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국수집 이야기]

 

민들레 국수집이 있는 이웃 동네(사진/김용길)
 
예순 일곱 할머니가 월세 10만원에 삽니다. 기름 값이 너무도 비싸 보일러를 켤 엄두도 못 냅니다. 전기장판을 살 여유도 없습니다. 평생 남의 자식 키워주다가 혼자 삽니다. 쌀을 한 포 드렸더니 고마워 어쩔 줄을 모릅니다.

며칠 전에 용산 참사 유가족들의 농성장에 쌀이 떨어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쌀을 나눠드리고 나니 국수집 쌀이 달랑거렸습니다. 그런데 또 뒷집 할머니께 쌀을 나눠드리니 대성 씨가 우리 쌀도 없는데 대책도 없이 나눠준다면서 볼 멘 소리를 합니다.

그런데 성남에서 찾아오신 부부께서 여행을 하려고 붓던 적금을 탔는데 여행 대신에 그 비용을 민들레국수집에 도와주고 싶다고 찾아오셨습니다. 쌀 열 포와 달걀 스무 판을 선물해주셨습니다. 또 종로에서 사시는 아주머니께서 물어물어 힘겹게 찾아오셨습니다. 쌀을 다섯 포나 선물해주셨습니다. 우리 쌀도 없는데 하면서 볼 멘 소리를 하던 대성 씨가 신이 났습니다. 곧이어 택배도 두 개나 도착했습니다. 멀리 순천에서 보내 준 선물은 라면입니다. 의정부에서 보낸 귀한 선물에서는 쪽지가 함께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그 동안 건강히 잘 지내시는지요. 한우 잡뼈와 고기를 좀 보내드립니다.
얼마 되지는 않지만 맛있게 끓여 거기 오시는 분들과 함께 행복을 나누었음 합니다.
잡뼈와 고기는 찬물에 한 시간 반 정도 담가 두셨다가 건져서
한 번 끓여 버리신 후 충분한 물을 붓고
오래 뽀얀 국물이 될 때까지 끓이시면 됩니다.
저에게 행복 나눠 주신 것 너무 너무 감사드립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우리 손님들께 파 송송 썰어서 뽀얀 국물에 넣어드리면 얼마나 좋을까! 신이 나서 국거리를 찬물에 담가 놓았습니다.

용자할머니가 오후 3시쯤 식당 문을 힘겹게 열고 들어오십니다. 할머니는 연세가 여든 여섯입니다. 며칠 모아둔 폐지를 고물상에 팔고 오는 길입니다. 힘이 하나도 없으신 것 같습니다. 벌써 쌀이 떨어졌는지 여쭤보았습니다. 중학교 다니는 손녀가 와서 집에 남은 쌀을 가져가버려서 쌀이 없답니다. 하나 뿐인 아들은 망해서 빚이 많고, 며느리는 아파서 누워있다고 합니다. 중학교 다니는 손녀가 왔다가 할머니 집에 쌀이 많이 있는 것을 알고 는 양껏 밥을 많이 먹어버렸답니다. 또 아픈 엄마께 밥 해준다며 남은 쌀은 가져가 버렸답니다. 내가 굶더라도 손녀가 쌀을 가져가는 것을 말릴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먼저 식사부터 하시라고 했더니 쌀까지 얻어가면서 밥까지 먹으려니 미안하다면서 어쩔 줄 모릅니다.

마침 고등어조림이 있어서 다행입니다. 할머니가 드실 게 있어서 다행입니다. 할머니는 치아가 하나도 없습니다. 얼마 전에야 야매로 틀니를 해 넣으셨지만 맞지 않아서 그냥 잇몸으로만 식사를 하십니다.

접시에 밥 조금, 고등어 한 토막, 김치 몇 조각 담아 식사하시는 할머니께 오늘 얼마 버셨는지 물어보았습니다. 천원 벌었답니다. 며칠 모은 것인데 고물상에 가져갔는데 폐지 무게가 15킬로가 나왔답니다. 고물상 주인이 인심 후하게 무게를 쳐 줘서 천원을 받았다고 합니다.

용자 할머니께 오늘 버신 천 원은 저를 달라고 했습니다. 잠시 망설이시더니만 천원을 주십니다. 가진 것이 없으면서도 나누는 용기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힘겹게 번 천원도 내어놓습니다. 손녀가 쌀을 가져가면 당신이 드실 것도 없는데도 다 줘버립니다.

용자 할머니는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쉰일 때 본 아들이 하나 있습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작은 집 하나만큼은 절대 팔지 말라고 하셨답니다. 서울에서 사는 아들이 빚이 많으면서도 집 팔아달라고 하지 않는 것만도 고맙다고 할머니는 생각합니다. 할머니가 사는 집은 옛날에는 창고였습니다. 창고 같은 건물의 일부가 할머니 집입니다. 할아버지의 유언 때문에 할머니는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지도 못합니다. 할머니의 작은 집은 고물로 가득합니다. 온 종일 조그만 손수레를 끌고 폐지를 줍습니다. 국수집에 식사하러 오시곤 했습니다. 쌀이 있으면 밥 먹으러 다니지 않아도 되는데 하는 말을 듣고 매달 쌀을 나눠드리고 있습니다.

봉사자 형제님께서 할머니 댁에 쌀을 날라다 드리도록 부탁했습니다. 그런 다음에 할머니께 받은 천원을 가지고 정육점에 가서 달걀 두 판을 샀습니다. 쌀과 달걀 두 판을 할머니께 드렸습니다. 할머니는 밥은 좀 질게 하고 새우젓에 달걀찜을 해서 먹으면 제일 좋다합니다.  

서영남/ 인천에 있는 '민들레국수집'을 운영하면서 노숙자 등 가난한 이웃들과 더불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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