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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교회를 다녀와서-2
   
호치민시를 누비는 오토바이 행렬

호치민시는 그리 화려하지 않았다. 4-5일의 짧은 일정에 쫓겨 시내를 두루 돌아다녀보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눈에 얼른 띄는 높은 마천루가 없기 때문일 듯도 했다. 도로는 일본산 차들이 점거하다시피 했고 가끔가다가 한국산 차들이 눈에 띄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한가하게 시내 풍경을 구경하는 것도 좋았지만, 우선은 먹는 문제가 급했다. 길에서 파는 음식을 사먹기는 엄두가 나지 않았고 호텔에 들어가자니 터무니 없이 비쌀테고... 이럴 때 패스트 후드점이 눈에 띄면 다행스러운 마음을 넘어 은근히 반갑다. 생태계 보호에 열심인 사람들이 들으면 욕할지도 모르지만, 그곳에서 허겁지겁 한 끼를 때우고 나면 고마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욕을 하려면 패스트 후드점이 아니라 그렇게 해서라도 먹어야 하는, 생물학적 욕구를 이기지 못하는 나를 욕하는 편이 더 낫다고 마음먹는다. 그래야 다음에 또 와도 조금 덜 미안할 수 있으니 말이다.어쨌든 호치민에 있는 동안 하루에 한 끼는 이곳에서 때워야 했다. 외국에 나가면 다 애국자가 된다던데 호치민에서 한국 패스트 후드점인 ‘롯데리아’를 목격했을 때 들었던 반가움은, 미안하지만 애국심보다는 이런 생물학적인 욕구 때문이었다. 아마도 내게 애국심은 배를 채운 뒤에나 찾아야 할 그 무엇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을 풍요롭게 하는 것은 아무래도 자신에게 익숙한 것과는 다른 어떤 것을 보고 느끼는 데에 있지 않을까 한다. 호치민에서 이런 ‘다름’은 금방 눈에 띈다. 거리에 나가보면, 특히 출퇴근 시간에는 소형 오토바이들이 커다란 물결을 이룬다. 남녀노소 공평하게 한 대씩 끌고 거리로 나와서 그런지 그야말로 오토바이들 때문에 거리가 북새통이 되지만, 밀물처럼 몰려오는 오토바이에 탄 사람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한국에서는 누릴 수 없는 것 가운데 하나다. 썬글라스로 한껏 멋을 낸 아가씨들이 앞뒤로 앉아 깔깔대며 지나가고 연인인듯 한 쌍의 남녀가 다정한 모습으로 꼭 붙어서 밀어를 나누며 가고, 손님을 태운 듯한 영업용 오토바이는 손님 한명이라도 더 태워야 한다고 시위라도 하듯이 빨리 달리다가 자동차들과 서로 경적을 울리며 실랑이를 하는 모습 하나하나가 생기에 넘친다.

   
호치민성당


1990년대 들어 채택한 개방정책의 긍정적 측면이리라 생각해본다. 만남을 주선한 땀에 따르면 자동차는 비싸기 때문에 호치민 사람들은 18살만 되면 자동차대신 자기 오토바이를 갖는 게 꿈이라고 한다. 지난번 글에 소개한 도미니코회 신부들도 그렇고 호치민대교구 총대리인 민 몬시뇰(67)도 나와 만나는 자리에 오토바이를 타고 왔다. 한국 교회가 좀 배워야 할 대목인 듯도 했다. 베트남 교회가 한국교회만큼 돈이 없기 때문에 대교구 총대리라도 예외 없이 오토바이를 타는 것이라고 폄하하기에는 우리 교회가, 특히 대부분의 성직자들이 누리는 물질적 풍요가 정도에 지나친 면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 않는가.

11월 11일 일요일 10시 미사를 호치민 대성당에서 드렸다. 성당의 모습은 명동성당과 비슷했고 미사전례 분위기도 한국의 그것과 크게 다를 바 없이 사뭇 건조하고 딱딱해서 미사에 집중하지 못하고 1시간 동안 다른 공상만 하다가 끝나 버렸다. 오히려 한국에서 베트남 이주민 노동자들과 함께 자그마한 경당에서 드렸던 미사가 훨씬 더 힘 있고 감동적이었다. 미사도 참가하는 사람에 따라 분위기가 이렇게 달라지니 하느님에 대한 믿음도, 아니 하느님 자체도 사람 마음에 달려 있는 게 아닌가하는 불순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민 몬시뇰과 함께, 필자

미사가 끝나고 민 몬시뇰과 함께 가까운 식당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 2년 전이던가 우리신학연구소를 방문했을 때보다 많이 연로해 보였다. 그 때 서울 베트남 공동체를 담당하고 있는 방 신부와 함께 왔던 민 몬시뇰은 안동교구 농민들의 유기농과 식량주권 문제에 대한 교회의 관심에 대해 물었다. 한국에는 농촌지역을 포함하는 교구가 여럿 있지만 안동교구만이 오직 농민에 대해 우선적으로 사목적 배려를 하겠다고 선언한 교구라고 설명해줬다. 교구장인 권혁주 주교는 농민출신이기에 농민에 대해 남달리 관심이 많아서 우리신학연구소를 초청해 안동교구 농민들이 어떻게 식량주권 문제나 여러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지에 대해 자문을 구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 때 민 몬시뇰은 “평신도들이 주교들을 설득하고 때로는 용감하게 맞서지 않으면 교회는 희망이 없다”고 말했다. 민 몬시뇰의 그 말은 내게 베트남 교회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됐고, 또 이번 호치민시 방문에서도 민 몬시뇰을 꼭 만나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하기도 했다. 호치민으로 떠나기 전에 선물을 사면서 연로하신 분에게 뭐가 좋을까 생각하다가, 건강하게 오래 사시라고 홍삼차 세트를 샀다. 홍삼은 인삼과 달라서 몸이 뜨거운 양인이나 차가운 음인 모두에게 좋으니 약으로 드셔도 좋고, 입이 궁금할 때 차로 드셔도 좋다고 설명하니,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고맙다고 했다.

정작 고마운 것은 나였다. 민 몬시뇰은 예상하지도 않은 호의로 호치민 대교구의 수장인 팜민만 추기경과 저녁을 함께 먹도록 주선해 줬다. 코디네이터인 땀은 내게 한국산 홍삼이 좋긴 좋은가보다고, 먹지도 않았는데 벌써 약발을 받아서 일반 사람은 잘 만나지 못하는 팜 추기경과 저녁도 먹게 되지 않았냐고 농담을 했다. 내가 호치민에 왜 왔고 우리신학연구소가 무엇하는 곳이며... 등등을 열심히 정리해서 팜 추기경에게 말해야 하겠다고 생각했지만, 저녁식사에서는 아주 공식적인 이야기밖에 나오지 않았다. 성품이 원래 과묵하셔서 그런지 아니면 처세술인지 파악하기는 어려웠지만, 호치민대교구도 평신도 양성을 위해 센터가 있다는 얘기와 호치민에 있는 한국인 공동체 견진성사를 집전해 주었다는 얘기를 했고 나는 듣고만 있었다. 어쩌지 못하는 애매한 분위기 끝에 사과와 망고가 접시에 담겨져 후식으로 나왔다. 얌전히 깎아 담겨온 사과는 팜 추기경에게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망고가 돌아갔다. 팜 추기경과 나 사이는 저 사과와 망고만큼이나 거리가 멀게 느껴졌다. 나만 그랬을까?

/황경훈(우리신학연구소 부설 아시아신학연대 센터 실장) 2007.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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