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인권활동가들 “활동보조인 지원했다면 이렇게 죽지 않았다” 분노

▲ 고(故) 송국현 씨의 장례식장에서 송 씨의 지인이 영정사진을 카메라에 담고 있다. ⓒ문양효숙 기자

여객선 세월호의 침몰로 온 땅이 슬픔에 젖어있던 17일 저녁, 혜화동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은 친구를 떠나보내는 중증장애인들의 흐느낌으로 가득 찼다. 지난 13일 활동보조인 없이 홀로 있다가 화재로 전신 화상을 입은 송국현 씨가 닷새만인 17일 새벽 결국 숨을 거뒀기 때문이다. 전동휠체어를 타고 장례식장을 찾은 고(故) 송국현 씨의 친구들은 “활동보조인을 지원해달라고 장애심사센터, 구청 등 여러 기관의 문을 두드렸지만 모두 외면했다”며 오열했다.

올해 53살인 송국현 씨는 24살에 넘어지면서 뇌출혈이 생겨 오른쪽 편마비와 언어장애를 얻었다. 언어장애는 최고등급인 3급, 뇌병변장애는 5급이었다. 높은 등급을 따라가는 장애등급제 원칙에 따라 종합 3급의 장애판정을 받았다. 송 씨는 27년간 장애인생활시설에서 살았다. 3년 전, 도망치듯 시설을 나왔지만 홀로 살아갈 방법을 알지 못했다. 노숙생활을 하다 지쳐 같은 시설에 노숙자 신분으로 재입소했다. 하지만 국현 씨는 바깥에서의 삶에 대한 의지가 강했다. 시설에서 자립선언을 한 주변인들을 보며 고민하던 끝에 작년 10월, 장애인인권단체의 도움을 받아 다시 시설 밖으로 나왔다.

송 씨는 혼자 일상생활을 하기가 어려웠다. 활동지원서비스가 꼭 필요했지만, 장애인 활동지원서비스는 1 · 2급 장애인만 신청할 수 있었다. 3급이었던 송 씨는 장애심사센터에 재심사를 신청했다. 재심사를 받는 동안 성동장애인자립생활센터의 활동가들이 송 씨를 도왔다. 자체 예산과 후원금을 모아 3개월간 하루 20시간 활동보조를 했다. 하지만 센터의 지원은 한계가 있었다.

결국 지자체와 정부기관의 문을 두드리는 수밖에 없었다. 이러던 중 지난 2월에 나온 장애등급재심사 결과는 절망적이었다. 통지서에는 송 씨의 장애 정도가 “보행과 대부분의 일상생활동작을 타인의 도움 없이 자신이 수행하나, 완벽하지 못하는 상태”라고 적혀 있었다. 하지만 송 씨를 지켜봐온 성동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들은 송 씨가 “쌀 씻은 냄비를 들 수가 없어서 밥하는 걸 포기해야 했고, 힘이 없어 목욕도 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사고 당일, 송 씨는 성동장애인자립생활센터가 운영하는 체험홈에 홀로 있었다. 함께 살던 뇌병변장애 1급 서 모 씨는 오전 10시경 활동보조인과 외출한 상태였다. 불길을 발견한 사람은 2층에 살던 집주인이었다. 연기를 보고 뛰어 내려간 집주인은 “사람 있냐”고 외쳤지만 언어장애가 있던 송 씨는 제대로 대답하기가 어려웠다. 10시 50분 구급차가 와서 송 씨를 발견했을 때, 송 씨는 침대에 엎드려 있었다.

함께 살던 서 모 씨는 외출할 당시 송 씨가 엎드려 자고 있었다고 말했다. 장애심사센터의 판정에 따르면, 송 씨는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어야 한다. 하지만 송 씨는 자신의 몸이 불에 타는 순간에도 침대에서 한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었다.

▲ 화재로 타버린 고(故) 송국현 씨의 반지하 연립주택 (사진 제공 / 비마이너)

송 씨는 얼굴, 어깨, 팔, 다리 등 전신의 32%에 3도 화상을 입었다. 119가 처음 간 한양대병원에서는 화상이 너무 심하다며 응급처치 후 화상전문병원으로 이송했다. 뒤늦게 연락을 받고 달려간 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들은 “미라처럼 온 몸을 감싼 사람이 침대 위에서 고통스러운 숨소리를 내고 있었다. 의사가 온몸이 빨갛게 탄 그가 국현 형이라고 했을 때 믿을 수가 없었다”며 흐느꼈다.

화재가 발생하기 3일 전인 4월 10일, 송국현 씨는 재심사 결과에 이의 신청을 하기 위해 국민연금공단 장애심사센터를 찾았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기자회견을 열어 장애등급재심사를 받고 등급이 하락한 장애인에 대한 긴급지원대책을 요구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송 씨는 자신의 몸을 보이고 자신에게 얼마나 활동보조인이 필요한지 알리려 했다.

하지만 장애지원센터는 6층에 있는 상담센터를 놔두고 훤히 트인 1층 로비에서 상담을 받겠다 했다. 개인적인 일이기에 공개적인 자리에서 할 수 없다며 어렵사리 상담실로 옮겼지만, 장애심사센터 담당자는 “공간이 비좁으니 당사자만 들어와 이의 신청을 하라”고 했다. 동행했던 활동가는 “송 씨는 언어장애가 있고 보조인이 필요하니 6명의 대표단이 함께 들어가겠다고 실랑이를 벌였지만 결국 문전박대 당했다”며 분노를 드러냈다.

영정사진 속의 송 씨는 세상에서 겪은 고통을 잊은 듯 환하게 웃고 있었다. 광화문에서 장애등급제 폐지를 위한 행진을 하면서 찍은 사진이라 했다. 결혼을 하고 싶어 했고, 노들야학의 친구들을 좋아했으며 벚꽃과 영화를 보면 행복하다 했던 국현 씨는 채 펼쳐보지 못한 자립생활의 꿈을 남겨두고 17일 새벽 5시 40분,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났다.

장애인자립생활센터의 한 활동가는 “구청에서도, 보건복지부에서도 장례식에 왔지만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렇게 수없이 문을 두드릴 때엔 원칙과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았으면서, 국현이 형이 생을 마친 뒤에야 와서 위로하고 손을 내미는가. 그들의 조문이 원망스럽기만 하다. 활동보조인만 지원해줬어도 형은 그렇게 가지 않았다. 그렇게 좋아하는 봄을 두고 떠나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은 후보 시절 장애인등급제 폐지와 부양의무제 단계적 폐지를 약속했지만, 공약이행은 여전히 깜깜무소식이다. 장애인인권운동계는 장애등급제가 생활이 아닌 의료를 기준으로 한 제도이며, 1 · 2급이 아니면 복지 접근을 할 수 없도록 ‘복지 장벽’을 만든다고 비판하며 장애등급제 철폐를 주장해왔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18일 오후 2시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보건복지부 장관의 공식적 사죄와 재발방지 대책이 있을 때까지 장례식을 무기한 연기하고, 1인 시위, 촛불추모제, 추도식 등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18일 오후 8시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촛불추모제를, 19일 오후 2시 광화문 광장에서 추도식을, 20일 오전 10시 서울고속버스터미널 광장에서 ‘희망고속버스 타기’ 행사를 열 계획이다.

▲ 17일 서울 혜화동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 앞에서 고(故) 송국현 씨를 추모하는 촛불문화제가 열렸다. ⓒ문양효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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