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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섬과 다름을 받아드리는 신앙

 

며칠 전 1호선 전철을 타니 대여섯 명의 외국인과 지나치거나 마주보고 앉게 되었다. 국적도 인종도 동남아시아인, 중국인, 영어를 쓰는 백인과 흑인 등 다양했다. 그들은 같은 국적의 사람들끼리 모여 있기도 하고, 흑인여자 어린이를 백인남자 아저씨가 손을 꼭 잡고 지나가기도 하고, 연인인 듯한 서양남자와 한국여자가 서로를 지긋이 바라보기도 하였다.

이제 이런 모습은 전혀 새롭거나 낯선 모습이 아니다. 저녁 무렵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길거리에 있던 무가지를 보니 '리서치 다문화가정에 대해 알고 있나요?'라는 기사가 실려 있다. 이미 우리나라 전체 인구 중 외국인이 2%를 넘어섰고, 2020년에는 전체 가구의 20%가 다문화가정으로 구성될 것이란다. 그러니까 앞으로 10년 후에는 다섯 집 가운데 한 집이 국제결혼으로 가정을 이루게 된다는 말이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이런 다문화가정의 증가를 글로벌 시대의 당연한 현상으로 본다는 응답자가 92.3%에 이르고 있으니, 세계화와 국제화의 여파가 다양한 인종과 국적을 가진 가족구성원을 낳고 우리 삶에 속속들이 스며들고 있음을 생생하게 전해준다. 그런데 아직도 여전히 길에서 쉽게 마주치는 타국인들이 나와 깊이 이어져 있다고 느끼지 못하는 것도 솔직한 내 맘이다.

대학에서 종교학을 공부하며, 나는 여러 종교가 아주 익숙한 듯하면서도 낯설다는 인상, 서로가 비슷한 듯하면서도 전혀 다른 것을 지향한다는 느낌, 서로를 이해하고 포용하는 듯하면서도 각자 딴 세계에서 딴 소리로 꿈을 꾸고 있다는 지레짐작을 하곤 하였다. '가장 큰 가르침'을 뜻하는 '종교'라는 하나의 틀 안에서 설명하려 하지만, 각 종교와 그 종교를 믿는 이들은 역사적으로 독특한 정신세계와 행동을 표현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심오한 세계를 탐구하는 종교학은 정말 아주 매력 있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학문이다.

나는 이러한 내 흥미를 '종교신학'을 공부하는 것으로 옮겨놓았다. 종교신학은 다원화된 사회 속에서 그리스도교 신학과 그리스도인이 다른 종교들을 어떻게 만나고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하느님의 외아들이라고 고백하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이 세상 사람들을 구원할 수 있다"는 신학적 입장을 다원사회 속에서 어떻게 이해하고 새롭게 해석해야 하는가가 특히 쟁점이 된다.

나는 종교신학자 가운데 폴 니터(Paul K. Knitter)의 입장을 공부했다. 그는 '예수만이 인류의 구원자'라는 신앙고백을 사랑하는 연인끼리 속삭이는 '너만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고백과 같다고 보고, 타종교인들과 대화하려면 이 신앙고백을 잠시 미뤄두라고 권한다. 그러나 이것이 그리스도교의 정체성을 던져버리는 꼴이라는 비판을 받아들였는지, 폴 니터는 그 후 논문과 글들에서 예수를 해방신학 및 생태신학과 연관시켜 가난하고 억압받는 이들과 그들이 처한 열악한 환경을 해방시키러 온 분으로 바라본다.

성년이 되어 내가 배운 것을 보나 오늘날 한국의 다문화현상을 보나, 다양성을 수용하고 다른 것이 결코 잘못된 것도 틀린 것도 아니라는 것을 진심으로 인정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여전히 나는 우리말이 아닌 소리가 들리면 귀가 쫑긋 서고 무슨 뜻인지도 못 알아들으면서 유심히 듣게 되니, 이것을 인간적으로 당연하다 여겨야 할지 아니면 갈 길이 멀고멀다고 겸손해야 할지 아리송할 뿐이다.

유정원/ 가톨릭여성신학회 회원, 가톨릭대학교 성심교정 신학박사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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