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과 교회] 3월 1일자 2637호 <가톨릭신문>과 1008호 <평화신문>

요란한 화장품 광고를 즐겨보는 사람들답게 그의 장례가 끝나기 무섭게 ‘성인’ 운운하는 말이 들렸다. 그런가하면 대리운전에 길들여져서인지 그의 장례를 전하는 소식에 천주교인임을 자랑스럽게 느낀다는 대리만족형 교인들도 나왔다. 그가 온 몸으로 버텨왔던 한 시대를, 마지막 순간에는 각막마저 내주었던 그의 마음을 사람들은 화장품 치장하듯이 눈물을 흘리면서도 엔조이하기에 급급했다. 큰 바람이 일 듯 김수환추기경의 장례는 그렇게 지나갔다.

교계신문들은 그의 장례미사 등 마저 다루지 못했던 내용을 포함하여 2주 연속으로 다양한 기사를 독자들에게 제공했다. <가톨릭신문>은 이번 주도 32면으로 증면하여 그 중 1~17면, 25, 29면을 할애했으며, <평화신문>은 36면으로 증면하여 1~25면을 할애했다. 앞으로도 선종한 김추기경에 관한 기사는 여러 번 등장하여 다양한 측면에서 천주교인들에게 선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특별히 <가톨릭신문>이 발 빠르게 기획한 ‘김수환추기경과 함께하는 사순시기 생활실천 달력’은 교계신문으로서의 특징을 적절히 들어냈다는 점에서 주목되었다.

김수환추기경에 관한 기사가 연속으로 다뤄지는 동안 또 한 명의 주교가 한국천주교회에 탄생했다. 교계신문이 장례 관련기사와 함께 주교 임명 기사를 배치하느라 진땀을 흘린 것이 지면을 통해서 여실히 드러났다. 대전교구 보좌주교로서 김종수신부가 교황에게 임명된 것은 김추기경의 선종 엿새전인 2월 10일이었다. 임명직후 발행된 2월 15일자에서 두 신문은 이 사실을 모두 1면 톱과 사설로 다루었으며, 이후 본격 보도시점이 2월 22일자였지만 김추기경의 선종(2월 16일)소식에 뒤로 밀릴 수밖에는 없었다. 결국 <가톨릭신문>은 2월 22일자에서 23~26면에 특집을 넣었고, <평화신문>은 아예 관련보도를 뺐다. 이어 3월 1일자에서 <가톨릭신문>은 20면 ‘김종수 주교 문장-서품일 확정’을, <평화신문>은 26~27면에 특집을 편성하고 30면에 김주교의 서품식 예정을 보도하였다.

새로 임명된 김주교에 대하여 <가톨릭신문>은 기사에서 “외유내강형 목자, 어린 시절 학업에 남다른 재능, 스스로는 엄격 남들에게는 온유, 후배신학생들에 손수 차 대접”(25면)이라고 그를 소개했으며, <평화신문>은 “전형적 학자주교, 사목 대부분 유학생과 교수로 살아, 만능 스포츠맨, 군 복무 중 성경공부하다 성소발견, 짧은 본당 사목 중 신자들 존경받아”(27면)라고 하였다. 김주교가 임명사실을 통보받고 말한 대로 “교구장을 도와 교구발전에 최선을 다할 것”임은 틀림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계신문이 의도한 바는 전혀 아니었지만 새로 등장하는 김주교에게 퇴장하는 김추기경이 던져주는 의미는 그렇게 예사로운 것은 아니다.

우리는 2주에 걸친 김추기경의 장례기사를 보면서 교인들을 비롯한 수많은 국민들이 어떤 종교지도자를 원하는지 여실히 보았다. 현대인은 과연 어떤 사목자를 원한다는 말인가? 세상 사람들은 그에게 직접적인 강론 한마디 들은 적도 없지만 그의 죽음을 슬퍼했고, 그를 직접 본 적 없지만 그의 삶에 열광했으며, 그에게 도움 받은 것이 없지만 그의 부재를 아쉬워했다.

김추기경의 장례미사가 있던 날 제대 아래 놓인 나무관을 바라보던 한국천주교회 20여명의 주교단과 제대 가장 가까이 자리 잡은 일군의 사회지도층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김추기경의 유리관과 나무관을 보지 못한 태반의 교인들과 괜스레 서러운 사람들이 소리 없이 눈물 흘린 이유를 그들은 아는가? 새로 주교단에 들어서는 김종수 주교와 한바탕 큰 뉴스를 쏟아낸 교계신문들이 이번 사순절에 생각할 일들이 무척이나 크고 깊다. 김추기경은 가고 김주교는 왔다.


 

김유철/경남민언련 이사, 경남도민일보 지면평가위원, 천주교 마산교구 민족화해위원회 운영위원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