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즈 문제, 사회구조적으로 보아야.."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18일(현지시간) 아프리카 카메룬의 수도 야운데의 한 성당에서 파울 비야 카메룬 대통령(왼쪽)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야운데 AP=연합뉴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지난 3월 17일 아프리카 순방차 카메룬으로 향하던 비행기 안에서 연 기자간담회에서 “콘돔 배포로는 에이즈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킨다”고 말했다고 <에이피>(AP) 통신이 보도했다.

교황의 발언은 격렬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유엔에이즈계획(UNAIDS)은 다음날 성명을 내어 "콘돔 사용은 에이즈에 대처하기 위한 노력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며 콘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유럽 각국 정부와 주요 언론들도 "교황이 에이즈로 가장 고통받는 대륙을 방문하면서 에이즈와의 전쟁에서 콘돔이 갖는 가치에 의문을 제기한 것은 문제"라고 꼬집었다. 또한 남아공의 에이즈 예방단체는 "교황의 발언은 아프리카 사람들의 생명보다 교리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비꼬았다.

파문이 커지자 교황청은 교황의 발언이 "콘돔이 문제를 더 나빠지게 할 위험이 있다"는 것이었는데, 영어권 언론이 “콘돔이 문제를 악화시킨다”고 번역하면서 미묘한 뉘앙스의 차이를 낳았다고 해명했다. 또 교황의 이번 발언은 '성의 사용에 대한 책임성 교육 및 결혼과 가족의 역할 강조', '에이즈의 효율적 치료에 대한 연구 및 실행', '에이즈 환자에 대한 인간적이고 정신적 지원'이라는 가톨릭교회의 방침을 재확인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바티칸의 해명에서 보듯이 생명 존중에 대한 교회의 입장은 분명하다. 하지만 교회의 가르침을 몸으로 살아야 하는 신자들이 가르침을 제대로 살아내고 있는가는 별개의 문제다. 예를 들어 낙태에 대한 교회의 입장을 알면서도 일반인들의 낙태 경험(10명중 약 4명꼴)과 그 비율에서 신자들 역시 별 차이를 보이지 않는 현실은(서울교구 가정사목부, 2000년 조사 / 주교회의, 2004년 전국조사)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신자들의 낙태 비율이 일반인과 별 차이가 없으니 교회는 더욱 관련 교리를 알리고 반대운동에 노력해야 한다는 결론은 교회의 가르침을 거스르는 죄인들을 양산해내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서 생겼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서 생기지는 않았습니다."(마르코 2,27)라는 말씀처럼 교회의 가르침을 포함한 모든 하느님의 법은 인간 존재에 봉사하려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관점에서 다시 돌아볼 일이다.

가톨릭교회가 생명 문제를 보는 관점은 개인, 가정문제와 관련이 깊다. 이는 달리 말하면 개인과 가정문제로 생명 개념의 폭을 좁힌다는 말이기도 하다. 가톨릭교회가 발표하는 생명-가정 관련 문서들을 보면 현대사회에서 낙태와 이혼 증가로 가정의 정체성이 심각하게 침해되고 있으며 이러한 '죽음의 문화'의 뿌리에 낙태가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가정은 죽음의 문화라고 불리는 것에 반대하여 생명문화의 중심을 이루며, 가정의 기본임무는 생명에 봉사하는 것"이라고 교황의 말을 인용해 강조한다.

한국교회에서도 가정문제를 다룰 때 늘 '생명' 문제가 따라 다니는 것은 이런 관점 때문이라고 봐도 크게 틀리지 않다. 따라서 가정문제는 사회적이고 구조적 시각보다는 '생명-나-가정-교회-사회-세계'라는 단계론적 인식을 바탕으로 한다고 보인다. 이 논리대로면 교회와 사회의 모든 문제는 가정에서 나오고 가정 내 모든 문제는 낙태와 같은 반생명적 행태에서 나오니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도덕적, 종교적 회개'를 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는 사회구조적 악과 아무런 관계 설정을 하지 않음으로써 가정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천도 사회구조적 대응보다는 개인의 도덕적 차원에 머문다고 할 수 있다. 이번 교황의 '콘돔 발언'도 낙태 문제와 마찬가지로 에이즈 문제를 사회구조적 시각에서 접근하려 하지 않는 가톨릭교회의 접근 방식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사제들의 성적 일탈로 골머리를 앓는 미국교회는 거의 모든 교구에서 아동을 상대로 한 성추행 관련 소송이 벌어진 바 있다. 미국 캔자스시티 <스타>지가 10여 년 전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에이즈로 사망한 그 지역 사제들의 비율이 일반인보다 4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교황의 이번 콘돔 발언이 아프리카가 아니라 가톨릭 사제들을 향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경동현/ 지금여기 기자, 우리신학연구소 '우리신학배움터 울림' 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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