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형제가 어디 있느냐?>, 프란치스코 교황 강론선집, 빛두레, 2014

 
기쁨과희망사목연구원(원장 함세웅 신부)이 프란치스코 교황 즉위 1주년을 기념하여 강론선집 <네 형제가 어디 있느냐?>을 발행했다. 교황의 말은 늘 화제의 중심에 있다. 그의 말에 사람들은 환호하지만, 환호하는 것에서 그치지는 않았는가? 강론집을 통해 교황의 말을 삶 안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점검해볼 기회가 되겠다.

제목처럼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동안 ‘형제애’를 강조해 왔다. 정말, 내 형제는 누구이며 어디에 있을까? 교황 프란치스코는 성경을 통해 답한다.

“너희의 아버지는 한 분, 하느님이시다. 너희는 모두 형제다.” (마태 23,8-9)

하지만 교황은 우리가 “형제적 책임의 의미를 상실”했다고 말했다. “우리가 살아가고 보호해야 할 세상에 대해 더 이상 관심을 두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무관심으로 수많은 폭력과 비극적인 경험이 계속되고 있다.

“우리는 해변에서 반쯤 죽어있는 형제들을 봅니다. 우리는 ‘아, 불쌍한 사람’ 이렇게 생각하고, 그것은 우리 일이 아니라면서 우리의 길을 계속 갑니다. 그렇게 우리 자신을 스스로 안심시키고 평온을 느낍니다. 오직 우리 자신만을 생각하게 만드는 안락함의 문화는 타자의 외침을 느끼지 못하게 만듭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스스로도 돌보지 못하는 현실이 너무 당연해져서, “모든 사람이 서로 하나가 되어 살아가면서 서로를 돌보도록 부름을 받았다”는 말이 비현실적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고통에 대한 무관심 속에서 살아가면서, 빼앗긴 “우는 능력”을 되찾는 것은 자신과 나아가 모두를 위한 것임을 교황 프란치스코의 말을 기회로 마음속에 새겨볼 수 있다.

“평화가 모두의 선이 아니면 그 누구에게도 선이 될 수 없다.”

교황은 ‘제47차 평화의 날 메시지’에서 세계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가난, 전쟁, 부패, 범죄, 생태문제들의 심각성을 하나하나 짚으면서, 이 문제들에서 벗어나 평화의 길로 갈 수 있는 바탕이 되는 것이 형제애라고 답한다. “형제애가 자유과 평화 사이에, 개인적 책임과 연대 사이에, 개인의 행복과 공동선 사이의 균형을 잡아” 주기 때문이다.

박동호 신부(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은 책 서문에서 교황이 <복음의 기쁨>이라는 ‘권고’를 통해 교회 쇄신을 명시하고 있다고 전한다. 그동안 교회가 교회답지 못했다는 자기반성과 교회 스스로 변화해야한다는 교황의 권고가 한국 천주교회에 큰 ‘충격’으로 다가오리라고 보고 있다.

박 신부는 한국 천주교회가 그동안 ‘교황청’의 뜻을 여과 없이 무비판적으로 따랐다고 말한다. 그러나 교황은 이를 “지나친 중앙집권”이라고 규정했다. 한편 박동호 신부는 교황이 교회가 관료화되는 것도 비판했다고 전한다.

“여러분의 직업은 사제, 수도자입니까? 아닙니다. 그것은 직업이 아닙니다. 직업 이상의 그 어떤 것입니다. 활동중심의 위험, 조직에 대한 지나친 신뢰의 위험은 항상 우리에게 잠재하고 있습니다”라는 교황의 말을 흘려들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박동호 신부는 신자수를 늘리는 것에 열정을 바쳤던 교회가 하느님 나라를 이 땅에 실현하기 위해 애쓰는 교회로 변화하기는 쉽지 않을 거라고 예측한다. 왜냐하면 교회가 자기부정의 불편함과 고통을 딛고 이전과 전혀 다른 ‘그리스도의 길’로 뛰어들어야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는 교회가 사람들 안에서 어떻게 자리 잡아야 하는지 교황은 예수님을 통해 알려주고 있다.

“그분께서는 지혜의 교사가 아닙니다. 그분께서는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어떤 이상형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삶과는 아무런 연고 없이 멀리 떨어져 존재하는 이상적 인물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들 가운데에 당신의 천막을 치셨던 삶과 역사의 의미가 되셨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이 새롭지는 않지만 큰 충격으로 다가오는 것은 교회도, 사회도 현실의 문제를 외면해온 탓이다. 평신도뿐만 아니라 수도자, 성직자 모두에게 형제애를 회복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 스스로가 먼저 하느님의 위로와 사랑을 받은 체험이 있어야”하는 것처럼 교회 안에서부터 다른 사람의 “고통에 함께 슬퍼하는 울음과 연민의 경험”을 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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