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 수녀의 이콘응시]

 

En Cristo
멕시코는 하수도 시설이 좋지 않다. 소나기가 내리는 날이면 삽시간에 물이 범람해 무릎까지 닿기 일쑤다. 산골일수록 더욱 심각하다. 학교가 없는 가난한 산마을 청소년을 위해 만든 익스딸떼뻭(Ixtaltepec)에 소재한 마리스타 수도회 소속 고등학교 기숙사에 있을 때의 일이다.

몇시간 소나기가 내리자 기숙사의 마당이 서서히 물이 불어나기 시작하였다. 문턱이 높은 주방에까지 물이 들어오더니만 금방 학생들의 침실까지 물이 차기 시작하였다.

마당에 서니 작은 내 키로 거의 가슴까지 물이 불어났다. 일단 물건들을 높은 곳으로 올린 후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하나를 고민하고 있는데, 건너편에서 아이들은 나를 부르며 한 여학생이 아프다는 것이다.(애들은 내가 못하는 것이 없는 슈퍼우먼인줄 안다.)

물이 허리까지 닿을 때까지는 몰랐는데 가슴까지 찰랑이며 닿는 순간 무서웠다. 진흙 바닥이 미끄러워 발을 옮기기도 어려웠다. 안절부절하고 있으니 남학생 한 명이 건너 와서는 자기에게 업히라는 것이다. 일단 그의 등에 업혀 아픈 아이에게로 가서 치료를 하고(참고로 나의 만병통치약은 멘소래담이다!!) 난 다음에 다시 다른 건물로 가야 하는데 그녀석이 와서는 또 나를 업고 나르는 일을 하였다. 그래서 그 아이는 물이 빠지는 동안 나의 전용 택시가 되어 ‘택시!’를 외치면 어디에 있든 즉시 달려와 나를 찾는 아이들에게로 데려다 주었다.

식사 때가 되자 서서히 물이 빠지기 시작하였고 모두가 식탁에 둘러서서 어떻게 먹었는지 모르지만 참으로 우울한 끼니를 때웠다. 다 젖은 물건들을 걸쳐 놓고는 둘러보니 앉아 있는 아이들의 모습에 춥고 떨리는 불쌍함 보다는 두려움과 외로움이 가득하였다. 순간 나의 눈길이 1년간 봉사활동으로 와 있던 로베르또와 로드리고(둘이는 기타를 상당히 잘 친다)를 동시에 바라보면서 미소를 지으며 턱을 내밀자 그들은 즉시 기타를 가져 와 연주를 하고 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다.

구석 구석에서 무서워 웅크리고 있던 아이들이 하나씩 나오더니 노래소리와 손뼉소리가 커지면서 분위기가 고조되고 끼리끼리 춤을 추더니만 어느새 모두가 다 일어나 준비 되어 있지 않았던 파티가 시작 되었다. 축제였다!!!!

모두의 얼굴엔 웃음과 함께 가족이라는 한마음이 느껴지면서 각자가 가지고 있던 두려움도 무서움도 모두 밀어 내었다. 그날은 우리 모두의 기억 속에서 잊혀지지 않는 추억의 축제일이 되었다. 어디에서 들어 왔는지 거북이 한 마리가 돌아가지 못한 채 우리의 축제를 지켜보며 그날로 식구가 되었다.

이렇게 선교사는 거대한 무엇을 해서가 아니라 하느님을 입에 달지 않아도 그들과 함께 있음으로써 하느님의 존재와 그들을 가까이에서 서로 만나게 해 주는 것 같다.

만딜리온, 노브고로드 학파 12세기 트레차코프 박물관

자! 이콘을 바라보자.
인간의 손으로 그리지 않은 그리스도의 얼굴!!!!!!
만딜리온(Mandylion)이다.
여러 형태의 만딜리온이 있지만 이 이콘은 생동감이 있다.
직시하는 듯 강렬한 시선은 심판자의 모습처럼 보이나 입은 과묵함이 느껴진다.

만딜리온의 전승은 이러하다. 어떤 군주가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어 자신의 병을 치유해 줄 것을 청하는 글을 보내자 예수님께서 조만간 제자를 보내어 치유와 구원을 약속한다는 답신과 함께 아마포에 자신의 얼굴을 찍어 보냄으로서 볼 수 없었던 하느님을 육화하신 자비로움의 그리스도로, 그가 임마누엘이심을 이 만딜리온 이콘에서 알 수 있다.

지상을 상징하는 정사각형의 틀 안에 둥근 원이 있는데 그것은 하늘나라를 상징한다. 그 원 안에 그리스도의 얼굴이 있다.

정교회의 건축물을 살펴보면 사각 형태의 기본 건물 위에 돔을 올려 마치 지상 위의 것들을 천국의 돔으로 덮고 있는 듯한 형상과 흡사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머리는 가지런히 빗질을 한 것처럼 단정하며 금선(金線)으로 그어져 빛이 나는 모습이다. 머리와 수염이 두 갈래로 나뉘어 땋아져 있는 모습이 정갈하다.

이 이콘에서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에게 더욱 가까이 계시는 그분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요즘의 세태 때문이다. 어디를 가든 선교사의 발걸음은 가볍다. 메이지 않은 마음 때문일 것이다. 정치를 하든 교육을 하든 적어도 선교사의 마음만 같았으면 좋겠다. 물대포나 화염병과 강압으로 하나 되는 국민이 아니라 겸손의 품으로 감싸 안아주는 부드러움만이 진정한 영성이고 정치고 교육이며 치유자가 아닐까.

인간은 자신의 마음이 굳어 온 땅으로 퍼져나가는 기쁜 소식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오늘 그리스도는 이러한 자들도 바라보신다.

사람들은 불합리하고 비논리적이고 자기 중심적이다.
그래도 사랑하라.
당신이 선한 일을 하면 이기적인 동기에서 하는 것이라고 비난 받을 것이다.
그래도 좋은 일을 하라.
당신이 성실하면 거짓된 친구들과 참된 적을 만날 것이다.
그래도 사랑하라.
당신이 선한 일을 하면 내 일은 잊혀질 것이다.
그래도 선을 행하라.
당신이 정직하고 솔직하면 상처를 받을 것이다.
그래도 정직하고 솔직하라.
당신이 여러 해 동안 만든 것이 하룻 밤만에 무너질지 모른다.
그래도 만들어라.
사람들은 도움이 필요하면서도 도와주면 공격할지 모른다.
그래도 도와 줘라.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을 주면 당신은 발로 차일 것이다.
그래도 가진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주라.

(마더 데레사의 글 중에서)

임종숙/ 루시아 수녀, 한국순교복자수녀회 수원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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