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과 신학]

 

어제는 중풍을 앓으시는 친정어머니를 뵈었습니다. 어머니 곁을 지키는 아버지께 하루 휴식을 드릴 겸 목요일마다 찾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제는 아버지가 집에 계셔서 이상하다 했더니, 어머니와 전날부터 대판하셨던 모양입니다. 평소 말이 없으신 아버지는 별일 없었다는 듯 텔레비전의 바둑 프로그램에서 눈을 떼지 않으시고, 어머니는 아버지가 얼마나 환자에 대한 배려가 없는지 하소연하십니다. 재작년 7월 말에 발병한 이후로 1년 2개월을 병원 생활하다가 퇴원한 어머니와 아버지는, 40년 넘은 부부로 살아오신 세월이 무색할 정도로 서로를 견뎌내지 못하시곤 합니다.

무거운 맘으로 저녁에 집에 돌아온 어제는, 너무 춥다는 핑계로 간만에 온 가족이 안방에서 나란히 잠을 청했습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둘째 녀석이 밤새 헉헉대며 고열에 헛소리를 하고 두 번이나 방바닥에 먹은 걸 토하는 통에 잠을 설치고 말았습니다. 낮에 친구랑 잘 놀고 저녁밥도 잘 먹고 잠자리에 들 때만 해도 멀쩡했는데, 정말이지 밤새 안녕입니다. 오늘 하루 종일 먹은 거라곤 과일 조금과 군고구마 몇 입뿐인데, 그것도 모두 왈칵 쏟아놓고 빈속에 눈만 때끈해졌습니다.

지난 화요일에는 오후에 갑자기 직장 다니는 큰 올케가 저에게 자기 집에 가서 큰 조카를 좀 봐줄 수 없느냐고 전화를 하여 부랴부랴 나서야 했습니다. 지난 가을 첫돌 맞은 둘째조카 녀석이 장이 꼬여 응급실에 찾아가 엑스레이와 초음파 찍고 결국 이틀간 입원을 해야 했지요.

지난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갑자기 아픈 가족들이 저를 포위해버렸습니다. 몸이 아프고 그래서 마음도 예전 같지 않아 조금만 잘못 건드리면 봇물 터지듯 하니, 제발 자주 찾아오고 이야기 들어주고, 내 일일랑 조금 미뤄두라고 브레이크를 겁니다. 전 세계가 전쟁과 고통에 몸부림치는 여파가 고스란히 우리 가족에게도 덮친 것만 같습니다. 정신없이 저는 가족 곁에서 가족들이 제게 나누어주는 아픔의 몸짓을 꿀꺽꿀꺽 삼키고 있는 중입니다. 이 어려움과 고통을 그래도 저처럼 지금 건강하고 젊은 엄마들과 아빠들이 받아내야겠지요.

15년 가까이 멕시코에서 길거리 사람들과 이웃되어 수도생활을 하는 제 큰 시누이가 며칠 전 저에게 안부 메일을 보내어, 같은 수도회 자매들이 파견된 곳에서 어떤 어려움에 동참하고 있는지 생생하게 전해줍니다.

"가자 지구에 있는 자매들은 먹을 것이 없다고... 이라크에 있는 자매들은 쫓겨 다닌다고... 콩고에 있는 자매들은 이웃 젊은이들이 무시무시한 폭력배로 변하고 있다고... 브라질 자매들은 새해미사 갔다 오니 강이 넘쳐 이웃들과 함께 가진 것을 모두 잃었다고... 나와 함께 사는 우리자매 가족에겐 매일 안부전화를 해야 안심이 되며 이민 계획 중, 인도와 파키스탄 전쟁으로..."

요즘 뉴스나 신문에는 한국과 미국과 중국과 일본 같은 제법 잘사는 나라들의 비교적 배부른 투정 일색입니다. 사실 이런 검열된 소식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요. 정말 가난했고 여전히 가난한 이들의 소식은 들리지 않는 신기루입니다. 늙거나 너무 어린 환자들을 길거리에서 찾아볼 수 없는 것처럼 말이지요. 이들은 어둔 방구석 아니면 초라한 침상에서 보이지 않는 침묵으로나 존재하니까요.

유정원/ 가톨릭여성신학회 회원, 가톨릭대학교 성심교정 신학박사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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