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 스며있는 하느님]

 

 

분당에서 저녁강의를 마치고 돌아오는 차 안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충청도가 고향인 이웃 동네 교우 아주머니의 들뜬 목소리다.
“로제리오~. 나 시방 평화방송 보고 있는디, 김수환 추기경님이 나오시네. 앗따. 로제리오 떴네, 떴어. 진행자가 좋아하는 노래를 묻는디, ‘김정식씨가 작곡한 「하느님. 난 당신을 사랑해요」’라고 따박따박 말씀허시네. 인자(이제) 로제리오가 더 유명해져서 만나기 힘들어지먼 어떡헌디야~. 나가 어저께 명동성당으로 추기경님 조문을 갔다 집에 옹께 새벽 2시여~. 인자하신 얼굴이 아직도 눈에 선허네.”

가끔씩 교회신문은 물론 일반신문에서도 그런 기사를 만났다. 김수환 추기경이 뉴욕이나 파리 혹은 암스테르담 등 해외초청행사에 가셨을 때나 국내초청행사에 가셨을 때, '참석하신 분들과 만남의 자리에서 부른 김정식의 「난 알아요」인데, 모두에게 감동을 주었기에 그 내용을 옮긴다’면서 긴 가사가 실려 있었다. 1984년에 만들어서 오랫동안 수없이 불러온 노래인데도, 그렇게 의외의 장소에서 만나면 생경한 느낌이어서 종종 스크랩을 해 두기도 했다. 그분의 삶과 어록을 담은 비디오가 시중에 나와 있는데 거기에 노래하시는 모습이 실려 있기도 하지만, 직접 현장에서 들은 것은 두 번이다.

첫 번째는  2,000년 9월 24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마인쯔 한인성당 30주년 기념행사 때였는데, 「김정식 로제리오 초청공연」에 이어 「김수환 추기경 초청강의」가 있었다. 프로그램에는 10곡을 부른다고 되어있었지만, 나는 그날 9곡만을 부르고 끝인사를 했다. 그러자 객석에서 대놓고 아우성이 터져 나왔다.
「난 알아요」는 왜 안 부르시는 거예요. 그 노래 꼭 듣고 싶었는데.”
“그 노래 듣고 싶어서 2시간을 달려왔는데, 안 들려주면 안돌아 갈 거예요.”
모두들 귀여운 척, 사랑스럽게 응석을 부리고 있었다.
“네. 잘 알겠습니다. 그 노래는 저도 참 좋아합니다. 반드시 들려드리겠습니다. 그러나 저보다 그 노래를 사랑하고, 그래서 저보다 훨씬 잘 부르는 가수가 한 분 계십니다. 그래서 그 노래는 제 뒤에 나오실 분께서 들려드리겠습니다.”
장내는 잠시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지만, 이윽고 추기경께서 나오시자 어리둥절해 하면서 다시 술렁댔다.
“그 노래는 제가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노래입니다. 그래서 강의가 끝난 다음에 불러드리고 싶었는데, 기왕 김정식 씨가 소개를 했으니 오늘은 노래를 먼저 부르고 강의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나는 그 노래가 만들어진 후 처음으로 내 목소리가 아닌 다른 이의 목소리로 그 노래를 듣게 되었다. 아니다. 돌이켜보니 1985년에 서울가톨릭대학 축제에서 그 노래로 대상을 받은 신학생들의 연주와 노래를 현장에서 들은 적이 있다. 그러나 지금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5분이나 되는 긴 노래를 반주도 없이 천천히, 그러나 당신의 삶 전체를 노래에 실어, 토씨 하나 빼지 않고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부르는 그분의 노래는 특별한 감동이었다.

하느님 난 당신을 알아요.
하느님 난 당신을 느껴요.
하느님 난 당신을 좋아해요.
오! 하느님 난 당신을 사랑해요.

하느님 내겐 당신이 필요해요.
하느님 내겐 당신이 소중해요.
하느님 나를 포근히 안아줘요.
오! 하느님 내 곁에 늘 있어줘요.

때때로 고난이 나를 찾을 때,
피하고 싶은 내 마음은
당신을 멀리 떠났다 느껴도,
어차피 그곳 또한 당신 품안인 것을
알아요. 난 알아요.
 

(김정식 사 / 김정식 곡「난 알아요」전문)

이렇게 긴 가사를 두 번 반복하고서야 노래는 끝이 났다. 한참 동안 박수가 없었다. 그 좋은 날에 대부분 울고 있었던 것이다. 나도 울었다. 왜냐구? 너무나 억울해서 눈물이 나왔다. 빼어난(?) 감성을 담아 독특한 미성으로 부르는 내 노래를 듣고 모두들 박수를 치며 감동을 표현했지만, 눈물까지 흘리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나 목소리가 평범한 할아버지 수준이어서 별다를 것이 없는데다 음정도 박자도 무시된 채 느릿느릿 부르는, 속된 말로 ‘되게 못 부르는 노래’를 듣고 감동으로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질투심(?)에 절로 눈물이 나왔다. 모차르트를 바라보는 살리에르의 심정이 이랬을까? 그 날 알게 되었다. 아니, 그 전부터 알아왔던 것을 다시 한 번 확실하게 확인하게 되었다. 목소리도 중요하고 노래를 잘 부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노래하는 사람 자신의 삶과 정신이 노래에 담겨 있을 때 가장 깊은 감동을 줄 수 있다고.  

 


김수환 추기경의 삶과 정신은 바로 이어지는 그의 강의에 고스란히 담겨있었는데, 50여분 동안의 강의 내용을 10여년이 지난 오늘까지 거의 그대로 기억하고 있다. 「인권존중과 공동선」으로 대표되는 그의 삶과 정신을 담은 이 강의는 아마도 가장 자주 하셨던 내용일 것이다. 지구촌의 대부분 국가에서 헌법으로 천명하고 있는 인권보장과 우리나라 헌정사에서의 우여곡절, 그리고 오늘날의 인권상황까지를, 당신 특유의 재치와 위트를 섞어 결코 딱딱하거나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게 잘 짚어주셨다.

 

인터넷에서 퍼옴

이어서 이탈리아의 거장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길(La Strada)이라는 영화에 담긴 인간의 존재론적 고독을 통해, 역설적으로 끌어내는 인간존엄성에 관한 내용도 참으로 신선했다. 강의의 절정은 버나드 쇼우에 관한 내용이다. 아일랜드의 더블린에서 태어난 그는 초등학교만 나와 사환으로 일하면서 음악과 그림을 배워 세계적인 극작가, 비평가 겸 소설가가 되었으며,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연극, 미술,  음악 등의 비평도 하고 스스로도 많은 극을 써서 연극계에 새바람을 불어 넣은 그는, 풍자와 기지로 가득 찬 신랄한 작품을 써서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그런 그가 여행 중에 풍랑을 만나 좌초된 배 안에 있다고 가정을 한다. 모두가 바닷물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어디선가 구명을 위한 장비가 제공되었다. 수영을 잘 못하는 버나드 쇼우와, 온 몸이 심하게 뒤틀어진 지체장애인 사이에 구명장비가 던져졌는데, 선택은 그에게 달려있었다. 살기위하여 장비를 움켜쥐는 것과 차지할 능력이 없기에 양보할 능력 또한 없는 장애인을 살리고 자신은 죽어 가는 것에 관한 선택이다. 현실적인 정황으로 보면, 여러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이루었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매우 많은 극작가와, 장애 때문에 사회활동은 물론 스스로를 감당할 능력조차 없는 보잘 것 없는 한 사람 사이의 선택이 될 수 있다. 이 선택에서 버나드 쇼우가 자신을 구하는 쪽이었다면 그의 모든 업적과 작품들은 물거품이 될 공산이 크다. 반면 상대를 구하고 자신이 죽어갔다면 그의 모든 삶의 유산들은 새로운 가치를 더하여 빛을 발할 수 있다는 얘기이다. 덧붙이자면 세계적인 극작가나 자신을 가눌 수조차 없는 지체장애인이나 인간의 존엄성에 있어서는 하등의 차이가 없는 것이며, 그렇다면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 우선적 선택의 기회가 주어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는 것이다.     

 

 

 

이런 삶의 정신은 그분의 일상에서 자주 만날 수 있었다. 정치와 사회 그리고 경제적인 모든 면에서 척박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는 우리 사회에서, 가톨릭교회가 말하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은 그림의 떡이었다. 그렇지만 김수환 추기경은 자신에게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복음적인 선택을 주저하지 않았고, 그런 그분의 삶에 관한 일화는 수없이 많다.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은 해방신학에서 강조하는 개념으로 남미 주교회의에서 공식적으로 도입된 표현이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도 1987년 12월 30일 발표한  사목교서 중 사회적 관심(Sollicitudo rei socialis)을 통해 천명하신 내용이다)

오래 전 상계동 철거민들과의 천막미사에서 만난 일이다.  철거 주민들과 미사에 참석한 많은 사람들이 단 몇 초만이라도 그분과 만나고 싶어 했지만, 공인의 일정상 그럴 수만은 없어서 늘 비서신부가 악역을 맡아 접근을 막아주었었다. 그날도 천막으로 가시는 도중에 그런 가슴 아픈 단절을 수없이 겪어낼 수밖에 없었다. 미사가 진행되고 영성체 시간이 되었는데, 남루한 할머니 한 분이 성체를 영해주려는 그분께 간절한 눈빛으로 말했다.

“추기경님. 잠깐 만이라도 좋으니 만나고 싶어요. 손이라도 잡아보고 싶어요.”

그러자 성체를 영해주시면서, 특유의 인자한 표정과  귓속말로 이렇게 말하셨다.

“미사 끝나고 천막 뒤로 와~.”  

 

내가 초청강의에서 이런 얘기를 나누고 난 후, 평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내게 다가와서 손을 한 번 잡아보고 싶다고 말했는데,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

“천막 뒤로 갈까요?”

“천막이 없으니 여기서라도 손 좀 만져볼래요.” 

꿩 대신 닭이라고 했던가. 이미 하늘나라의 별이 되신 추기경 대신, 그의 노래를 듣고 질투심에 울었다는 가수의 손이라도 잡아보고 싶은 심정이었을까?  (계속)

 

 

 

사진 고태환

김정식/가수 겸 작곡가로 생활성가의 개척자이며, 파리국립음악원에서 그레고리안과 지휘법을 공부하였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돕기 위한 자선음악회와 환경보전과 인권회복을 위한 사회활동을 꾸준히 하면서 어린이들을 위한 노래와 예술가요 그리고 연주곡 등 다양한 장르의 노래를 만들고 부른다. 

 

노래 - 김정식「난 알아요」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