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애영 교수 “여성 사제직, 교회개혁의 시급한 문제”

프란치스칸 영성 학술발표회서 가톨릭 여성 사제직 첫 공론화

2013-06-14     한수진 기자

한국 가톨릭교회에서 처음으로 ‘여성 사제직’을 논의하는 공적인 자리가 마련됐다.

지난 10일부터 12일까지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는 작은형제회 프란치스칸 사상 연구소가 주최한 제15차 프란치스칸 영성 학술발표회가 ‘21세기에 꽃피는 신학’을 주제로 열렸다. 이번 학술발표회의 여덟 번째 주제로, 둘째 날 발표된 ‘로마 가톨릭교회 개혁의 주제, 여성 사제직’은 어느 주제보다 참가자들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 주제 발표는 개신교 여성신학자 김애영 교수(한신대학교 신학과)가 맡았고, 최혜영 수녀(성심수녀회, 가톨릭대 종교학과 교수)가 논평을 맡았다.

▲ 김애영 교수 ⓒ한수진 기자
김애영 교수는 그리스도교의 리더십과 사제직에서 여성이 배제된 과정과 더불어 1970대부터 전개된 여성서품운동의 역사를 되짚으면서 “로마 가톨릭교회가 여성 사제직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해결할 것인가는 교회개혁의 중심 주제들 중 시급히 요청되는 문제”라고 강조했다. 여성 사제직을 둘러싼 신학적 논의들은 가톨릭교회의 가장 기본적인 문제에 속하며, 그리스도교 생활의 모든 차원과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건드리고 있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유다인도 그리스인도 없고, 종도 자유인도 없으며, 남자도 여자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입니다”(갈라 3,28)라는 성경 문구를 들어, “평등하고 포괄적인 예수 운동의 핵심은 복음이 땅끝까지 이르게 된 원동력”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는 다른 종교들과 마찬가지로 가부장적 세계에서 형성되었으며, 여성과 남성을 평등하게 대우하지 않았다. 김 교수는 “(교회가) 불평등 문제를 올바로 인식하지 않는다면 예수가 교회에 부여한 의무를 폐기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여성은 어떻게 교회 업무에서 배제되었나

이어 김 교수는 여러 신학자들의 연구를 토대로 그리스도교의 리더십과 사제직에서 여성이 배제된 과정을 설명했다. 신약학자 엘리자베스 피오렌자는 예수 운동과 원시 그리스도교에 지금의 가부장적 그리스도교와 다른 대안적 전통이 존재했다고 주장했다. 예수를 따랐던 여성들은 다른 제자들과 평등했고,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지도권에 여성이 포함됐다는 사실은 당시 가부장적인 유대 전통이나 헬라 문화권과 비교해 파격적인 모습이었다. 그러나 가부장제와 여성혐오의 태도를 가진 남성들이 교회 구조를 독점하면서 그리스도교 초기부터 여성은 교회에서 배제되기 시작한다.

또 다른 여성신학자 로즈마리 류터는 가부장적 교회 전통과 신학이 여성들의 성직을 엄격히 차단했으나, 제도 교회와 달리 “영으로 충만한 공동체”에서는 초대 그리스도교의 평등하고 포괄적인 전통이 면면히 이어져왔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이러한 공동체 운동조차도 제도로 정착될 때마다 다시 여성의 참여를 배재해왔다.

그리스도교에서 여성의 역할이 급격히 축소된 시점은 325년 니케아 공의회였다. 메리 말로운에 따르면, 그전까지 그리스도교에서 여성은 남성과 동등하게 ‘부제품’을 받고 직무를 수행할 수 있었다. 물론 여성 부제의 역할이 여성만을 위한 봉사에 한정되었고, 4세기에 들어 세례성사를 줄 수 없게 되었지만 사람들은 여성 부제를 성직자로 간주했다. 그러나 니케아 공의회가 “여성들이 더이상 주교로부터 어떠한 안수도 받아서는 안 되며, 성직자가 아닌 평신도라고 단언”한 뒤로 남성 직무자만이 교회 업무에 참여할 수 있었다.

829년 파리 시노드는 여성에게 전례용기 접촉금지령을 내리고 초를 켜거나 종을 울리는 일조차 금지하고 위령기도도 바칠 수 없게 했다. 9세기와 10세기를 거치면서 교회 개혁운동은 사제 생활의 제도적 기반을 다지는 방향에 초점이 맞춰졌고, 여성을 완전히 배제하는 경향을 보였다.

한스 큉은 그리스도교의 남성 지배권은 “신약성서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성직자 결혼 금지령이 없었다면 거의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한스 큉이 여성들에게 ‘이러한 사실을 결코 망각하지 말라’고 지적할 정도로 사제 독신법은 여성 사제직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고 말했다. 한스 큉은 사제 독신법이 성직자와 교권제도, 사제 계급이 ‘평신도’인 백성과 분리돼 완전히 그들 위에 군림하는 데 있어서 무엇보다 큰 위력을 발휘했다고 분석했다.

성직자의 결혼을 금지하기 위한 치열한 싸움은 교황 레오 9세가 시작해 교황 그레고리오 7세 때 가속화됐다. 1139년 제2차 라테라노 공의회가 모든 성직자에게 독신 생활을 강요하는 결정을 내리면서, 당시까지 결혼 생활을 유지하던 성직자의 아내는 첩으로 취급받고 자녀들은 노예로 교회 재산에 귀속됐다.

김 교수는 “(이런 과정을 거치며) 성직자와 평신도 사이에 좁힐 수 없는 거리가 생겼고, 특히 여성과의 분리는 교회 내 극심한 여성 혐오로 표출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교회에서 여성들은 흔히 사제들을 유혹하는 성적 존재로 오인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 제15차 프란치스칸 영성 학술발표회가 10일부터 3일간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렸다. ⓒ한수진 기자

1970년대 여성해방운동이 교회 내 여성서품운동 이끌어

그리스도교에서 여성 사제직 논의가 대두된 것은 1960년대 말 시작된 여성해방운동이 교회에 확산되면서부터다. 1970년대에 그리스도교 내의 대표적인 여성해방운동으로 여성서품 혹은 안수운동이 대대적으로 전개됐다. 이후 대부분의 개신교 교파에 속한 여성들이 안수를 받을 수 있게 되었고, 1992년 영국 성공회는 치열한 논쟁 후 이를 투표에 부쳐 여성 사제를 수용하는 결단을 내렸다. 그러나 몇몇 보수적인 개신교 교단과 가톨릭은 여성의 성직을 거부하고 있다.

김 교수는 미국의 여성서품운동을 중심으로 가톨릭 내 여성 사제 논의의 흐름을 설명했다. 1974년 미국여자수도자장상연합회(the Leadership Conference of Women Religious, LCWR) 주최로 여성 사제직에 관한 학문적 연구가 전개됐다. 이듬해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가톨릭 여성 서품 회의’(the Catholic Women's Ordination Conference)가 열리고, 이 모임은 ‘여성 서품 회의’(Women's Ordination Conference) 설립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교황청은 곧이어 1976년 <여성 교역 사제직 불허 선언>을 공표하면서 보수적인 입장을 분명히 했다. “여성은 본성상 그리스도를 대표할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공적 로마 가톨릭 가르침은 사제를 또 다른 그리스도로서 이해한다. 그리스도를 대표하는 사람은 누구라도 ‘남자였고, 남자로 남아 있는’ 그리스도의 상징으로 인식해야만 하며, 이에 따라 그리스도는 오직 남자들만을 그의 사도로 불렀다”고 단언했다. 이어 김 교수는 로즈마리 류터의 분석을 인용해 “(가톨릭교회 안에는) 사회가 여성의 지도적 위치를 배제해온 것처럼, 여성은 정신과 영혼이 남성에 비해 열등하다는 생물학적 · 신학적 사고가 그 저변에 흐른다”면서 가톨릭교회가 인종적 · 민족적 차이보다 성별의 차이를 더 깊이 있게 받아들인다고 지적했다.

교황청의 여성 사제직 불허 선언은 교회 내 여성해방운동을 더욱 급진적으로 이끌었다. 김 교수는 교황청의 선언 이후 “기존 질서 안에서 남성과 평등한 접근을 요구”하던 여성 사제 논의가 “교회의 사제직과 교역 구조의 급진적 수정을 요구하면서 교회의 위계질서 자체에 도전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앞서 김 교수가 언급한 여성 신학자 로즈마리 류터와 엘리자베스 피오렌자는 “여성들의 성직화가 아닌 하느님 백성으로서 교회의 탈성직화를 주장”했다. 김 교수는 “여성들이 안수(가톨릭에서는 ‘서품’)된 교역의 자리에 들어가고자 하는 것은 단순히 취업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사람을 삼위일체 하느님의 형상으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그 소명에 따라 이를 실천하는 교회의 물음”이라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김 교수는 1970년대 이후 서구에서 사제 지원자가 급격히 감소하고 있고, 부족한 사제를 대신해 여성 수도자와 평신도들이 사목 현장에서 많은 역할을 하고 있는 현실을 지적하면서, 2012년 8월 선종한 이탈리아 밀라노 대교구의 카를로 마리아 마르티니 추기경의 마지막 인터뷰를 인용했다. “교회는 200년 이상 시대에 뒤처지고 있습니다. 왜 우리 자신을 깨어 일으키지 않습니까? 두렵습니까?”

한국 가톨릭교회의 현실에선 시기상조

▲ 최혜영 수녀 ⓒ한수진 기자
한편, 논평을 맡은 최혜영 수녀는 “(한국 가톨릭교회에서) 여성 사제 서품에 대한 발언 자체를 조심하고 있고, 여성신학자들 역시 이 문제에 소극적인 태도를 갖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인정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르는 입장에서 마땅히 ‘여성 사제직’은 인정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최 수녀는 “모든 인간은 하느님 앞에 동등하며 어떠한 차별도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고, 또한 인류는 앞으로 그 방향으로 발전해 갈 것이라고 낙관한다”고 말했다. 이어 “비판적인 안목을 가진 그리스도교 신자라면 마땅히 그리스도교 역사 안에서 드러나는 많은 잘못과 오류들을 겸허히 인정하고 새로운 복음화가 제시하듯 예수 그리스도라는 원천으로 돌아가 끊임없이 쇄신하고자 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최 수녀는 한국 천주교회의 현실을 생각할 때 여성 사제 논의는 아직 이르다는 입장이다. “변화와 쇄신 마련에 있어 우선순위가 필요하고, 그 실행을 위해서는 구성원 모두의 공감과 의지, 인내와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서구와 마찬가지로 수도자와 사제, 신자가 감소하고, 평신도 신학자의 부족, 특히 교회에 관심을 갖는 젊은 여성이 줄어들고 있으며, 여성신학자의 수가 미미한 현재의 한국 교회 상황에서는 “미래 한국 가톨릭교회의 모습을 누가 어떻게 그려갈 것인지”에 관한 근원적인 질문에 답해야 한다고 최 수녀는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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