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언론] 3월 15일자 2639호 <가톨릭신문>과 1010호 <평화신문>

에돌지 않고 바로 들어가자. 정교분리와 정치에 대한 의견 표명은 다른 것이다. 더욱이 정치판에 대하여 바르게 가야하는 길을 종교인의 입장에서 말하고, 교우들에게 지침으로 새길 말을 하는 것은 때로는 복음에 대한 이해만큼이나 필요하다. 얼마 전 선종하신 김수환추기경이 남기고 간 한 자락 모습에서도 그런 역할을 뚜렷이 볼 수 있었다. 남의 집 하는 일을 보고 우리 집 타박해봐야 소용없겠지만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일을 이번 주 기사 속에서 볼 수 있다. 둘 다 나라밖 소식이다.

‣ 인도주교단와 한국주교단

<가톨릭신문>이 6면에 3단으로 다룬 외신은 인도주교단이 총선을 앞두고 발표한 성명 내용이다. 인도주교단은 종교적 영향력으로 보자면 한국주교단에 따라오지 못한다. 힌두교가 주류인 사회를 향하여 ‘용감하게’ 인도주교단이 말한 것을 들으면 감탄사가 절로 난다. 한국천주교 주교회의가 지난 어떤 선거에서도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어보지 못했다. 인도주교회의 사무총장 대주교는 성명을 통한 총선 지침을 통해 “범죄기록이나 전력이 없고, 젊은이와 여성, 특히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후보자를 선택해 달라”고 주문하였다. 짧지만 그 속에 할 말은 다 담겨있다.

국내의 각종 선거 때마다 나오는 입후보자들의 말도 안 되는 범죄이력들, ‘기억나지 않는다’는 오리발 재산 내역들, 겉 다르고 속 다른 다중인격자들과 그들이 만들어내는 이전투구의 정치판에 대하여 한국천주교회 주교단은 어떤 태도를 보여 왔는가? 선거후 인사치레로 방문하는 당선자에 대한 덕담을 하기보다는 주교단의 서슬에 그들이 찾아오지 않을 지라도 명확한 용어와 태도로서 국가가 바로 설 수 있는 의지를 표명해야 한다.

심지어는 국회의원 선거후 각종 선거법 위반으로 당선무효 처리되는 인사들 중 천주교인들이 줄줄이 나와서야 교회의 얼굴이 서지 않는다. 창피하면 가르침의 부족이라고 말하며 주교단이 스스로 자신에게 회초리라도 들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국민 모두가 치르는 세금 없이 지내는 종교인들의 진정한 세금일 것이다. 국가에 봉사하는 길, 그것은 주교단의 쓴 소리에서 시작될 수 있다.

‣ 유모차 시위와 집시법

재미있는 사진이 실렸다. 그러나 시위 당사자로서는 재미있는 것이 아닌 진지한 의견 표명이며, 그것을 기사화 한 미국천주교회 <CNS>통신의 의미를 담은 보도였다. <평화신문>이 제휴기사로 7면에 실은 1단짜리 기사는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연방정부의 지원을 허용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자 유모차를 동행한 여성이 백악관 앞에서 ‘Stop killing our Children(우리 아이를 죽이는 일을 중단하라)’고 쓴 플래카드를 들며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는 사진과 내용이다.

미국의 집시법과 한국의 집시법이 내용이야 다르겠지만 상당히 흥미로웠다. 1인 시위가 아닌 것이 분명한데도 백악관 앞을 허용한 것이나, 유모차시위가 한국 경찰에게는 경계대상이지만 그곳의 유모차를 탄 아이는 한가로이 있는 것이 여러 생각을 하게 했다. 교계신문이 미국의 유모차 시위소식을 전하면서 한국의 촛불문화제 때 유모차가 나오게 된 것에 대하여, 유모차 ‘부대’의 사법처리에 대하여 어떻게 접근했는지는 더 부연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말없는 산을 보고도 배우고, 강을 보고도 배우며, 수천 년 전의 구약성경을 통해서도 배우는 것이 사람이라면 눈앞에서 들리는 인도주교단의 진솔한 성명서와 대통령 면전에서 벌어지는 유모차 어머니의 목소리에서 배우지 못할 것이 무엇인가? 주교단과 언론, 그대들은 교회의 중심이다.

 

김유철/경남민언련 이사, 경남도민일보 지면평가위원 
            천주교 마산교구 민족화해위원회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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