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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주님 뜻이 맨 첫자리에 오는 삶을/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 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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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벗
등록일
2019-12-29 07:25:44
조회수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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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은 나자렛의 성가정을 기억하며 가정생활을 되돌아보도록 제정된 날이다. 성가정에 대한 공경은 민간 신앙으로만 전해져 왔다. 베네딕토 15세 교황님은 주님 공현 축일 다음 첫 주일을 성가정 축일로 했으나, 1969년 전례력 개정할 때 성탄 팔일 축제 내 주일로 옮겼다. 한국천주교회는 이 축일의 주간을, ‘가정 성화 주간’으로 지내고 있다.

‘꿈에 천사가 요셉에게 일렀다. “일어나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하여, 내가 일러 줄 때까지 거기에 있어라. 헤로데가 아기를 찾아 없애 버리려 한다.” 그는 일어나 밤에 아기와 마리아를 데리고 이집트로 가서, 헤로데가 죽을 때까지 머물렀다. 이는 예언자를 통해, “내 아들을 이집트에서 불러내었다.”라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된 것이다’(마태 2,13-15 참조).

동방 박사들에게서 메시아의 탄생 이야기를 들은 여우같은 못된 헤로데 임금은 베들레헴과 그 인근에 있는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를 모조리 죽인다. 요셉과 마리아는 헤로데의 이 보복을 피해 아기 예수님과 이집트로 피난했다. 갓 출산한 마리아에게는 너무나 큰 시련과 고통의 길이었으리라. 그렇지만 주님께서는 이 어려운 고비마다 천사를 보내시어 성가정을 지켜 주셨다.

신체장애를 가진 딸이 있는 어느 가정 이야기다. 그 아이를 돌보는 일로 가족이 10년 넘게 매달렸단다. “딸 때문에 온 식구가 마음고생으로 많이 힘드시지요?” 어느 분의 이 위로에 그 어머니 대답이다. “그렇지 않습니다. 이 딸이 우리 가정의 보물입니다. 이가 없었다면, 우리 가정은 기도할 줄 몰랐을 겁니다. 그의 오빠와 동생도 자기 욕심만 챙겼겠죠. 딸애의 장애로 온 가족이 다함께 기도할 수 있었고 각자가 시간을 쪼개어 그에게 더 마음을 쓸 수 있었습니다.” 참 감동적인 이야기다. 그 가정에서는 마치 그 딸애를 예수님처럼 대한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우리는 성모님과 요셉 성인 그리고 아기 예수님의 가정을 성가정이라 한다. 얼마나 행복한 가정이었을지! 행복한 가정이었음은 틀림없었을 게다. 그러나 왜 행복한 가정이었는지는 별로 생각지 않는다. 그냥 행복했으리라 너무 쉽게 추측한다. ‘세 분은 싸우는 일 없이, 불평도 불만도 없이, 온통 웃음만이 가득했겠지!’ 막연히 이런 생각만 한다. 과연 그랬을까? 정말 세 분에게는 다툼도 불평도 없었을까? 그리고 정녕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에 성가정이 된 것일까?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성가정을 단순히 ‘고통 없는 가정’이라고 판단해서는 안 될게다. 성가정은 말썽 부리는 이가 없어야만 가능한 것이 결코 아니니까. 얼마만큼 ‘하느님 뜻’을 따르며 사는지에 달려 있으니까. 그러니 우리 가정에 힘든 시련이 있다면 다음에 나타날 그분 뜻을 기다리자. 이를 거치면서 성가정으로 바뀌어 간다니까. 성가정은 고통이나 시련이 없는 가정이 아니라, 시련과 고통을 이겨 낸 가정이다. 예수님과 마리아와 요셉의 성가정도 인간적 갈등과 고뇌가 있었을 게다. 다만 주님 뜻 안에서만 모든 것을 해결하셨기에 성가정을 이루신 것이다.

오늘은 성모님과 요셉 성인 그리고 아기 예수님께서 이루셨던 성가정을 묵상하는 성가정 축일이다. 세 분은 하느님 뜻을 충실히 따르며 사셨다. 그분들이라고 해서 인간적 고뇌와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닐 게다. 그렇지만 모든 것에 앞서 주님 뜻을 먼저 찾으셨다. 우리도 가정 안에서 주님 뜻이 첫자리에 오도록 해야 하겠다. 그러면 우리 가정도 성가정이 될 수 있으리라.

작성일:2019-12-29 07:25:44 183.104.33.1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