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년만의 춘삼월 꽃샘 폭설로 창 밖 세상이 백설천지가 되었던 아침, 봄꽃이 아닌 눈꽃이 만발한 오솔길을 조심스레 가니 벌써 갖가지 생명 흔적들이 눈밭 위에 있다. 이른 시간이라 사람의 발자국보단 까치들과 고양이들의 조심스런 뜀박질 흔적들, 가랑잎과 잔가지와 돌멩이들의 눈 먹은 흔적들, 스쳐지나간 칼바람의 흔적들, 내 몸을 싣고 가는 전동휠체어의 둔중한 바
완연한 봄이다. 만물이 동면에서라도 깨어난 듯 춘삼월 햇살에 갑자기 달아오른다. 생명은 그렇게 스스로 피어나고 그러기에 자연인 것이다. 하지만 이 봄날, 모든 생명이 활짝 피어나는 이 계절에 거꾸로 MB는 대운하 터닦기 4대강사업에 더욱 박차를 가하며 자연과 뭇 생명들에게 죽음의 시그널을 보내고 있다. 비록 세종시를 둘러싼 집안싸움 때문에 국민적 관심사에서
설 명절을 맞아 부산으로 내려와 해운대 바닷가에 오니 탁 트인 수평선만큼이나 늦겨울 바다가 환상적이다. 떼야르 드 샤르댕의 ‘세계 위에서 드리는 미사’가 떠오르는 장엄한 풍경이다. 주님, 이번에는 앤(Aisne) 숲 속이 아니라 아시아의 대초원 안에 들어와 있지만, 또다시 저는 빵도 포도주도 제단도 없이 이렇게 서서, 그 모든 상징들을
기원전 2천 년경부터 시작된 야훼(유대·그리스도교) 역사가 인류사에서 지니는 의미는 권력·전제·맘몬·정복·억압·소외 등등으로 표현되는 집단주의(한마디로 惡)로 치닫던 인류의 흐름에 반(反)하여 자유·해방·일치·공동체·연대·
우리가 교회다 아즈텍(Aztec)의 옛 시인은 “아무 것도 영속할 수는 없다.” 했다지만, 오직 하나 민중만은 영원하다. 국가도 민족도 제국도 문명도 문화도 다 사라져도 민중만은 살아남으리니 민중은 말 그대로 모든 것의 저변이요 핵심이다. 민중의 삶이란 생존애에 기초를 두고 있기에 언제나 생명력이 넘쳐흐른다. 이것이 그들로 하여금 상황
새해맞이의 호된 신고식이라도 치르듯이 폭설에다 한파까지 온 나라를 덮쳐 그야말로 엄동설한의 신년벽두이다. 올 겨울 눈 구경을 못했던 대구 지역에도 폭설은 아니지만 삼라만상을 부드러운 융단처럼 덮을 만큼의 첫 눈이 내려 백설천지로 만들었다. 자연날씨도 혹한이지만 서민들에겐 생활날씨가 더 걱정이다. 새해 벽두부터 꿈틀대며 오르는 물가와 대출금리, 이미 매서운
2009년은 ‘다사다난’이란 단어로도 못다 표현할 만큼 격동의 한 해였다. 새해 벽두에 일어나 아직껏 해결의 실마리조차 못 찾고 있는 용산참사로 시작하여,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지원을 명분 삼아 전격 단행된 삼성그룹 이건희 전 회장의 단독 특별사면과 복권으로 대미를 장식한 올해는, 집권 2년차 MB정권의 권력속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한
아직 해가 뜨지 않아 어스름 가득한 광장 길을 거닐어 본다. 뜻밖에 신종플루에 걸려 한 주간 꼬박 앓다 바깥세상이 그리워 새벽나절 나온 첫 나들이 시간이다. 밤새 깃든 안개가 수묵화(水墨畫)의 필치로 숲길과 산허리에 휘감겨 있고, 잿빛 하늘에선 대림절 성가 ‘하늘은 이슬비처럼’과 같이 이슬비가 방울방울 내려 옷깃을 적셔 나
우리 서로가 서로의 봉인을 떼어주는 해방자가 되어 이 세상에 가득한 고통과 인생의 갖가지 불행들 특히 자연재해 같은 비극적 사건들을 보며 누가 탄식하듯 “하느님의 직무태만이다.”라고 했다. 전능하신 그분께서 마음만 먹으면 이 세상을 단번에 고통 없는 천국으로 만들 수 있으련만 이렇게 내버려두심은 이해 되지 않는 처사라는 것이다. 일면
하루가 다르게 창 밖 풍경이 가을에서 겨울로 달라져간다. 깨질 듯 얼음장 같은 하늘빛이 다르고, 군상들의 잔뜩 움츠린 모습이 다르고, 비명처럼 날카로워지는 새 소리가 다르다. 천지에 드리워졌던 커튼을 젖힌 듯 한껏 여위어진 창 밖 나무들 사이로 갖가지 물상(物象)들이 한 눈에 드러나 보인다. 낙엽귀근(落葉歸根)이라, 나무 밑동 둘레마다 가득 쌓인 가랑잎들이
과거의 흔적은 얼마나 무서운가. 한번 겪은 것은 우리의 뇌리, 우리의 몸, 우리의 존재 속 어딘가에 박혀 남아 있다. 특히 불행했던 기억, 그것도 자신의 잘못된 행위에 대한 기억이라면 살인자 맥베스의 손에 묻은 핏물이 씻고 씻어도 지워지지 않듯이 우리를 힘들게 한다. 마치 박힌 가시처럼 살 속을 휘젓고 다니며 우리 삶을 할퀴고 곪게 만든다. 이미 저지러진
“천주의 성인들이여, 어서 오소서. 주의 천사들이여, 마주 오소서. 이 영혼을 부르신 그리스도여, 이 영혼을 받아들여 주소서. 천사들이여, 이 영혼을 아브라함의 품으로 데려가소서. 주여 이 영혼을 받으소서. 주의 영원한 빛을 그에게 비추소서.” 장례예절의 고별 노래가 가슴을 울리는 위령성월, 11월이다. 위령성월은 우리 삶이 유한하지
“나는 여러분을 속이는 자들과 관련하여 이 글을 씁니다.”(1요한 2,26). ‘누가 그들을 속인다는 것일까.’ 사도들의 편지에 자주 나타나는 다분히 피해망상적인 이런 표현은 그 시대가 얼마나 풍전등화 같은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이었던가를 반증해준다.하기야 유대 땅을 벗어나 로마제국 전 지역으로 교회가 들불처럼 번져가
권력이란 얼마나 무서운가. MB의 국정지지도가 상승세를 타자 그에 발맞추듯이 우리 사회 곳곳에선 ‘알아서 기는’ 일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최근의 KBS의 ‘스타골든벨’ MC 김제동 씨 하차와 MBC의 ‘100분토론’의 진행자 손석희 교체 사건은 그 대표적 예다. 얼마 전 MB의 서민행보에
지난 9월 29일 저녁 ‘용산참사의 올바른 해결을 위한 생명평화미사’에 함께 하려고 방문했던 용산참사 현장은 전쟁터 같았다. 그날의 참혹했던 상황을 말하는 듯이 화염에 그을린 흔적을 그대로 간직한 채 우뚝 서 있는 몰골사나운 건물과 주변은 스산하기만 했다. 하지만 무슨 전위예술작품 같게 변해버린 건물을 버팀목 삼아 그 아래에서 펼쳐지는
지난 5월 29일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 노제가 거행된 서울광장에서 수십만에 이르는 시민들과 함께 한 적이 있다. 경복궁에서의 영결식과 서울광장에서의 노제를 마치고 장례행렬이 서울역광장에서 수원 연화장 화장터로 떠나는 순간까지 만장을 앞세우고 파도처럼 출렁이는 군중행렬 속에 나를 맡기고 있었다.그러다 어느 순간 ‘이건 아닌데.’ 하는
이 싸움의 전선은 '부도덕함'이다일찌기 저항시인 김수영은 그의 시 ‘하... 그림자가 보이지 않는다’에서 “우리들의 전선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것이 우리들의 싸움을 이다지도 어려운 것으로 만든다.”고 탄식했지만, 위장전입, 세금탈루, 다운계약서 작성, 병역기피, 논문관련 의혹 등 각종 탈법과 편법 사실을 필
가을이다. 9월이 되면서 하루하루가 다르다는 느낌이다. 입추, 처서, 백로, 그렇게 절기의 순서대로 가을은 깊어가지만, 봄이 그러했듯 계절은 언제나 마음에서부터 먼저 온다. 밤새워 창 밖을 맴도는 귀뚜라미 울음이 그리 낯설게 들리지 않음을 보면서, 아직 퇴색하지 않았어도 부드러운 바람결에도 못 견디어 곧장 떨어져 뒹구는 캠퍼스의 낙엽들에 가슴 저려오는 걸
청와대는 8월 24일 최근 자체 여론조사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지지도가 지난해 촛불집회 이후 처음으로 40%를 넘어섰다며 “중도실용, 친서민행보와 8.15 경축사에서 제시한 통합의 메시지,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후 국장 수용 등이 좋은 평가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자체 평가했다. 한 때 10%의 바닥을 헤매던 MB에 대한 국정지
이 야만의 시대에선 지극히 인간적인 것은 모조리 제 명대로 살지 못하고 단명하고 마는구나! “2009년, 하늘이 두 번 무너졌다.”는 누구의 말대로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로 이어지던 지난 10년의 두 지도자를 불과 석 달 만에 모두 떠나보내는 슬픔을 겪으면서, 가슴 저 깊은 곳에서 울분어린 안타까움이 솟는다. 그러면서 이 야만의 한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