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인생사]


이거 어째 옛날 옛적, 웬 미친 놈이 세상을 다스리던 바로 그 시절, 박종철이라는 선량한 청년이 이근안이라는 잡스런 조폭 쉐이한테 맞아서 그 가녀리고도 청순한 생명의 끈을 놓쳐버리던 바로 그때, 갑자기 이북에서 김만철이라는 사람이 가족을 이끌고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고 뜻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가 있는’ 대한민국의 품 안에 안착했다는 기사가 신문을 장식하던 어처구니없던 일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김만철 자신이, 박종철의 죽음으로 궁지에 몰린 전두환을 도우려는 충심으로(?) 목숨 걸고 남하한 것인지, 아니면 한참 전에 망명한 사람을, 박종철 죽음을 덮으려는 의도로 때맞추어 발표한 건지, 그도 저도 아니면 김만철이라는 사람이 북에서 넘어온 일이 아예 없는지는 지금도 오리무중이지만 아무튼 결과적으로 볼 때 전혀 효과 없는 매스컴 플레이였음이 드러났고 박종철은 결국 1987년 6월 항쟁의 기폭제가 되었다. 눈에 최루탄이 박혀, 마산 앞바다에서 떠올라 그 거룩한 사일구를 이끌어 낸, 처절한 고등학생처럼 말이다.
그러니 이 정권이 지금 뭘 하고 있는지... 참으로 모골이 송연하고 아찔할 따름이다.

물론 나는 경제, 특히 증권이니 펀드니 하는 얘기에 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고 아는 바도 없다. 주변에 그 짓을 하고 있는 친구들을 보면 조금은 부럽고 조금은 불쌍한 느낌을 드는, 뭐 그런 입장이다. 따라서 '미네르바'라는 필명을 쓰는 젊은이가 아고라에 뭘 썼는지 전혀 아는 바가 없다. (더구나 나는 로그인 해야 읽을 수 있는 카페나 사이트에는 절대 가입하지 않는다. 왜? 뭔가를 일일이 한참 동안 기입하는 거, 그거 무지하게 귀찮다)

허나 분명한 것은 이것이다. 그 젊은이의 글이 옳든 그르든, 그들은 그 젊은이를 잡지 말았어야 했다. 그건 전적으로 그들 자신을 위해서 그렇다. 그리고 나는 설마, 이렇게까지 이 정권이 무지몽매할 줄은 진정 몰랐다. 이렇게까지는 아닐 줄 알았다. 제발 착각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이명박의 5년이 끝나도, 이 정권에 빌붙는 사람들은 여전히 살아 있을 가능성이 크고, 그때 그들은 아마 후회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짙게 든다. 예컨대 운하를 파면 그 썩어문드러질 강산에서 살 사람들이, 자기 자식들도 아니고 바로 당사자라는 사실을 제발 알았으면 좋겠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미네르바라는 필명의 젊은이는 꽤 정확한 경제 예측을 바탕으로 강부자라는 예명으로 불리는 이 정권의 경제 화류계를 엄청 날카롭게 비판했다고 한다. 뭐 그것까지는 이 정권도 그러려니 했겠지만 요는 그 글을 읽는 사람들의 숫자였던 듯하다. (게다가 경제 대통령이라니. 이명박씨의 두 눈이 한껏 부풀어 오르는 모습이 떠오른다. 그는 아마 이랬을지도 모르겠다. ‘어떤 놈이 감히 나를 사칭해...’)

천문학적인 조회 수를 보고 그들은 갑자기 불안해졌을 것이고 부랴부랴 ‘허위사실 유포’니 뭐니 하는 죄명을 갖다 붙여 미네르바라는 사람을 체포하기에 이르렀을 텐데 참으로 불쌍한 건, 그 ‘체포’는 촛불집회의 고등학생들을 때려잡던 구상유취의 작태와는 엄연히 다르다는 사실 때문에 그렇다. 고등학생들은 ‘촛불집회 참가자’였고 미네르바는 ‘네티즌’이라는 것이 바로 그 차이점이다. 법을 내세워 때려잡는다는데 누군들 앞장서서 뭔가를 외치겠는가. 그러므로 몇 명 때려잡으니 촛불은 작아졌다. 허나 네티즌은 아니다. 그들은 작아져서는 안 되고, 사실상 작아질 방법도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국민이기 때문이다.

네티즌의 함구가 국민의 길들여짐을 뜻한다는 망상을 버렸으면 좋겠다. 인터넷도 없고 신문 방송도 온전히 독재자의 편이었던 시절, 말하자면 국민의 입과 귀가 완전히 막혀버렸던 바로 그 5공 시절 우리 국민은 결국 목숨까지 걸면서 무섭게 싸웠다.

혹자는 그 싸움의 이유를 군부 독재니, 정경 유착이니, 반통일과 친미니 하는 곳에서 찾을지 모르겠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그렇게까지 무시무시하게 터진 이유는 바로 ‘듣고 말할 권리’를 완전히 빼앗긴 국민들의 답답함이 한꺼번에 터졌기 때문이었다고 나는 믿는다.

이른바 보수논객이라고 불리는 일단의 정신병자들이 자주 하는 말 중에 ‘애들이 철이 없다’라든가 ‘요즘 군인들은 참을성이 없다’라든가, 특히 촛불집회를 보면서는 ‘당돌하고 좌경화되어 있다’든가 하는 말들을 쏟아내는 것을 나는 분명히 들었다.

예전에 박정희는 바로 자신이 기획한 18년 동안의 독재를 통해 훈육된, 그래서 고등학교 시절까지 북한의 김일성이 사실은 우리가 아는 김일성 장군이 아니고 김성주라는 놈인데 그놈은 제 누이를 겁간하고 부모를 구타한 나쁜 놈이라는 믿음과, 이른바 교련이라는 과목을 하면서 북괴 놈들을 때려잡아야 한다고 악써대는 맹목성과, 교복을 입고는 반드시 거수경례를 하며 ‘멸공’을 외치는 친일적 군사주의의 망령에 완전히 사로잡혔던, 우리 선배들의 데모 때문에 치를 떨다가 불귀의 객이 되었고, 전두환과 노태우 역시 박정희 시절의 바로 그 교육을 받아 멍청해져야 마땅했던 우리와 우리 후배들에게 완전히 새 되어 놀림감으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왜 지금의 정권은 요즈음의 세련된, 말하자면 ‘참을성도 없고’ ‘철이 없는데다가’ ‘당돌하고 이미 좌경화되어 있는’ 이 젊은이들의 입을 막으려 하는가? 겁도 없나? 멍청한 우리들도 참지 못하고 거리로 나섰는데 똑똑한 지금 젊은이들을 어찌 하려고...

이거 그나저나 우리 인터넷 신문에 글 쓰는 형님 누님, 그리고 약간의 후배님들도 조심해야 되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야들 하는 짓이 워낙 포스트 80년대니... 이 정권과 개구리의 뛰는 방향은 정말이지 모를 일이다.

 변영국/ 토마스 아퀴나스, 서울 수송국민학교를 졸업했으며 희곡 쓰고 연출하는 연극인인 동시에 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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