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호 신부] 나와 함께 먹고 마셔라

산위의 마을 취화당

2013-04-15     박기호

“제가 주님을 사랑한다는 것을 주님께서 알고 계십니다.” (요한 21,1-19)

그날, 혹시나! 만선의 꿈을 안고 출항했지만, 역시나! 빈 배로 돌아온 아침. 내일을 기약하며 그물을 손질하고 있던 때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따라오라 하시기에 즉시, 정말로 즉시 모든 것을 버리고 따라 나섰습니다.

함께 살아온 날들 안에서, 우리의 스승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의 왕국을 세우시고 통치자가 되실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희망의 시간들이 결국 일장춘몽으로 끝나버렸습니다.

만사가 허무하고 무상한 텅 빈 가슴이었지만, 그래도 산 사람은 산 사람대로 할 일이 있는 것이니, 버렸던 그물을 다시 챙겨 바다로 나가야 했습니다. 믿을 수 없는 무량세계가 바다지만, 배운 것이 그것뿐이니 현실을 인정하고 갈릴래아 어부의 삶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죽음 같은 무력감과 우울증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 때 누군가 소리쳤습니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을 차리면 살리라!” 누군가는 “저 분은 주님이십니다!”로 들었다고도 합니다. 처음 스승님을 만났던 바로 그 갈릴래아 호야부두 근처였습니다.

딱! 호~?

그분께서 혼몽 상태에 있던 우리들의 머리를 죽비로 갈기셨습니다. 순간 우리는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기억의 회상들이 일어났습니다. 그분께서 “저 쪽 깊은 곳에 그물을 던져보아라!” 하신 말씀을 다시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자 스승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그랬듯이 온전한 순종으로 시킨 대로 했고 그물이 터질 지경이었던 놀랍고 두려운 감동의 순간을 되찾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야말로 하느님 나라를 세우실 분, 그래서 평생을 따라야 할 분이라는 열정이 활화산처럼 타오르는 것이었습니다.

“와서 보라!” 하시기에 따라가 그분과 함께 묵었던 시간도 되찾았습니다. 함께 먹고 마시며 아옹다옹하던 형제들도 되찾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식사가 되고 말았던 의미심장했던 과월절 만찬의 순간을 되찾았고, 우리는 한솥밥 식구이며, 서로 사랑하고 돌보아야 할 제자들임을 다시 고백하였습니다. 그러자 그분의 현존이 우리의 텅 빈 가슴에 부활의 빛을 가득 채우셨습니다.

그분의 말씀이 있고 우리들의 순종이 있고 기억의 회상이 있는 곳에, 그분의 현존이 있고 하느님 나라의 꿈과 희망이 그물 터질 만큼 가득하다는 믿음을 되찾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분과 함께 먹고 마실 것입니다. 스승과 우리 형제들 모두는 한솥밥 식구라는 자의식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밥을 나누는 그때마다 그분이 우리와 함께 자리하십니다. “받아먹어라. 이는 내 몸이다!”

산위의 마을이 있다는 말을 들었던 순간의 설렘을 기억하고 회상합니다. 빈 배로 돌아온 어부처럼 쳐진 발걸음으로 귀가하던 날들에 발견한 공동체, 목마른 삶에 생수처럼 솟구친 공동체의 삶! 어찌 그 생각을 못했던가?

나를 흔들어 놓던 내적 충동을 잊지 못하고 한발 두발 내딛었던 날들은 알 수 없는 부르심에의 이끌림이었고 주님께 대한 순명이었습니다. 그렇게 한솥밥 식구가 되고 그분의 성체성혈을 돌려 마실 때 주님의 현존이 있었고 그분의 사랑이 우리 다락방을 가득 채우셨습니다.

“와서 아침을 들라!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복음을 들을 때마다 “예,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주님께서 알고 계십니다”라는 응답을 거듭하면서, 스승께 대한 제자의 충직함이 가득합니다. 형제, 가족들과 함께 노동하며 서로 사랑하고 순종하고, 배려할 때, 그분의 크신 자비가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사랑과 순명과 자비심의 삼덕을 제물로 봉헌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부활은 성사의 전례만이 아닌 현존이고 현실이 되었습니다.

어제 블랙초코베리와 블루베리를 심었는데, 밤새 비가 촉촉이 오누나! 더 이상 뭘 바랄까? 열 두 분 단기입촌 가족들 모두 사랑합니다! 몸이 아파 먼저 가신 장회경 마리아님, 건강 회복 위해 생미사 봉헌했습니다요. (2013. 4. 14)

박기호 신부 (다미아노, 예수살이공동체 산위의 마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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