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민사목위원회 중재로 농성자들 천막 치고 밥 제공받아

 

오후 들어서 비는 그쳤지만 여전히 흐린 하늘이다. 천막 너머로 명동성당 첨탑이 보인다.

지난 12일 명동성당에 용산참사를 애도하고 문제를 제기하던 범국민대책위원회의 농성천막이 들어섰다. 

바로 전날인 2월 11일 '이명박정권 용산철거민 살인진압 범국민대책위원회'가 오전 11시에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농성에 들어간다는 소식을 경찰로부터 전해들은 명동성당측은 경찰측의 일방적인 이야기만 듣고 장기간 농성이 이어질까 염려하는 마음에 경찰에 시설보호요청을 하게 되었고, 경찰측은 아침부터 경찰력을 동원하여 명동성당 들머리 앞의 진입로를 원천봉쇄하였다.

결국 범국민대책위측은 성당 안팎에 서서 기자회견을 하고 이미 성당 안에 들어가 있던 관계자들을 중심으로 노상에서 침낭에 의지하여 철야농성에 들어갔다. 그나마 이번 용산참사에 대하여 우호적이며 정황을 잘 알고 있던 서울대교구 사회사목국과 빈민사목위원회 관계자들은 때마침 연수교육을 들어간 상태여서 성당측과 범국민대책위측에선 서로 소통할 수 있는 통로가 없었다.

13일 추모문화제에 참석한 한 유족이 영정을 품에 안고 있다.
그러나 이튿날 연수를 마치고 돌아온 빈민사목위원회의 이강서 신부가 교구 사무처장인 안병철 신부를 만나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양측에 중재안을 내놓았다. 이번 농성은 제4차 범국민추모대회가 열리는 2월 14일 토요일까지 진행될 것이며, 성당에 피해가 없도록 주의하겠다는 다짐을 받아놓은 것이다. 결국 농성자들을 막기 위해 경찰력까지 동원하는 처사에 대하여 여론이 악화된 상황에서 사무처장 신부와 명동성당 주임인 박신언 몬시뇰은 경찰력을 철수시키기로 합의하였다. 

성당측 입장에서는 명동성당을 수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에서 성당 훼손에 대한 우려감이 증폭된 가운데, 사전통보와 양해를 구하지 않은 농성에 대한 당혹감이 작용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경찰병력 철수와 함께, 때마침 내리는 비를 피할 수 있도록 명동성당측에서는 천막 설치를 임시로 허락해 주었다.  범국민대책위원회에서는 이 천막을 늦어도 토요일 정오까지는 철수하기로 약속했다. 

이강서 신부는 <지금여기>에 "만약 농성자들의 뜻이 미리 성당측과 공유되었다면, 성당측에서 무리하게 방어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사전에 교감할 수 있다면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 일으키지 않아도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교회는 가난한 이들을 도와야 한다는 기본입장에는 변화가 없으며, 다만 이런 문제가 생겼을 때 협의할 수 있는 통로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하여 변연식 위원장(천주교인권위원회)은 <지금여기>에 "불특정 다수가 모이다 보면 서로 오해가 있을 수도 있고 실수도 있는 법이다. 그래서 적절한 중재가 필요하다"면서 "비도 내리는데 농성자뿐 아니라 경찰들도 비를 맞고 서 있지 않아서 좋았다"고 말했다.

지난 12일 오후 5시쯤 경찰이 철수한 뒤에, 범국민대책위원회는 오후 7시에 예정되어 있던 추모집회를 명동성당 저녁미사가 끝나는 시간까지 기다렸다가 행사를 시작하는 태도를 보여주었다. 이날은 <상계동 올림픽>이라는 상계동 철거민에 관한 20여 년전 영상물을 다시 보며 "지금과 상황이 하나도 다를 게 없다"고 입을 모았다.

한편 12일에는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에서 농성자들과 촛불집회 참가자들에게 식사를 제공했으며, 13일에는 서울대교구 사회사목부에서 100인분의 저녁식사를 제공하여, 참가자들은 가톨릭회관 지하식당에서 밥을 먹을 수 있었다. 이날도 저녁미사가 끝난 오후 7시 40분이 되어서 범국민대책위원회가 주최한 추모문화제가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유가족이 참석한 가운데 무리없이 진행되었다. 

범국민대책위원회는 14일 토요일 오후 4시에 용산역 앞에서 범국민적인 제4차 추모대회를 열 예정이며, 제33차 촛불평화미사는  프란치스코회 정의, 평화, 창조 질서 보전 위원회와 시국회의가 공동주최하여 프란치스코회관 4층 강당에서 열릴 예정이다. 

[지금여기 취재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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