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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무관심 땜에 버려진 이들을 새기면서/연중 제26주일 다해

닉네임
늘벗
등록일
2019-09-29 04:06:49
조회수
757
첨부파일
 16.jpg (291216 Byte)

어떤 부자가 있었다. 그가 신앙생활을 잘하였는지, 다른 이들과 어느 정도는 원만하였는지, 그의 성격이 어떠했는지는 잘 알 수가 없다. 다만, 그는 자주색 옷과 고운 아마포 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았단다. 그리고 라자로라는 가난한 이가 있었다. 그의 몸은 종기투성이로 부자의 식탁아래 버려진 음식으로 배를 채웠고, 개들까지 와서 그의 종기를 핥곤 하였다.

라자로라는 이름은 ‘도움 받은 자’로 누가 뭐래도 인간 막장까지 간 거지중의 상거지였다. 그는 부잣집 대문 앞에 내팽겨 버려져진 채, 개보다 못한 비참한 처지로 연명하고 있었다. 말이 사 개보다 못하다는 거였지만, 실상은 그 집 주인의 무관심으로 대문 모퉁이에 버젓이 자리 잡았으리라. 자, 두 사람은 그렇게 살다 죽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죽음 뒤의 부자와 라자로의 처지가 완전히 바뀌었다. 각자 살아온 이승에서의 삶에 따라, 주님께서 배려하신 결과일 게다.

사후 그 모습이 거지 라자로와는 달리, 날마다 흥청거린 부자에게는 무척이나 억울할 게다. 생전에 별로 잘못한 것이 없는데, 이젠 저렇게 마실 물마저 걱정해야 할 처지이니까 말이다. 부자는 그저 죄짓지 않고 잘 살기만하면 된다며 온갖 좋은 것은 다 누렸다. 주님의 사랑과 진리는 물론이거니와, 버려진 이의 삶 또한 그분께서 주신 고귀한 생명임을 미처 깨닫지를 못했다.

흔히들 세상은 갈수록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더 커져간다고들 심히 개탄한다. 가난한 이들은 자꾸만 더 가난해지고, 부자들은 점점 더 부유해져 간다는 거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 세상의 이런 길고 길다는 삶이라는 게, 실은 정말 눈 깜짝할 잠깐이기에 그리 부러워하거나 크게 절망할 필요가 아예 없단다. 이는 이 세상 재물은 우리를 하늘 나라에서 멀어지게 하니 그렇게만 여기라는 거다. 하느님께서는 가난한 이의 이름만 부르시고 탐욕스런 부자는 외면하시니까.

이런 하느님의 애초에 품으셨던 말씀에 충실하면서,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하느님 나라에 받아 주시리라는 그 믿음만을 꼭 가지도록 하자. 라자로의 죽음 저쪽 삶은 천사마냥 복된 이의 대열에 들어 그 이름이 하늘 나라에 기록되어졌고, 부자는 오로지 고통의 나락에 떨어졌으니 말이다. 부자는 나쁜 짓 많이 저질렀고, 라자로는 착한 일만 하여서가 아니다. 부자는 이웃의 가난한 이들을 돌보지 않았다. 하느님은 가난한 이들을 그 누구도 외면하지 말랬다.

오늘을 사는 우리도 종말에는 반드시 심판받아야 함을 믿어야 할 게다. ‘이승의 이 신분이 저승에서도 보장되겠지.’라는 것은 대단히 큰 착각이다. 부자는 재산을 제 것 마냥 마음껏 사용하면서 대문 앞에 버려져 고통 받고 있는 거지 라자로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 부자라는 작자는 이웃과는 아예 담쌓은 삶을 살았다. 날마다 호화롭게 흥청거렸던 삶의 끝은 무엇일까?

어쩌면 고통스럽게 굶주린 거지중의 상거지인 라자로가 문 밖에 있었는데도, 그는 먹을 것을 주지 않았으니 스스로 사랑의 계명을 실천하는 이로 산 것이 아님을 드러낸 거다. 하느님께서는 크신 자비와 용서로 우리의 악행을 일단은 참아 주신다. 그렇다고 부자와 라자로의 죽음 저쪽 삶에서 위로와 고초가 뒤바뀐 것을 꼭 잊지를 말자.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그분께서 우리에게 잠시 맡긴 거다. 따라서 그것은 우리 마음대로가 아닌, 주님 뜻에 따라 쓰여야 할게다. 지금도 우리 ‘무관심’으로, 주위 곳곳에 버젓이 버려진 이들이 참 많다는 것을 깊게 되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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