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4일자 2630호 <가톨릭신문>과 1001호 <평화신문>

주차 봉사자를 찾습니다.

사적(史蹟)이란 무엇인가? 브리태니커 사전에 의하면 ‘문화재 가운데 역사상· 학술상 가치가 큰 유적지로 국가가 법적으로 특별히 지정한 것’이라고 한다. 덧붙이면 문화재는 크게 유형문화재· 무형문화재· 기념물· 민속자료 등 4가지로 나뉘는데, 사적은 기념물에 들어가며 기념물에는 사적· 명승· 천연기념물 등이 있다. 쉽게 예를 들면 경주 포석정지, 황룡사지, 수원 화성, 서울 풍납리토성 등이 사적에 들어간다. 왜 갑자기 문화재 타령일까?

대한민국 정부가 1977년 11월 22일 인정한 사적 258호, 현재 나이 111살, 주소지는 서울 중구 명동2가 1-8. 바로 명동성당이다. 누가 설명하지 않아도 한국천주교회의 얼굴이자 천주교인들의 심장 같은 곳이다. 그곳이 지루한 6년의 공사를 마무리하고 사뭇 산뜻한 얼굴을 공개했다. 다시 100년의 세월동안 명동성당은 또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할 것이다. 그런 명동성당이 지난 성탄을 전후하여 장막을 걷고 사람들 앞에 다시 나타났다. 교계신문은 사진과 함께 이를 보도 하였다. <가톨릭신문>은 1면 사진기사를 통하여 ‘6년 만에 장막 걷은 명동성당’과 함께 23면 사설 ‘장막 걷은 명동성당’을 실었고, <평화신문>은 1면 사진기사 ‘새 얼굴 명동성당 보러 오세요’를 실었다.

도시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 고민 중의 하나는 차량의 주차문제다. 성당도 예외는 아니다. 미사를 전후로 좁은 성당마당을 밀고 들어오는 차량들로 인해 표정관리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다보니 주차봉사자가 있는 곳도 있고, 아예 차량을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성당도 있다. 그거야 개별 본당의 실정에 맞추어 하면 될 것이고... 그러나 <평화신문> 1면에 실린 명동성당의 모습은 참으로 가관이었다. 성탄 대축일 미사에 참례하기 위해 구불구불 줄을 서서 입장을 기다리는 교우들 사이로 주인인 냥 주차한 차량은 한마디로 ‘꼴불견’이자 ‘안하무인’이다. 더욱이 우스운 것은 후면 주차 차량들이다. 아파트 단지에서도 엉덩이를 집 쪽으로 들이미는 후면 주차를 못하는 마당에 성당을 향해 엉덩이를 들이민 차는 “개념 없는 차”고, “개념 없는 차량주인”이며, “개념 없는 성당구성원”들이자, “개념 없는 천주교인”들이다.

명동성당은 예배를 드리는 성스러운 장소이자, 국가지정 문화재다. 성당마당에 주차장이 없으면 차량 출입을 못하게 함이 상식일 것이다. 혹시나 명동성당 측이 들머리 언덕위에 주차를 허용했다면 허용한 책임자는 문화재 공부와 함께 교회성물관리 교육을 제대로 시켜야 할 것이다. 불국사 다보탑 옆에 주차한 차량을 상상해 보라. 그것도 엉덩이를 들이댄 채로 말이다. 외부벽돌과 스테인드글라스 유리조각을 바꾸었다고 명동성당이 새 얼굴 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바꾸고 생각을 바꾸어야 성당이 새 얼굴이 되는 것이다. 개신교 큰 교회에서는 얼굴을 알리기 위해 주차봉사 한다고 하며, 실제로 대통령까지 된 사람도 있다. 천주교회에서 한 자리 하려고 하는 사람들 불러 모아 명동성당에서 주차 관리시키는 캠페인은 어떨지 모르겠다. 교계신문은 명동성당의 6인 사제단과 수도자, 사목협의회, 사무실, 평신도 모두가 공부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라.

광고빨, 기사빨

‘빨’은 순 우리말이다. 품사로는 의존명사라고 부르며 그 뜻은 ‘일이 되어가는 형편과 모양’이라고 사전이 친절히 알려준다. 신문의 구성에는 무엇보다 기사가 으뜸이고, 신문사의 재정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광고도 중요한 구성요건이다. 광고주가 그 신문사의 성향파악은 물론이고 적지 않은 광고료를 지불해서라도 가능한 한 많은 효과를 바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기에 ‘광고빨’이 좋은 길목에 위치한 지면에 따라 광고료는 차등 적용되고 크기에 따라서도 광고료는 천차만별이다. 광고주 입장에 큰 맘 먹고 광고를 했는데 하필이면 정반대의 내용이 기사로 실린다든지 하면 완전히 ‘초’ 치는 것이다. 쉬운 예를 들자면 오리나 닭고기 체인점 광고를 크게 했는데 그 면에 조류독감 발생 기사가 실리면 그것으로 끝이다.

이번 주에 그런 극적인 예는 아니지만 ‘광고빨’이 셀 지, ‘기사빨’이 셀 지를 가름 할 수 있는 지면을 볼 수 있다. 당사자들이 모두 성당관계자이다보니 표정관리 하겠지만, 속은 시커멓게 탈 것이 뻔하다. 먼저 지적해 두고자 하는 것은 신문편집 책임자가 안이하게 지면제작을 한다는 것이다. 편집자가 나름의 원칙은 있겠지만 자신이 광고주 혹은 기사의 대상이었다면 어떨지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이 좋은 편집자일 것이다.
길게 얘기를 했지만 <평화신문> 4면에 실린 통광고는 안동교구 상주 개운동성당에서 그곳 명물인 곶감을 판매한다는 내용이었다. 지역의 작은 성당이 이런 광고를 기획했다는 것은 작은 일이 아니다. 개운동성당 측이 광고에서 구구절절이 적지 않았지만 현지에 확인을 해보니 성당 리모델링을 이미 하였고, 그 과정에서 발생한 부채가 있었으며 그것을 갚기 위한 방법 중의 하나로 그런 물품을 팔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아무래도 중소도시 혹은 농어촌지역의 성당이 물품 파는 광고가 실리면 교우들이 이왕 살 것 도와주는 셈치고 이용하는 것을 많이 보아왔다.

그런데 어럽쇼! 다른 면도 아닌 같은 4면의 개운동성당 광고 이마에 보란 듯이 붙여서, 역시 같은 안동교구 문경 신기동성당이 성전 보수기금 마련을 위해 곶감을 판다는 ‘기사’가 실렸다. 기사가 광고를 가린 것인가? 광고가 기사를 가린 것인가? 저잣거리의 상관례도 이렇지는 않다. 누구는 돈 들여 통광고를 싣고, 누구는 기자의 취재기사를 통해 친절히 전화번호와 홈페이지를 알려주는 것은 좀 헷갈린다. 한 달쯤 지나 두 성당에서 통계를 내어보면 교계신문의 광고빨이 센지, 기사빨이 센 지 판명날 것이다.

독자와 광고주, 취재대상에게 신뢰 받을 수 있는 좋은 신문, 시쳇말로 ‘착한 신문’이 되는 길은 쉬운 것이 아니다. 교회이름으로 문 열어놓았다고 무조건 교우들이 구독하고, 무조건 성당들이 광고하는 세상은 결코 아니다. 앞뒤, 오른쪽 왼쪽, 위아래 두루 살피는 공부는 학교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여기에서 늘 하는 것이다.
 

김유철/경남민언련 이사, 경남도민일보 지면평가위원, 천주교 마산교구 민족화해위원회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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