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과 교회] 2월 22일자 1007호 <평화신문>과 2636호 <가톨릭신문>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이 영원한 안식에 들어갔다. 마지막 인생의 여정 길에 그는 참으로 많은 것을 사람들에게 남겨주고 떠났다. 그의 선종에서 비롯된 많은 일들을 교계신문 뿐만 아니라 시중의 모든 언론은 상당히 많은 부분을 할애하여 그의 삶과 영성을 기렸다. 나중에는 ‘추기경신드롬’이 생길 정도였다. <평화신문>은 28면 중 1면부터 18면에 이르기까지 그와 관련된 기사를 적었다. <가톨릭신문> 역시 36면 중 20면을 할애하였다. 두 신문 모두 평상시 24면 발행을 특집으로 인하여 증면하는 신속함을 보였고, 또한 월요일 마감 데드라인을 넘기면서까지 대단한 순발력을 발휘했다. 마치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김 스테파노 추기경의 선종은 천주교회가 놀라워 할 정도로 갑자기 다가온 일이 아니라 거의 1년 전부터 언젠가는 올 일로 많은 이가 준비를 했다. 그러기에 일반시민들은 낯설지만 교회로서는 슬픈 일임에도 당황하지 않고 준비매뉴얼에 의해 진행된 점이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교계신문들도 예외는 아니어서 월요일 오후 늦게 벌어진 상황에서도 <평화신문>은 선종을 전후한 스케치 기사 외에 ‘장익주교가 말하는 추기경 김수환’ ‘추모 시’ ‘인간 김수환’ ‘추기경은?’ ‘김수환 추기경 생애 화보’ ‘김수환 추기경 업적-교회부문/사회사목부문/ 민주화운동부문’ ‘김수환 추기경 영전에 바치다’등의 탄탄한 특집을 구성했다.

<가톨릭신문>은 선종 직후 명동성당 및 국내외, 교구별 추모 표정을 스케치하였고 각계의 추모 글과 ‘탄생에서 선종까지’ ‘순교자의 후손 김수환’ ‘시대의 예언자 김수환-사랑의 신학/인간애’ ‘저서/강론에 담긴 김수환 추기경의 신앙과 사상’ ‘추모 시’ ‘김수환 추기경이 남긴 말’ ‘김수환 추기경과 가톨릭신문’ ‘내가 기억하는 김수환추기경’ ‘사진으로 보는 김수환 추기경과 한국교회’ ‘사진으로 보는 인간 김수환’ 등으로 다양하게 특집기사를 제공했다.

아마도 다음 주 한 주 정도는 교계신문이 시간적으로 다룰 수 없었던 장례미사와 묘지 안장 등에 대한 추가기사가 나올 것이다. 장례기간동안 명동성당에 안치된 김 스테파노 추기경의 유리관 앞에 참으로 많은 사람이 다녀갔다. 전 현직대통령은 물론 이웃종교인들과 수많은 교우들이 다녀갔다. 모두가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그가 살아서 한 일들을 다양하게 회상했다. 만약 그 분이 좋은 일을 했다면 참배와 분향과 애도는 우리 자신도 그렇게 살겠다는 다짐이어야 하고, 선언이어야 한다. 그것이 지금여기 살아있는 자들의 몫이며, 세상의 등불인 언론이 제시하는 올바른 방향일 것이다. 단순히 “슬프다, 아깝다, 훌륭했었다”만 앵무새처럼 반복을 한다면 그것은 그 분의 영혼을 격하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뿐이다.

장례미사 때 국무총리가 대독한 대통령의 추도사는 이렇게 이어졌다. “추기경님께서는 … 항상 병든 자, 가난한 자, 약한 자와 함께 하셨습니다. … 소외된 노동자들 편에서, 때로는 불의와 부정에 맞서 정의를 말씀하시고, 행동하셨습니다. … 국민의 편에서 권위주의에 맞서 정권의 압박을 맨 앞에서 온 몸으로 막아내셨습니다. … 타인을 존중하고 마음을 열고 대화할 것을 가르치셨고, … 권력이 오만해지거나 부패할 때에는 준엄히 꾸짖으셨고, … 힘없는 자에게는 한없이 인자하셨고, 가진 자와 오만 앞에서는 추상과 같으셨습니다.”

이 대통령은 추도사에서 굳이 ‘산업화시대, 민주화시대, 요즘’등을 구분해서 말했지만 그가 되새긴 김 스테파노 추기경의 활동은 시대와 관계없이 언제 어디서나 행해져야 하며 특별히 정치-사회-종교지도자들에게 필요 충분한 덕목들이다. 바른 길과 바른 말 그리고 바른 행동에 시대가 따로 있을 까닭이 없다. 교계신문들은 ‘대통령의 추도사 의미를 헤아려’ 그렇게 하지 않는 자가 누구인지 기록하라. 언론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김유철/경남민언련 이사, 경남도민일보 지면평가위원, 천주교 마산교구 민족화해위원회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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