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강정마을 옆 카페 말 & ‘개’스트 하우스 연 말엄마 권영애 씨

쳇바퀴 돌 듯 반복되는 하루하루, 팍팍하고 외로운 도시 생활에 지친 이들이 꿈꾸는 ‘다른 삶’. 그 중 여행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한 번쯤 떠올려 보았음직한 로망이 있다.

“나도 산 좋고 물 맑은 곳에서 게스트하우스나 운영할까?”

아름다운 섬, 제주도에는 이런 로망을 실천에 옮긴 이가 많다. 근래에 제주도 곳곳에는 정착을 꿈꾸는 외지인들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가 적지 않게 생겼다. ‘말엄마’라 불리는 권영애 씨도 지난 10월 9일, 제주도에 이탈리안 레스토랑과 게스트하우스를 동시에 열었다. 그런데 게스트하우스의 위치가 특별하다. 해군기지 건설로 시끄러운 강정마을 바로 옆, 월평동이다. 올레길 7코스와 8코스가 연결되고 아름다운 강정 앞바다가 코앞에서 넘실댄다 하지만, 매일 공사장 앞문을 막아서는 이들과 경찰의 실랑이가 벌어지고 주민들이 구속돼 어수선한 동네 옆에 게스트하우스라니. 게다가 고급스러운 이탈리안 레스토랑이라니.

▲ 카페 말 & '개'스트 하우스 ⓒ문양효숙 기자

직장생활을 정리하는 캠핑카 여행에서 우연히 만난 강정, "이렇게 예쁜 곳이 없어진다고?"

“여행을 좋아했어요. 막연하게 게스트하우스를 하면 좋겠다 싶었죠.”

10년의 직장생활을 정리하고 새 정착지를 물색하는 여행이었다. 게스트하우스 계획을 실천에 옮기기 전, 몰려드는 불안함과 복잡한 마음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기도 했다. 서해안을 내려와 제주도를 한 바퀴 돈 후, 동해로 올라갈 계획이었다. 직접 개조한 캠핑카를 타고 서해안을 돌아 제주도에 머물며 해녀학교에 다니던 중, 강정마을에 오가는 동생을 만났다. 어느 날 동생이 ‘강정은 참 예쁘지만 너무 슬픈 곳’이라고 했다. 영애 씨가 왜냐고 묻자, 동생은 “해군기지가 들어와서 곧 예쁜 구럼비 바위가 없어진다”고 답했다. 영애 씨는 “막연하게 그 아름다운 모습을 마지막으로 봐두고 싶다는 간사한 여행자의 이기심이 발동했다”고 말했다.

영애 씨는 강정마을로 향했다. 깃발과 현수막, 마을 곳곳에는 싸움의 흔적이 가득했다. 공사장 정문 앞에는 여전히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며 서명을 받는 이들이 있었다. ‘이제 곧 발파하는데 왜 저러고 있지?’의아했다. 그 중 한 명이 목걸이를 사는 영애 씨에게 “어떻게 오셨냐”고 물었다. 영애 씨는 “마지막이라고 해서 사진이라도 찍어놓으려고요”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서명을 받던 이는 금세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며 “여기 마지막 아니에요. 싸움도 시작하지 않았고 확정된 것도 없어요”라고 대답했다. 구럼비 바위 발파 직전이었던 2011년 8월 말이었다.

그날 일이 마음에 남았다. 제주시 애월읍에 머물던 영애 씨는 9월 2일 강정마을에서 큰 문화제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다. 공연이나 한 번 보고 제주도 여행을 정리하자 생각했다. 문화제 전날, 여행지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나 친해진 친구가 찾아왔다. 제주도에 있으니 얼굴이나 한 번 보자 했던 만남이었지만, 밤늦게 찾아온 친구는 ‘망신창이’가 되어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친구는 평화활동가였다.

“마을회관에서 자는데 새벽에 사이렌이 울리더래요. 자기는 심장이 울렁대고 우왕좌왕하는데 동네 할머니들이 스쿠터 타고 막 달려 나오더라는 거죠. 그런데 그 친구가 ‘경찰들이 할머니를 막 때려’ 그러는 거예요.”

해군기지 공사를 위해 펜스를 치던 날이었다. 친구는 동네 주민들이 겪은 이야기를 해주며 “사람들이 너무 힘드니 내일 갈 거면 오늘 가자”고 했다. 새벽 2시에 마을에 도착해 캠핑카를 세우려던 영애 씨는 깜짝 놀랐다. 온 골목길을 경찰들이 새까맣게 막고 있었다.

“‘말도 안 돼. 제주도에 뭐 이런 동네가 다 있어?’라고 생각했어요. 내가 여행했던 제주도가 아니었어요. 평생 볼 경찰을 거기서 다 봤어요 아주.”

다음 날 일어나니, 전쟁터 같던 마을은 온데간데없고 다시 평화로운 마을이 눈앞에 펼쳐졌다. 마을 주민들은 문화제를 한다고 김밥을 싸고,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반짝거렸다. 하지만 여전히 마을에는 경찰들이 가득했고, 곁에 있던 사람들은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경찰에게 매를 맞고 잡혀갔다. 문화제만 보고 가야지 했던 영애 씨는 강정에서 그렇게 1년 반을 머물렀다.

▲ 카페 말 & '개'스트 하우스 ⓒ문양효숙 기자

알지 못했던 세상, 다른 시각과 소중한 가치관 배워

“내가 알던 세상이랑 너무 다른 거예요. 뉴스에서 이런 걸 본 적이 없었거든요. 시각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내가 왜 그런 것만 믿고 살았지? 바보 같이.”

그가 용산 이야기를 꺼냈다. 용산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남일당 이야기>를 보며 “엄청 울었다”고.

“내가 서울에서 알던 용산참사와 다큐멘터리 안의 이야기가 완전히 달랐어요. 저, 실은 그분들 엄청 욕했거든요. 조폭의 이권 다툼이랑 똑같은 세입자들의 분쟁이라고 생각했어요. ‘왜 저래? 보상을 얼마나 더 받으려고 그래? 조용히 좀 살자. 도시 좀 깨끗하게 살자, 이 사람들아.’ 이렇게 생각했거든요. 미안했어요.”

영애 씨는 강정에 머물며 삼거리 식당에서 설거지도 하고 요리도 했다. 배로 세계를 여행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으로 따 놓았던 선박 운전면허증도 빛을 발했다. 활동가들의 해상활동과 조성봉 다큐멘터리 감독의 해상촬영에도 동행했다.

“내가 몰랐던 세상에 대한 미안함이 있었어요. 게다가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내가 여기에선 도움이 되는 거예요. 뭐라도 조금 하면 사람들이 너무 고마워하고. 회사에서 일하던 거에 비하면 ‘어머, 이런 건 일도 아닌데’라고 생각했죠. 이것저것 하다 보니 활동가와 주민들이 ‘말엄마’, ‘말엄마’ 하며 찾았어요. 숙소 관리하면서 방문자들도 다 알게 되고. 내가 기분 좋아서 하는 일이 이렇게 여러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구나 하고 신기했죠.”

강정에서 지낸 1년 반, 그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가치를 배웠다. ‘신념’이었다.

“어느 날 한 할아버지가 외신 기자들이랑 대화를 하고 있었어요. 동네 어르신들도 영어를 저렇게 잘하시는구나. 이 동네 신기하다 싶었는데 알고 보니 문정현 신부님이셨어요, 하하.”

할아버지 신부님은 지팡이를 들고 나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경찰과 싸웠다. 아니, 눈에 보이지만 보이지 않았던 그 무엇과 싸웠다. 하물며 평생 싸워왔다고 했다. 영애 씨는 ‘평생 뭐 그리 싸울 게 많던가요?’라고 묻고 싶었다 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송강호 박사는 수영 연습을 하더니 해상활동을 벌인다고 바다에 들어갔다가 결국 감옥에 갇혔다. 박도현 수사도, 마을 주민도 하나둘 감옥에 갇혔다. 그렇게 흔들림 없이 싸우며 소중한 것들을 지키고자 하는 이들 곁에서, 그는 중요한 것들을 배웠다.

▲ 권영애 씨 ⓒ문양효숙 기자

"더 가지 않아도 돼, 여기에 정착하자"

1개월만, 2개월만 더 있자 하며 기약 없는 연장을 하던 영애 씨는 자신의 원래 목적을 다시 떠올렸다. 처음 캠핑카를 제작할 때, 그는 긴 여행을 마칠 때면 자신이 ‘스케일이 크고, 아주 좋은 자리에서 여행자를 맞이하는 사람’이 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강정에서 1년 반을 보내며 그는 마음의 소리를 들었다. ‘더 안가도 돼.’

“사람 많이 만나면 뭐해요. 정말 중요한 것들을 하나도 몰랐는데. 저는 한국 100바퀴를 돌아야 알 수 있는 것들을 여기서 배웠어요. 여기에서 설거지를 하고 해상활동을 하고, 이런 게 전부 제 여행이었던 거예요. 어느 순간부터 다른 곳에 갈 필요가 없겠구나 싶더라고요.”

그맘때, 마을 주민 한 명이 지금의 자리를 소개해줬다. 캠핑카를 세워둘 공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쓰레기가 산처럼 쌓여 있고 풀로 뒤덮인 돌 창고였지만 왠지 모르게 기운이 좋았다. 게다가 강정마을이 지척이었다. 작년 12월, 영애 씨는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한 겨울 내내 청소만 했어요. 석 달 정도. 풀 베어내고 폐자재 처리하고. 아, 힘들었어요. 공사는 강정마을 삼촌들이랑 함께 했어요.”

4개의 방을 갖춘 게스트하우스와 이탈리안 카페 ‘말’은 그렇게 탄생했다. 벽과 문, 채광에서 침구류와 작은 소품에 이르기까지, 인테리어 하나하나에 공을 들였다. 카페 한켠에는 돌고래 목걸이와 얼마 전 구속된 강정마을 주민과 활동가의 이야기를 잘 보이도록 걸어놓았다. 함께 일하는 스텝 세 명은 강정에서 활동하며 만난 친구들이고, 메인 셰프와 커피 책임자는 영애 씨의 지인들이다. 그들은 흔쾌히 이곳에서 요리하고 손님을 맞는 일에 함께해 주었다.

먹보말 포비와 세 마리의 반려견은 더없이 소중한 가족. 그래서 '개'스트 하우스

카페 말 & ‘개’스트 하우스에서 영애 씨와 함께 살아가는 이는 이들 만이 아니다. 영국 태생의 말 포비, 세 마리의 반려견 로니, 바니, 타이는 영애 씨의 소중한 가족이다.

영애 씨가 ‘말엄마’라 불리는 이유다. 그는 포비와 로니를 캠핑카에 태우고 전국을 여행했다. 말과 개, 그리고 캠핑카.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이 떠오르지만, 정작 영애 씨는 “말도 안 되는 일을 저지른 것”이라며 웃었다.

“일단 우리 포비는 하루 종일 먹어요. 풀만 보면 뒤에서 무조건 그것만 따라가고요, 개밥도 빼앗아 먹어요. ‘포비야~너 영국산이야~!’라고 외쳐도 소용이 없어요. 로니는 나를 지켜줄 개가 필요할 것 같아서 입양했는데, 뒷 차가 클락션 한번만 울려도 벌써 제 무릎에 머리를 파묻고 있고요. 사람들이 보더콜리가 제일 똑똑하고 늠름한 견종이랬는데, 우리 로니는 겁이 너무 많아서 강정 마을 강아지들만 만나도 벌써 배를 내보이면서 눕네요. 아.. 네가 나를 지켜야 하는데..그래서 여행지에서 말이랑 멋진 개랑 그림같이 앉아있는 환상은 사라졌고요. 사람 많은 데 가면 한 놈은 짓고 한 놈은 풀 뜯으면서 자기 가고 싶은 곳으로 가고..아하하...오즈의 마법사 조합이예요”

 

▲ 말엄마 권영애 씨의 반려견 로니가 게스트 하우스 앞에 앉아 있다.ⓒ문양효숙 기자

인터뷰를 하는 동안, 식탐마 포비는 게스트 하우스에 심어 놓은 잔디를 초토화 시키고 성이 차지 않은지 길 건너 풀을 뜯기 위해 탈출을 감행했다. 게스트 하우스를 지켜야할 로니는 보는 손님마다 짖어대고 그 옆의 바니와 타이는 만인에게 과도한 애정을 표현한다. “내가 못살아”를 외치지만, 문제견 세 마리와 식탐마에 관해 이야기하는 영애 씨의 표정에는 사랑이 가득하다. 긴 여행의 시간동안 그들은 영애 씨의 벗이자 가족이었으리라. 이 게스트하우스는 그래서 ‘개’스트 하우스다. 영애 씨는 숙소에 여행객들 뿐 아니라 반려견도 함께 묵을 수 있도록 준비했다.

카페와 게스트 하우스를 오픈 하던 날, 까페 말 & 개스트하우스에는 밤늦은 시간까지 강정마을 주민들이 끊임없이 모여들었다. 문정현 신부와 김성환 신부 등도 함께 해 말 엄마의 새출발을 축하했다. 영애 씨는 카페 말 & ‘개’스트 하우스가 “강정에, 강정 사람들에게 쉼표 같은 공간이 되면 좋겠다”고 말한다.

여행의 종착지, 그리고 새로운 여행

“여기가 여행의 종착지인가요?”
“현재로서는요. 내가 부채감을 씻을 수 있는 곳. 지금까지 몰랐던 세상에 대해, 그리고 덜컥 전면에 나서지 못하는 미안함에 대해. 사실 전 아직도 경찰이 무섭거든요.”
“하지만 피하지는 않을 수 있는?”
“네. 이유가 생긴 거잖아요. 내가 여기 있을 이유. 그리고 당당하게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이유. 구럼비 바위가 폭파되었다고 싸움이 끝난 게 아니니까요. 해군기지 하나가 들어오면 끝나는 이야기가 아니니까요. 공사가 진행되고 해군기지가 들어온다고 해도 우리에게는 지켜야 할 것들이 많아요.”

싸움이 끝난 게 아니듯, 영애 씨의 여행도 아직 끝나지 않은 듯 했다. 그에게는 지키고 싶은 소중한 것이 생겼고, 그것을 위해 묵묵히 사람들과 함께 길을 걷고 있으니 말이다. 다만 앞으로 그의 여행은 자신만을 위한 게 아니라 누군가를 위한, 누군가와 함께 걷는 좀 더 새로운 여행이 될지도 모르겠다. 꿈이 많고 열정이 가득한 그는 게스트하우스를 찾는 이들에게 강정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 했다.

“여행 오셨어요? 옆 마을에 무슨 일이 있냐면요...”

▲ 게스트 하우스 내부 ⓒ문양효숙 기자

▲ 게스트 하우스 내부 ⓒ문양효숙 기자

▲ 카페 '말'의 내부 (사진제공/마일로네 제주이야기)

* cafe 말 & '개'스트 하우스 070-8839-9397 제주도 서귀포시 이어도로 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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