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별 이야기]

 


근래에 새롭게 인연이 되어 우정을 나누는 친구와 영화를 봤다. 영화 <워낭소리>는 소방울 소리를 다르게 워낭소리라 부르고 있었다. 팔순 노인이 소와 마흔 해를 지나며 인연을 맺어 살아오다, 그 마지막에 이르러 소를 먼저 죽음으로 보내는 이야기였다. 전통사회의 농부들이 그러했듯 노인은 기르는 소를 그의 아내처럼 자식인양 오래된 친구로 여기며 삶을 같이 일궈나갔다. 소의 먹이를 위해 논밭에 농약을 사용하지 않았고 그에 대한 보답인양 소는 기계를 대신하여 주인의 논밭을 갈고 수레 위에서 술에 취해 잠이 든 주인을 실고 혼자서도 집으로 돌아온다.

영화 보는 도중에 많은 이들이 울먹였다. 농부와 그의 아내 그리고 그들의 소가 이루어내는 삶이 진솔하고 흙처럼 자연스러웠으며 거짓이 없었기에 도시생활의 하루 속에 스민 거짓의 양과 부자연스러움, 게다가 언제나 그 자리에서 주인을 기다리는 들판과는 다르게 불안정속에서 시달리는 도시의 직장생활이 눈물샘을 자극하는 데 한 몫했을 것이다.

소의 눈물을 보았다.

나이든 소라서 일을 못하는 데다 팔순 농부로서 소 먹일 꼴을 베어들이기가 벅차 우시장에 소를 내놓고 흥정을 하는 중에, 늙은 소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말 못하는 짐승은 사십 살이 넘어 근력을 잃어버리자, 팔기 위해 장터에 매어지고 오가는 흥정꾼들은 고기가 60만원어치나 나올런지 어쩔런지 하며 값을 매겼다. 60만원에서 210만원까지 값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중에 소는 울고 있었다.

목욕탕에서 만나는 노인들의 엉덩이 부분이 움푹움푹 패이듯 야위어 있음에 충격을 받았는데, 마흔 살 소의 엉덩이도 그러했다. 소똥으로 덕지덕지한 엉덩이에 지방분이 모두 빠져나간 듯 메말라 갈라진 다리와 발굽으로 느릿느릿 주인을 태운 수레를 끌고 가다 힘에 겨운 듯 소는 노인들처럼 멈춰 서서 한참 숨고르기를 하고는 다시 수레를 끌곤하였다.

그럼에도 소의 눈은 사슴보다 더 선량하고, 어느 여배우보다 아름다웠다. 다만 그 고운 눈을 뜨고 감기조차 어려워하는 게 영 안쓰러웠다. 우시장에서 흥정꾼들이 부르는 값이 적다는 이유로 소를 팔지 않고 집으로 데려오지만 농부의 속마음은 분신과도 같은 늙은 소의 여생을 남의 손에 맡길 수 없었는지 모른다.

<워낭소리> 속의 농부는 사료를 사서 먹이자는 아내의 말에 힘들다고 일을 안하면 되냐며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논밭 언덕빼기를 기다시피 움직이며 풀을 베어들여 소를 먹였다. 싱그러운 풀을 먹는 소의 모습은 광우병과 대비되며 우리들이 잃어버린 게 무엇인지를 전해주었다.

절룩이는 다리에다 발가락 뼈가 탈골되어 염증을 일으키는 중에도 들판으로 나가 풀을 베고 산허리를 뒹굴어가며 나무를 해다 겨울을 준비하는 농부는 온몸을 던져 삶을 일구는 자의 전형이었다. 농부의 억척스런 기질은 늘 그의 옆에서 소보다 못한 대접을 한다며 투덜대는 아내의 순박한 미소 속에 행복이 감돌게 하였으며, 추석을 맞아 찾아온 자식들이 건강하게 웃으며 부모의 삶을 책임질테니 소를 팔고 편히 지내시라는 말을 하게 했을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풍경

제 논에 물 들어가는 것과 자식 입에 밥 먹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풍경을 농부는 만끽하며 살아왔다. 어쩌면 농부는 본능적으로 제 논과 제 자식들을 위해 한 생을 살아온 것이지 달리 뭐라 말할 건 없다. 그럼에도 영화를 보며 눈물이 솟는 건 충실한 삶이 주는 거룩함 때문일 것이다. 어디서 연계된 것인지도 모르는 부가가치에 혼을 빼앗겨 부동산과 주식을 쫓던 마음에 이 영화는 촉촉이 내리는 봄비처럼 새로운 기운을 부어주고 있었다.

8년 동안 어느 집의 머슴살이를 하느라 날만 새면 들판으로 나가 일을 하는 게 몸에 배였다는 농부는 어려서 침을 잘못 맞아 힘줄이 오그라들어 한 쪽 다리를 절었다. 이런 농부에게 소는 그의 삶을 보완해주고 수호하는 천사였다. 하늘은 농부의 부실한 몸과 허약한 삶의 조건을 염려하여 충직한 소를 그의 집에 보내 사십 년간 머슴살이로 그를 돕게 한 건지 모르겠다. 이 정도면 농부의 호적에 소를 동거인으로라도 올려야 하지 않을까 싶다.

깨달은 소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법명이 성우(惺牛)-'깨달은 소'라 불리웠던 경허스님( 鏡虛, 1849년~1912년 한국 근현대 불교를 개창했다는 대선사)이 생각나며 스님의 일화가 염주알처럼 떠올랐다.

쌀쌀한 밤바람을 맞으며 집으로 돌아와, 배달되어온 잡지들을 읽었다. 저명한 작가인 C선생님이 암수술을 받고서 평소 불교에도 관심을 기울여 많은 글을 써온 터라 스님들의 도움을 받아 어느 산사에서 요양을 하고 계시다는 글이 있었다. 이 분은 가톨릭 신자로서 모 수도원에서 수사님들과 생활한 경험을 글로 쓰기도 하셨다. B선생님도 큰고통을 겪는 중에 어느 수녀원의 배려로 수녀원에 머물며 마음조리를 하며 글을 써서 발표하셨다.

모 전직 장관은 동료와 지나던 길에 어느 수도원에 들어가 수도원장을 만나 담소하다, 미해결인 문제에 창의적인 힌트를 얻었다는 말을 했다. 이런 이야기들을 들으며 나는 경허스님과 문둥이 여인과의 일화를 생각하며 우리는, 우리 교회는 지상의 명성에 취해 영원의 가치를 상실하는 것만 같아 슬퍼진다.

어느 겨울 해인사에 머물던 스님은 큰 눈이 내린 하루, 한 여자를 업고 절에 들어왔다고 한다. 큰스님으로 대접받는 위치에 있던 경허스님이 여자를 스님의 방에 두고 품에 안으며 보름여 동안 바깥출입도 없이 지내자, 이 맹랑한 사태를 해결하고자 해인사가 발칵 뒤집혔다고 한다.

그럭저럭 보름이 지나자 여자가 빠꼼히 밖으로 얼굴을 내밀었는데, 여자의 얼굴과 손가락은 문둥이의 상흔을 지닌 채였다고 한다. 한 겨울 큰눈을 맞으며 해인사 입구에서 죽어가고 있는 문둥이 여자를 업고 들어온 스님이 당시의 처방대로 냉기는 몸의 체온으로 녹여야 뒤탈이 없다는 민가의 처방대로 여자의 몸을 녹여주고 병들은 마음을 함께 한 것이었으리라. 이 후, 스님은 일생 피부병으로 고생하셨다고 한다.

늙은 소와 늙은 농부의 인연은 한 생을 나누며 서로의 운명을 완성해 가는 성사(聖事)처럼 다가온다. <워낭소리>의 늙은 소는 혹시 경허스님이 스님의 이름의 인연을 따라 영화 속 늙은 소의 몸을 빌어 2009년 우리 곁으로 오신 게 아닐까 싶었다.

사회적 저명인사들과 교회가 쌓아가는 돈독한 인연을 굳이 뭐라 하는 것도 좋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워낭소리>의 늙은 농부와 늙은 소, 경허스님 과 병든 여인과의 인연을 떠올리면, 교회가 사회 저명인사들과 맺는 인연이 자못 참된 인연의 깊고 그윽한 향기를 잃어버린 게 아닌 게 생각해본다.

워낭소리-소방울 소리를 따라 맺어진 농부와 늙은 소의 사십 여 년 인연은 아름다웠다. 그리고 '깨달은 소'로 불리며 문둥이 여인과 인연을 맺어 스스로는 물론 당시 해인사에 머물던 수도승들을 '깨달은 소'로 이끌어 주었던 경허스님을 돌아보면, 인연은 거친 노동과 병든 마음을 함께 하는 순간들이 모여진 총합이었다.


이규원/ 드라마와 소설 작가, 어린이 책읽기 교실 <글방집>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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