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되기 원치 않는 교황을 내가 어찌 사랑할 수 있겠나?”

지난 3월 교황좌에 오른 프란치스코 교황의 지난 5개월간의 행보에 대해 가톨릭교회의 보수 진영에서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그러나 교황의 파격적 행보는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황 선출을 위해 열린 콘클라베 추기경단 회의에서 ‘신학적 자기도취’에 빠져있는 교회를 비판하며, 앞으로 교회가 자신의 시선을 ‘밖으로’ 돌려야 한다고 연설했다. 여기서 ‘교회 밖’이란 예수가 죽은 ‘성문 밖’이다. 결국 죄악과 고통, 불의가 가득 찬 세상과 가난한 이들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는 것이었다. 당시 교황은 “자기 목소리에만 집중하는 교회”에서 벗어나 “교회가 자기 밖으로 나갈 수 있도록 도울 사람이 교황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그렇게 말한 본인이 교황이 되었으며, 3월 28일 성유축성미사에서 성직자들에게 “내면의 기도에 몰두하지 말고, 자신이 키우는 양의 냄새가 배어있는 목자가 되라”고 당부했다. 또한 성직자들은 ‘타인을 위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며 “우리가 제의를 수수하게 입을 때 교우와 성인, 순교자들의 얼굴을 마음으로 충분히 느낄 수 있고 어깨 위로 그들이 지고 있는 짐의 무게를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 말처럼 교황은 자신을 ‘로마의 주교’라는 겸손한 표현으로 부르고, ‘황제다운’ 모습을 버리고 소박한 생활과 ‘가난한 이들에 대한 선택’을 분명히 하였다. 그의 이름 ‘프란치스코’가 교회개혁의 방향을 미리 일러주는 것이다. 이런 태도는 지난 30년 동안 군림하던 바티칸의 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베네딕토 16세가 보여준 교황의 모습과 대조적인 것이었다.

▲ 프란치스코 교황이 25일 리우데자네이루 북쪽에 위치한 바르지냐 빈민가를 방문해 어린이들에게 안수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유튜브 동영상 youtube.com/vatican 갈무리)

가난한 이들에 대한 철저한 관심 촉구하는 교황,
가톨릭 보수파의 불안감 키워

<릴리전 뉴스 서비스(Religion News Service)>에 실린 글에서 데이비드 깁슨은, 그동안 가톨릭교회의 보수파들은 “옳은 것에는 적이 없다(No enemies to the right)”라는 금언을 금과옥조로 삼아 활동해 왔다고 전했다. 이는 곧 “우파(the right)에는 적이 없다”는 말로 읽히기도 한다.

따라서 지난 30년 동안 스힐레벡스와 한스 큉과 같은 자유주의 신학자는 물론 해방신학자와 같은 ‘좌파적 신학자들’은 침묵을 강요당하고, 진보적이거나 중도적인 주교들은 우파 강경파들에게 밀려 한직으로 쫓겨났다. 그 사이에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의 전례를 옹호하는 ‘전례적 전통주의자들’과 유럽 중심의 ‘문화적 보수주의자들’이 부지런히 교황청을 들락거리고 전임 교황들을 알현하며 친분을 쌓았다.

그러나 최근 몇 달 동안,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톨릭 우파 인사들에 대한 편애를 접고, 낙태 문제 등 그들이 선호하는 의제들을 무시하면서 이러한 역동을 단숨에 뒤집어 놓았다. 교황은 오히려 물신적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사회정의’를 강조하면서 좌파적 성격을 띠기도 했다. 이는 우파적 특성을 지닌 교회 인사들의 반발을 사기에 충분하다.

‘새 전례 운동(the New Liturgical Movement)’ 블로그의 편집자 제프리 터커는 “나는 애초부터 교황의 이런 측면들이 참 짜증스럽게 느껴지고, 그런 느낌들 때문에 힘들었다. 나만 이런 것은 아닌 것 같다”고 푸념을 늘어놓았다. 최근 교황이 브라질을 방문하면서 언론의 관심을 받고 있을 때, 그는 “매일매일 우리는 지나간 시절이 얼마나 나빴으며, 이제 새 교황의 출현으로 새롭고 좋은 시절이 시작된 것이 얼마나 기쁜지 언론을 통해 듣고 있다”며 한탄했다. 이런 전통주의자들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지나치게 단순 소박한’ 스타일이 마음에 안 들었다.

유명한 보수파 블로거 카트리나 페르난데스는 자신의 칼럼에서 “교황이 되기를 원치 않는 교황을 내가 어찌 사랑할 수 있겠는가?”라며 환멸감을 표현한 바 있다. 그는 교황이라면 마땅히 누려왔던 ‘특권’을 마다하는 교황 프란치스코가 교황의 권위를 스스로 훼손시키고 있다고 비난한다. 또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출 이후 줄곧 ‘세계화된 경제의 악’을 비판하고, 가난한 이들에 대한 철저한 관심을 촉구하는 등 예전과 전혀 다른 ‘교황직’을 수행하면서 우파의 불안감은 점점 커지고 있다.

실제로 교황은 낙태에 관해 직접적으로 언급한 적이 거의 없었고, 브라질에서 바티칸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이루어진 즉석 기자회견에서 동성애 사제들에 관해 질문을 받기 전까지 동성애자들의 권리에 대해서도 언급한 적이 없었다. 그는 이 문제에 대해 “내가 누구를 판단할 수 있습니까?”라고 말했다.

미국 성직자 가운데 대표적인 보수파로 알려진 필라델피아 교구의 찰스 채풋 대주교는 <내셔널 가톨릭 리포터> 기자에게 “교회 내 우파들은 이번 교황 선출을 진심으로 기뻐할 수 없었다”며 “(교황이) 보수파도 보듬어야 할 텐데, 이 사태가 앞으로 어떻게 풀려나갈지 흥미로운 일”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유력한 신자들과 교회 내 고위 성직자 가운데 상당한 비율이 보수파이기에, 교황이 이들의 실망감을 어떻게 다룰지 위험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가톨릭 성직자들의 성추문에 관한 책을 저술한 작가 마이클 디안토니오는 잡지 <포린 폴리시>에 기고한 글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자신의 양떼들에게 너무 급진적인가?”라는 물음에 대해 “그들은 그동안 충성스럽게 교회에 기부를 해왔고,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라면 적극적으로 행동해 왔기에, 프란치스코 교황이 시사하는 쪽으로 어떤 변화가 생긴다면 저항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그러나 교회는 이런 보수파에 의존해서는 장기적으로 자신을 지탱할 수 없다”면서 “이미 보수화된 교회 지도자들의 입장과 이로 인한 신자들의 대량 이탈이라는 서구 교회의 현실에서 이 간격을 메워줄 인물이 필요하며, 이 대담한 일을 성사시키려면 수완과 카리스마를 갖춘 영리한 교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바티칸이 ‘교회 개혁’의 중심이 될 것인가?

한편 교회 일각에서는 과연 프란치스코 교황 때문에 보수파의 영향력이 줄어들지 의문을 갖는 사람들도 있고, 심지어 프란치스코 교황이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와 정말 다른지 의심을 품는 이들도 있다. 그동안 언론들이 호들갑스럽게 다루어온 것과 달리, 실제로 프란치스코 교황이 그다지 진보적이지 않다고 알려지면, 교황과 진보세력의 밀월관계도 끝날 것이라는 주장을 펴는 이들도 많다. 이미 라칭거 추기경 시절부터 많은 언론에게서 비판을 받았던 베네딕토 16세와 달리 프란치스코 교황은 언론에 부분적으로만 대응하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기 때문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개혁적 태도는 그동안 교황과 가톨릭교회를 동일시해 온 가톨릭 보수파가 ‘교황 숭배’에서 벗어날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로즈 도우댓은 “그동안 천재들보다는 무능한 자들이 훨씬 더 많이 교황직에 있었다. 베드로좌에 있었던 이들 가운데 성인 호칭기도에 등장하는 인물이 그토록 적은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과정이 결국 바티칸이 교회 개혁의 중심이 됨으로써, 한국 교회를 비롯해 성직자 권위주의가 잔존하는 가톨릭교회 안에서 교회 지체들이 동반자적 관계를 맺고, 특별히 요한 바오로 1세 교황이 천명했던 ‘가난한 이들의 교회’로 나아가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 참고 기사 <Religion News Service>, ‘Catholic Right, Traditionalists Lament Pope Francis Papacy’(2013. 8. 7) 번역 제공 / 배우휘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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