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수첩과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시국미사를 지켜보며
이명박 정부가 방송장악을 위하여 지난해 8월 KBS 정연주 사장을 강압적으로 교체시킨 이후로, 공영방송이 관영방송으로 변질되는 것을 지켜보는 가운데, 오늘 2월 3일 밤 10시부터 MBC방송에서는 <PD수첩>을 통하여 용산참사에 대한 밀도있는 내용이 방영되었다.
<PD수첩>에서는 비인가된 용업경비업체 직원들이 철거지역 세입자들에게 그동안 폭력적인 협박을 일삼아 왔으며, 용산구청에서도 나 몰라라 하고, 경찰이 이들의 폭력행위를 방조하는 가운데, 하소연할 데 없는 세입자들이 결국 망루로 올라갈 수밖에 없었던 현실을 전해 주었다. 결국 이들의 참사를 불러 일으킨 망루농성은 힘없는 약자들을 백안시하는 정부가 빚은 결과라는 것이다.
내 사랑 받아야 할 아버지요 남편, 그리고 국민
궁지에 몰린 농성자들이 화염병과 골프공을 투척한 것은 용역업체 직원들을 향한 자위적인 행위였으며, 그들이 건물 옥상에서 아래에 있는 가족들에게 손을 둥그렇게 말아올리며 연거푸 '사랑해'라고 표시하는 장면은 그들 역시 우리 국민의 한 사람이며 사랑받아야 할 어버이요 남편임을 충분히 알려주었다. 그러나 정부와 공권력은 그들에게 특공대를 투입해서 진압작전을 전개한 것이다. 그들은 돌연 우리 사회의 공동선을 위해 타도해야할 적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공권력은 국민 모두의 안전과 공익을 위해 봉사해야 할 의무를 그렇게 저버린 것이다. 국민을 적으로 삼아 작전을 수행하는 가운데 죽은 경찰은 공적으로 애도를 받았지만, 그 작전의 과정에서 희생된 철거민들은 '폭력집단' '테러리스트'로 불리며 지금 구속되어 있다. 여기서 죽은 철거민들은 죽어서도 시신조차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그들을 죽인 더러운 손에 의해, 가족들의 동의도 없이 해체 부검됐다.
유가족들은 말한다. "우리는 결과를 보아야 하고, 그 결과를 가지고 끝까지 투쟁하겠다"고. "손주들에게 할 말이 있어야 한다. 손주들에게 네 할아버지는 불지르다 죽었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 그들의 이름(명예)이 회복될 때까지 싸우겠다"고.
한줌의 불꽃이 온 들판을 불태우리라
어제 2월 2일. 저녁 7시. 청와대가 그리 멀지 않고 조선일보사와 동아일보가 거대한 몸집을 자랑하듯이 내려다 보고 있는 청계광장에서 조촐한 시국미사가 열렸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이름으로 '용산참극과 희생자들을 기억하는 미사'가 500여명의 천주교 신자들과 시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봉헌된 것이다. 사제들만 정확히 93명, 70여명의 수도자들과 수백 명의 천주교 신자들이 광장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촛불을 밝혔다.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참여하는 이들이 늘어났지만, 지난 해에 타올랐던 촛불집회에 비하면 여전히 보잘 것 없었다.
그러나 실망할 필요는 없다. 성경에서 야훼 하느님께서도 말씀하시지 않던가. 이 도시에 의인이 백이면, 열이면, 하나라도 있으면, 너희를 망하게 하지 않겠노라고. 그 한 명의 사람으로 이들이 그 자리에 모여 이미 어두운 하늘에 대고 간청하고 있었던 것이다. 유족들의 슬픔을 달래고, 그들 곁을 떠나지 않겠노라고 다짐하는 자리였다. 희생자들은 망루에 올라가기까지 이렇게 말했다. "누구 한 사람, 저희 말을 들어주지 않았어요. 저희들 곁에 있어주었던 사람만이 저희에게 뭐라고 말할 자격이 있습니다."
바로 그 한 사람이 절박하게 필요한 시간에, 함께 어둠을 맞이하고 더불어 불을 밝히는 자들로 남아있겠노라고 93명의 사제들은 말하고 있다. 그들은 맘몬(재물신)을 섬기는 바알신의 사제들이 아니라, 엘리야 예언자의 제자들이 되어 "세상엔 돈보다 더 귀한 게 있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이 힘 없고 가련한 백성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기에 '거룩한 분노'이며 '하느님 자비의 성사'가 된다.
"슬프고 무서운 일들이 많았는데 여러분은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사제들은 이날, 용산 참극의 본질을 물었다. “네가 어찌 이런 일을 저질렀느냐? 네 아우의 피가 땅에서 나에게 울부짖고 있다.”(창세4,10)고 악행을 저지른 자들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 그리고 유가족들의 손을 부드럽게 잡아 주었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총무를 맡고 있는 김인국 신부(청주교구)는 미사에 앞서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힘들고 고달픈 일이 많으셨을 텐데 추운 겨울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슬프고 무서운 일들이 많았는데 여러분은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가련한 인생의 마음을 헤아려 주는 한 사제의 입술이다.
용산참사의 본질은 김 신부의 말마따나 "사람들이 죽었다"는 것이다. 어느 누구의 목숨인들 귀하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이명박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 문제로 국민의 건강권을 위협하고, 방송법 개악으로 '정론직필'하려는 언론의 입을 막으려고 하고, 온갖 규제를 풀어 가진 자들의 배를 불리려고 하더니, 급기야 "이번엔 사람을 죽게 했다"는 것이다. 김 신부는 "죽인 일도 무섭지만 죽여 놓고 하는 소리는 더 무섭다"고 말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설거지 하다가 접시 좀 깬 것 가지고 뭘 그리 난리냐고 합니다. 그 흔한 문책이나 책임도 단호하게 거부합니다. '일 안하는 사람을 나무라야지, 일하다가 실수한 걸 가지고 문제 삼으면 어떻게 하나? 그러면 어떤 공직자라도 일하려 들지 않는다. 잘못하다가 우리만 당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무도 일하지 않는다'고 했답니다. 시정잡배가 술에 취해서 떠드는 막말이 아닙니다. 대통령의 말입니다. 그것도 방송에 나와서 정색으로 한 말입니다. 대통령이 국민을 국민으로 보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대통령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라고 자기 자신에게, 우리 모두에게 묻는다.
"한나라당 대표가 질풍노도처럼 치고 들어가 전광석화처럼 해치워야 한다고 떠들더니, 1월 20일 새벽 정말 경찰특공대가 달려들어 적군도 아닌 철거민들을 그렇게 해치웠습니다.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해야 할 경찰이 양민을 죽인 것입니다. 공권력이 국민을 적으로 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맡겼던 권력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고 묻고 있다.
김인국 신부는 이날, "이런 중대한 질문에 답을 내리기 위하여" 사제들과 시민들이 여기 한 자리에 모였다고 말했다. "불의한 권력의 교만과 어리석음을 꾸짖어 달라고 하느님께 부르짖고, 먼저 가신 여섯 분의 영혼의 상처를 하느님께서 어루만져주시고 안식을 누리게 해주시라고" 모였다는 것이다.
수녀들의 머릿수건은 곡(哭)을 하는 여인들처럼
2월 2일 이날은 '주님봉헌축일'로서 가톨릭교회에서는 전통적으로 일 년 간 미사 때 쓸 초를 축성하는 날이다. "초는 안으로는 내면의 욕심을 불태우고, 밖으로는 어둠을 밝히는 평화의 수단"이라고 김 신부는 덧붙였다. 그러니, 촛불을 밝혀 "모든 사람의 내면을 정화하고 세상의 어둠을 환하게 비추자"고 하는 것이다. 아직, 밤은 길고 어둠은 깊다. 이날 시국미사는 그래서, '불의가 세상을 덮쳐도'로 시작되는 성가를 부르며 사제들을 광장 한복판으로 이끌어 내었다.
이들 사제들이 한데 모여 시국미사를 봉헌하였지만 아직 독선적인 청와대도 건재하고, '용산참사'를 왜곡시키고 '저항하는 시민들의 촛불행렬'을 일체 보도하지 않는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사제들도 고개를 땅에 처박고 슬퍼하지 않았다. 경찰은 여전히 철옹성 터널처럼 차벽을 세워놓고 십자가 행렬이 지나는 길을 가로 막았다. 그러나 사제들과 수행하는 자들과 시민들은 명동성당 들머리에 닿았다. 수녀들의 머릿수건은 곡(哭)을 하는 여인들처럼 보였다.
명동성당 역시 깊은 어둠에 잠겨서 문을 닫아 건 채 첨탑의 시계만이 희미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 성당 들머리에서 미사와 행진을 마무리 하면서 김인국 신부는 말한다. "이제 곧 들녘에선 봄농사가 시작될 것이다. 우리는 이 자리에서 민주주의를 파종하고 4월과 5월과 6월에는 그 열매를 맺을 것이다."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자에게 복이 있을 것이다. 마지막에 추수하며 곡식단을 들고 춤추는 자가 되기 위하여 시민들과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앞으로 다가올 사순절에 이미 죽어간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지낼 것이다. 그들이 우리 가슴 속에서 부활하여 기뻐하며 춤출 때까지. 그렇게 역사는 한 고개를 의로운 자들과 더불어 넘어 갈 것이다.
한상봉/ 지금여기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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