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알청춘일기-배선영]

마지막 연재이니 센 것(?)을 써달라는 농담반 진담반의 요청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주제는 ‘휴식’이다(나중에 안 사실은 이번이 아니라 다음이 마지막 연재이다) ‘어떻게 하면 잘 쉴 수 있을까’라는 주제가 요즘 나의 화두이기 때문이다. 그냥 쉬면 될 것을, ‘잘 쉬는 법’이라니- 뭐 이런 고민을 하나 싶겠지만, ‘잘’ 쉰다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백수가 된 지 두 달이 지나간다. 수술 후 급격하게 저하된 체력과 면역력을 회복하겠다는 명목아래 푹~ 쉬려고 마음먹고 놀고 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출퇴근을 하는 것도 아니고, 재택근무를 하는 것도 아닌데 여전히 피곤하고 지친다. 이유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뭐하고 놀까, 뭐하면서 재충전을 하지’라는 즐거운 고민은 잊은 지 오래, 언제부터인가 살림의 노예가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아프신 할머니를 돌봐드리기 위해 부모님이 집을 비운 사이, 살림은 내 차지가 되었다. 처음에는 청소와 내 식사 정도나 챙겨먹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집안 곳곳의 곰팡이를 처리하거나 주방을 효율적으로 다시 세팅하고, 각종 수납공간들을 정리하는 등 집안을 새로 정비하는 정도에 이르렀다. 냉장고에 있는 재료들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요리나 반찬통의 냄새 없애는 법, 도마의 얼룩 지우는 법 같은 것들을 검색하는 것은 일상이 되었다.

정신없이 집안일을 하다가 지치면 드러누워서 텔레비전를 보았다. 텔레비전를 보며 좀 쉬었다고 생각되면 다시 일어나 장을 보고, 동생이 퇴근할 시간에 맞춰 다이어트 하는 그 아이를 위한 저열량 음식을 만들었다. 이놈의 집안일은 끝이 없는데다, 덥고 꿉꿉한 날씨에 넓지도 않은 집안을 하루 종일 종종거리며 다니는 것은 생각보다 체력이 요구되는 일이어서 피곤은 가시지 않았고 몸은 고되었다. 그렇다 해도 내가 시간에 쫓기는 사람도 아니고, 모임이며 친목을 못할 정도로 바쁜 것도 아닌데 늘 힘들고 지치는 건 너무하다 싶었다. 집안일 하는 중간에 텔레비전나 핸드폰을 보며 휴식을 취하기도 하는데 말이다.

어쨌든 잘 쉬지 못하고 있음을 감지하고 급기야 어떻게 하면 잘 쉴 수 있는 지, 몇 년 전에 지인에게 선물 받고 책장에 고이 모셔둔 <휴>(休)라는 책을 통해 알아보기로 했다. 목사이자 명상가인 작가는 서문에서부터 휴식을 취하는 것 그리고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한다. 그리고 ‘휴식’에는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진지하고 깊은 의미가 있었다.

“안식의 시간은 과로와 만족을 모르는 부의 축적, 끝없는 욕망, 책임감, 성취 등으로 표현되는 폭력을 향한 혁명적인 도전이 될 수 있다. 안식일은 우리가 진정 누구인가를 기억하는 시간이며, 영혼이 주는 선물과 영원성을 향유하는 시간이다”

“안식일은 단순히 쉬는 날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단지 텔레비전 속으로 들어가거나 집안일을 하기 위해 쉬는 날이 아니다. 가장 아름다운 것, 활력을 주는 것, 진실한 것이 무엇인지를 듣는 시간이 곧 안식의 시간이다. 온 마음으로 주의를 집중해 은총의 내밀한 힘에게, 우리를 지탱시켜주고 치료해주는 영혼에게 축복을 드리는 시간이다.”

(웨인 밀러, <휴> 중에서)

드러누워 아무 생각 없이 텔레비전을 보는 것이 전혀 휴식이 되지 않았던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이 책에 따르면 휴식은 “모든 것이 축복임을 확인”하는 영적인 충만함으로 나를 채울 수 있는 시간이다. 책에서는 이런 휴식을 위해 다양한 방법들을 제안한다. 이 중에서 몇 가지를 직접 해보았다.

사랑하는 사람과 음식을 만들어서 초를 켜고 감사의 기도를 올린 뒤 만찬을 즐기기. 애정을 듬뿍 담아 만든 식사를 함께 즐길 수 있는 이 순간에 대한 감사함으로 잠시 동안의 충만함을 느낄 수 있었다.

마음을 나누던 그러나 지금은 만날 수 없는 친구에게 내 마음을 담아 편지를 쓰며 스스로를 돌아보기도 했다. 기도하기, 잠시 멈춰 호흡하기 등도 해보았다. 책에 나오는 방법을 통해 휴식을 취한 후, 삶이 얼마나 축복인지, 얼마나 감사한지 기쁨을 느끼며 글을 마무리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휴식에 대한 고민은 계속되었다. 그러다 마음이 힘들고 지칠 때면 시를 읽곤 하던 것이 떠올랐다.

▲ 김승희의 시집 <희망이 외롭다>(문학동네) 중에서
왜 쉬어도 쉬는 것 같지 않은가에 대해 고민하면서 가장 큰 원인으로 삼았던 것은 어떤 일을 하든지 의무감으로 한다는 것이었다. 늘 해야 하는 일을 정해놓고 그것들을 꼭 해내야만 한다는 강박을 가지고 있으면 스트레스를 받게 마련이다. 일을 그만두고 자유로워졌다고 생각했으나 나는 또 내가 만들어놓은 의무 속에서 스스로 노예가 되었던 것이다.

잘 쉬지 못하고 있는 또 다른 원인은 걱정이었다. 집안을 돌보면서 편안한 마음으로 지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상 나의 마음은 전혀 편안하지 않았다.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불안감은 떨쳐버리려고 아무리 애써도 잘 되지 않는다. 아직은 일할 생각이 없다고 말하면서 꾸준히 구직란을 살펴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스스로를 보게 되자 우울해지고 말았다. 그런데 이 우울감이 싫지만은 않다. 내면 깊숙한 곳에서 감정들을 더욱 진하게 만끽하기 위해 시를 읽는다.

시가 주는 깊고 아릿한 느낌이 나를 나른하게 만든다. 비록 기쁨과 사랑으로 충만하지는 않지만, 시를 읽는 이 순간이 ‘쉼’이다.
 

 
배선영(다리아)
내가 왜 이 모양 이 꼴로 살고 있을까를 고민하며 20대를 보냈다.
이 사회는 왜 이 모양인가를 고민하며 30대를 살고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