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3일 (연중 제15주일) 마태 13,1-23

ⓒ박홍기
성당 성모동산 한 쪽에 닭을 키웁니다. 달걀을 얻을 목적으로 청계 3마리를 키웠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녀석들의 숫자가 열세 마리로 늘어났습니다. 부화하기도 하고 청계를 키우는 신자분께서 닭을 넣어 주기도 하면서 숫자가 늘어났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일이 났습니다. 아침에 닭장에 가보니 처음 보는 병아리가 있는 것입니다. 아주 어린 병아리가 보살핌을 받지도 못한 채 울고 있었습니다. 고민이 되었습니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청계들은 야생성이 강한 녀석들인지라 자신들이 품어서 낳은 새끼가 아니면 잘 돌보지 않습니다. 심지어 공격도 합니다. 그래서 도서관 입구의 조그만 공간에 집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보이는 생명을 버릴 수 없어서 스스로 먹이를 구할 수 있는 힘이 생길 때까지 보살펴 주기로 했습니다.

하루에 한 번, 녀석에게 땅 냄새를 맡게 합니다. 도서관 옆 조그만 텃밭으로 데리고 가서 놓아 주면 이리 저리 걷습니다. 풀을 뜯어 먹기도 하고 땅을 헤집기도 합니다. 그리고 잠시 뒤면 녀석이 졸고 있습니다. 그 모습이 참 귀엽습니다.

시멘트 위에서는 하루 종일 울어대더니 땅에서는 편안한가 봅니다. 그러고 보면 ‘땅은 어머니’라는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살아 있는 모든 생명의 뿌리인 땅, 그래서 땅이 죽으면 모든 생명이 죽습니다.

저는 16년 동안 사제로 살고 있습니다. 저의 신분인 사제는 ‘동사’입니다. 여기에는 가능성과 현실이 공존합니다. 16년이라는 시간을 살아가면서 제가 주로 체험하는 것은 성취가 선취(先取)라는 것입니다. 무엇인가를 희망하면서 살아갈 때 그 희망은 성취되지 않고 삶에서 선취됩니다. 선취된 이후 성취의 기쁨을 체험하는 과정을 반복해서 경험합니다. 그래서 저는 무엇인가를 성취하기 위해 오늘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지금 여기에서 완성되는 선취의 작은 부분을 살려고 노력합니다. 땅에 뿌린 씨가 죽어서 자라면 씨가 품고 있던 잠재력은 열매로 드러날 것입니다. 열매를 수확하는 것이 제 몫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여기에서 누리는 선취의 기쁨은 내일의 성취를 넘어섭니다.

저는 예수라는 땅에 씨앗을 뿌립니다. 땅은 예수입니다. 신앙인들은 예수께서 걸었던 길을 걷습니다. 그분의 발자국 위에 자신의 발자국을 포갭니다. 신앙인들에게 예수는 땅입니다. 하늘과 결합한 땅, 그 땅 안에 교회가 서 있습니다.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싶어 하는 자들은 땅을 경멸합니다. 땅 위에 존재하면서도 땅에 속하지 않는 것처럼 스스로를 속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땅 위에 존재하는 사람들과 자신을 분리하고 바벨탑 꼭대기에 오르려고 합니다.

예수 시대의 수많은 지도자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 시대에 지도자들은 많았습니다. 율법학자, 바리사이, 사두가이…. 그런데 그들이 서 있는 자리는 땅 위가 아니라 탑 꼭대기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왕처럼 높은 곳에서 백성들을 내려다보았고, 사랑과 일치가 아니라 분리와 심판의 눈으로 백성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의인이라고 했지만 의인이 되기 위해서 죄인을 만들어 내야 하는 분열을 선택했습니다. 스스로 빛이라고 하였지만 어둠이 된 사람들, 그들은 땅을 경멸합니다. 결국 그들은 하늘로 오르려고 하지만 땅으로 떨어져 달걀처럼 깨져 버립니다.

주님은 땅이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이 되셨다는 역설은, 하느님의 나라가 땅 위에서 완성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려 줍니다. 하늘에 이르는 탑은 없습니다. 복음의 씨앗이 뿌려지는 바탕은 땅입니다. 주님이 걸으셨던 이 땅 위에 복음의 씨앗이 뿌려집니다. 그래서 씨 뿌리는 사람은 땅 위에 발을 굳게 디디고 서게 되고, 뿌린 씨는 예수라는 땅 위에서 열매를 맺으며 퍼져 나갑니다.

씨 뿌리는 사람은 땅 위의 사람입니다. 높은 자리에 앉아서 판단하고 심판하는 사람이 아니라 땅 위에서 백성들과 함께 어깨를 맞대고 지내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씨 뿌리는 사람은 행동하는 사람이고, 자신의 행동으로 하느님의 자비를 드러내는 사람입니다. 씨 뿌리는 사람은 현재를 살아가는 예언자입니다. 화려한 제의와 검정 수단으로 위장된 바리사이의 위선을 발견할 때마다 느끼는 안타까움은 너무 큽니다.

단원고 희생자 가족이 십자가를 메고 800킬로의 여정을 시작했다는 소식을 듣고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8월 15일 대전의 성모승천대축일 교황님 미사 참례까지의 40여 일의 긴 시간을 걸으면서 실종자들이 가족 품으로 돌아오기를 기도하는, 세월호의 아픔이 잊히지 않기를 희망하는 가족들의 마음이 제게 고통으로 새겨집니다.

땅이 곧 하늘입니다. 땅을 사랑하지 않으면 하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땅이 어떤지 관심이 없으면서 전하는 선포는 위선입니다. 땅을 사랑하는 것은 땅으로 오신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땅 위에서 살아가는 자신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씨앗을 땅에 뿌리면 좋겠습니다. 허공으로 흩어버리지 말고 땅에 뿌리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바벨탑의 높은 곳에 있지 말고, 땅으로 내려와야 합니다. 땅보다 높은 곳에 있어야 하는 이유는 한 가지 밖에 없습니다. 파수꾼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파수꾼은 땅에 발을 디디고 사는 사람이지 결코 땅과 무관한 사람이 아닙니다.

이제는 석면 광산에 들어서는 ‘일반폐기물 적치장 반대’ 일인 시위를 하는 청양군 강정리 주민들과 본격적으로 연대하려고 합니다. 제가 살고 있는 이 땅은 예수께서 머무셨던 그리고 지금도 머무시는 땅이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땅이십니다.
 

임상교 신부 (대건 안드레아)
대전교구 청양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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