 누구나 그동안 전혀 하지 않았던 일도 잘하게 되지요. 기도하고 노동하라고 베네딕도 성인이 말씀하셨는데, 여기서 노동이란 밭노동을 말하는 것입니다. 흙에서 사람들과 함께 하는 일이죠. 밭노동과 기도가 관상생활의 기본입니다.

산위의 마을에서 겨울철에는 어떤 일을 하십니까?
11월말이 되면 농사가 끝나고 청국장 가공 일을 합니다. 새해 봄 농사를 준비하기도 전에 봄이 와요. 우리는 겨울시간을 정주생활이라고 해서 33일 동안 밖에 나가는 일 없이 틀어박혀서 생활합니다. 동안거 같은 거죠. 아직 청국장 생산량이 많지 않아서 유통판매를 하지는 못합니다. 앞으로 콩 중심 가공식품을 만들어 낼 생각입니다. 그동안 5년 숙성을 목표로 된장, 청국장, 효소를 담가 왔는데 내년이면 처음으로 개봉하게 됩니다. 현재 일곱 가구가 생활하고 있는데, 현재 밭이 이만 평 정도지만 절반 정도만 경작하고 있어요. 동네 연세 많으신 농부들은 혼자서 하는 규모지만 우리는 식구들이 전부 다 붙어서 일해야 합니다. 이제 봄이 되니 다시 일을 시작해야죠.

신부님 말씀을 듣고 있으니 갑자기 밭일이 하고 싶어집니다. 말씀 감사합니다.


권은정 기자 
/ 뜻밖의 소식, 인터뷰 전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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