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리는 이를 은혜로 채워주시는 주님입니다. 배고픈 이들에게는 은혜로 채워주셔야 배부를 수 있습니다. 가난해도 나눌 줄 아는 것과 가난해도 감사드릴 수 있는 것이 은혜입니다. 아무리 배고픈 사람이라도 나눌 줄 모르거나 감사할 줄 모른다면 배고픈 채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또 아무리 가진 것이 많은 부자라고 하더라도 나누거나 감사할 줄 모른다면 욕심에 허기가 져서 행복해지지 않을 것입니다.

인천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조건 없이 오백만 원을 보내왔습니다. 한동안 지갑에 한 푼도 없이 버티는 날이 없을 것 같아서 좋습니다. 전기요금과 수도요금, 그리고 가스요금도 두세 달은 내지 않고 버티기도 합니다. 또 집세를 내야하는데 비상금마저 모자라도 버티겠는데 우리 손님이 급하게 몇천 원 빌려달라고 할 때 도와주지 못하면 너무 마음이 아픕니다. 감기 몸살이 났는데 하룻밤만 찜질방에서 자도 낫겠다고 오천 원만 도와달라고 할 때 안 주고 버티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차비 이천 원만 빌려주면 일 나갔다가 오면서 갚는다고 할 때도 안 주고 버티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반찬 차리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입니다. 밥을 할 때 지갑에 여유가 좀 있으면 콩도 넣어드리고 싶고, 흑미도 넣어드리고 싶고, 기장쌀도 넣고 싶고 그렇습니다. 어떨 때는 보리쌀을 넣어드리면 우리 손님들이 참 맛있게 드십니다.

며칠 전에 선물받은 고급 명란젓을 상에 내었습니다. 처음 드셔보는지, 아니면 명란젓이 무엇인지 모르고 그러는 것인지 접시에 듬뿍 담습니다.

"손님, 이것이 무엇인지 아셔요?"
"감자 으깬 거 아니예요?"
"아이고, 명란젓입니다. 짜니까 좀 덜어내셔요."

하루 동안에 10Kg이나 되는 명란젓을 우리 손님들이 다 드셨습니다. 무엇인지도 모르고 드셨던 분도 많습니다. 그런데도 참 맛있었다고 합니다.

담양 창평 한우방에서 보내온 소고기로 육개장을 끓였습니다. 방호정 식당에서 육개장을 맛있게 끓이는 비법을 배워왔습니다. 우리 손님들이 두세 그릇씩 드십니다. 육개장 끓인 날은 치아가 부실한 우리 손님들이 참 행복해 하는 날입니다. 김치도 치아가 부실해서 드시지 못한다고 하시는 손님도 고기는 듬뿍 접시에 담습니다. 그냥 삼키려고 애를 씁니다. 그래서 되도록 고기반찬은 부드럽게 무르게 익혀서 내려고 마음을 씁니다.

연안부두 어시장에서 장사하시는 아녜스 자매님이 두 상자나 보내준 고등어 자반을 구웠습니다. 비린 생선을 좋아하는 분이 다섯 조각을 먹어도 되는지 물어봅니다. 다른 손님들 생각도 해서 두세 조각이 좋지 않을까요? 망설이다가 두 조각을 집어 담습니다. 두 조각 더 집어 드렸더니 좋아합니다.

봉사자들이 네 분이 더 오셨습니다. 급히 시장에 가서 시금치를 15Kg 한 상자를 사고, 쪽파는 스무 단을 샀습니다. 내일은 손님들께 시금치 된장국을 끓여드리면 참 좋아하실 것입니다. 우리 손님들이 파김치를 아주 좋아하십니다. 봉사자가 많이 오셨을 때는 이처럼 손이 많이 가는 반찬을 만들기도 합니다. 민들레 식구인 주헌씨가 쪽파를 하나씩 다듬으면 힘이 드니까 그냥 물에 비벼서 다듬으면 쉽다고 아는 체 합니다. 쪽파는 하나씩 깨끗하게 다듬어야 한다고 일러주었습니다. 창고에서 쪽파와 시금치를 다듬는데 지나가던 동네 할머니와 아주머니들도 도와주셨습니다. 동네 할머니와 아주머니께서 도와준 덕택에 봉사자들의 일거리를 더 만들어야 했습니다. 우리 손님들이 좋아하는 무 생채를 듬뿍 만들었습니다.

계란말이는 우리 손님들이 좋아하십니다. 노숙을 하거나 혼자 사는 분들이 건강이 나빠지면 제일 먼저 치아가 약해집니다. 그래서 부드러운 음식을 무척이나 좋아합니다. 어떤 날은 계란을 스무 판이나 계란말이를 했는데도 우리 손님들이 드실 양을 채워드리지 못했습니다. 또 계란말이는 만드는 시간도 많이 걸리기도 해서 얼마 전부터는 계란말이를 하는 날에는 손님들께 다섯 내지 여섯 조각만 접시에 담아가시도록 했더니 열 판 정도면 겨우 양을 맞출 수 있습니다. 잠깐 한눈 판 사이에 한 접시 가득 담아가는 분이 있습니다.

우리 손님들도 배만 채울 것이 아니라 좀 맛있는 것, 좀 좋은 것을 드셔보는 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갈비탕을 처음 먹어보고, 삼계탕을 처음 먹어보고, 명란젓이 감자 으깬 것인지 알고요. 브로콜리를 상에 내면 아무도 접시에 담지 않습니다.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돈가스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배고픈 사람들을 주님께서는 좋은 것으로 배불리실 것입니다.

 

서영남/ 인천에 있는 민들레국수집을 운영하면서 노숙자 등 가난한 이웃들과 더불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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