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콘 응시]

 

데에시스-성모(부분)

En Cristo
"뒤로 뛰냐?"는 놀림을 늘 듣던 어릴 적엔 달리기 1등을 해 보는 것이 공부보다 중요한 적이 있었다. 달리기를 무지 못하는 나에게 비법(?)이라고 가르쳐준 것이 “하늘을 보고 뛰면 돼”였다. ‘땅~~!’과 동시에 하늘을 보며 달린 나는 정말 잘 달리는 것 같았다. 그런데 골인 지점과 상관없이 그대로 화단으로 들어갔다 나왔다는 증거가 아직도 이마에 남아 있다.

개구쟁이도 아니였는데 정작 본인인 나는 기억이 없는 것을 가족들은 모이면 늘 지난 일들을 나누며 기억을 만들어 주는 것 같다. 매일 소꿉놀이를 하며 벽돌을 갈아 밥을 짓고 잡초를 뽑아 정성껏 음식을 만들어 퇴근한 남편에게 주고, 선생님이 되어 야무지게 학생들을 나무라기도 하면서 동네 꼬마들을 가르치는 재미도 있었고, 공주놀이며 살구받기(공기놀이)를 하여도 지겹지 않게 놀고, 잠도 잘 잔 것 같다.

요즘은 장난감을 원(願)없이 가져도 금방 싫증내고 손가락 2개만 움직이는 게임에 빠져 밤을 새는 아이들에게 '중독'이라는 단어까지 사용하는 형편이다. 갇혀 있는 아이들 같다,

우리 성당에서 매일 와서 사는 아이들이 몇 명 있다. 미사 몇 시간 전부터 와서는 이 추운 날에도 이마에 땀이 흐를 정도로 신나게 논다. 별 놀이도 아닌데 웃음소리가 담을 넘는다. 짹짹거리다 여기 저기 나뭇가지를 옮겨 다니는 참새들처럼 생기있는 참(眞) 아이들 같아 은근히 나도 한몫 끼어 놀기도 한다.

이콘은 유리로 가리지 않는다.
보편적으로 액자도 하지 않는다.
상황에 따라 액자는 할 수 있지만 유리를 제외한 상태로 분위기에 맞는 것을 선택한다.

옛날 동방 교회에서는 어려움이 있다든지 도움이 필요할 때는 집안에서 공경하는 이콘이나 기적이 많이 일어나는 이콘을 놓고 기도한다. 특별히 간구한 것이 이루어졌다면 감사의 의미로 보석으로 장식한 액자를 봉헌하거나 이콘에 보석을 박기도 하지만 유리막으로 가리지는 않는다. 정교회의 성당 내부가 수많은 이콘으로 장식되어 있지만 어디에도 유리가 있는 액자에 넣어 둔 곳은 없었다.

바로 그 성인들의 은총이 이콘을 통해서 흘러 나온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이콘 앞에 아무리 투명한 것이라도 무엇으로 가린다는 것은 은총을 막는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이콘이 유리 액자 속에 있으면 답답하고 수많은 은총의 통로를 막은 듯 하여 안타깝기도 하였다.

데에시스-성모(전체)

이 이콘은 데에시스 중의 하나인 성모님이다.
우리가 보아서 그리스도의 바로 왼쪽에 위치한다.
성모님의 손은 당연히 그리스도께로 향해 있다. 역시 연약한 우리의 모든 간구를 담아서....

이 이콘을 바라보다 갑자기 뛰어가 안기는 자신을 보았다. 수많은 기도가 담긴 그분의 손이 나를 보듬어 주시는 것이다. 그분의 눈빛을 바라보면서 자기 축일이였던 지난 토요일에 불의의 사고로 죽은 중 3이였던 안또니오를 생각하였다.

삼우미사를 하는 날이 생일이였던 녀석!
그날이 성녀 아네스 축일이였는데 하느님의 어린양처럼 받쳐진 것 같다.

주일 동안 이 녀석이 눈에 밟혀 참 힘들었다. 걱정할까봐 녀석은 웃는 얼굴과 노래 부르는 모습, 기도하는 모습만 남겨 놓고 갔다. 매순간 마다의 지향을 두고 기도하는 것이 해 줄 수 있는 전부였다. 성모님께 이 녀석을 맡겼다. 그 품에 안겨 드렸다.

마음껏 뛰어 놀아라. 너가 좋아했던 기도, 성가 목청껏 부르며 천국 마당을 마음껏 뛰어 놀아라. 피곤하고 지치면 나처럼 성모님께 덥석 안겨 응석도 부리고....


임종숙/ 루시아 수녀, 한국순교복자수녀회 수원관구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