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은 어떻게 여성 통해 구원경륜 펴 가실까?
천주교 여성운동 심포지엄 강우일 주교 축사 (전문)
12 사도 중에 여성은 없었다. 하지만 예수님과 아주 가까웠던 사람들은 여성들이었다. 남자 사도들은 예수님이 수난하실 때 다 사라졌지만, 여성들은 옆을 지켰다. 예수님 삶의 궤적 전체를 함께 하신 어머니 마리아가 계셨고, 예수님 돌아가신 후에도 무덤가를 떠나지 못하는 마리아 막달레나, 요안나,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가 있었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은 사도들보다 여성들에게 먼저 나타나셨다.
여성들은 부활하신 예수님과의 만남에 큰 기쁨을 느끼고 달려가서 사도들에게 부활의 소식을 전했지만, 사도들은 이를 여성들의 헛소리라고 웃어넘겼다. 엠마오로 낙향하던 제자들은 예수님으로부터 예언자들이 말한 것들을 믿는 데에 마음이 어찌 그리 굼뜨냐고 꾸지람을 들었다. 토마스는 예수님 상처에 손가락을 대보지 않고서는 믿을 수 없다고 버티다가 보지 않고 믿는 자는 복되다고 타박을 당했다.
그런데 여성들 안에는 그런 남자들의 완고함과 경직됨이 보이지 않는다. 여성들은 예수님 수난 때도 부활 때도 예수님 곁에 있었고 예수님과 그만큼 마음이 빨리 통했다. 왜 그랬을까? 여성들 특유의 유연함과 단순함과 겸손함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이 영혼의 유연함과 단순함과 겸손함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하느님께서 여자의 영혼을 남자의 영혼과 다르게 창조하셨기 때문일까? 하느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의도적으로 다르게 창조하시고, 그 다름이 한데 어우러지고 화합할 때 더욱 아름답게 빛을 발하도록 마련하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인간 측에서만 보면, 인류의 긴 역사 속에서 여성은 남성의 힘에 짓눌리고 억압당하고 차별당하는 체험이 오랜 세월 동안 축적되고 각인되는 과정에서 후천적으로 다듬어지고 깎이고 정제되어 오늘에 이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예수님이 부활의 첫 증인으로 여성들을 택하신 것은 결코 우연은 아닌 것 같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실 때 성탄의 기쁨을 전했던 첫 증인은 당시 사회의 가장 비천한 목자들이었다.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시어 새 생명을 입으시고 다시 오실 때 그 기쁨과 영광을 전하는 첫 증인으로 여성들이 선택된 것도 당시 사회의 가장 밑바닥 계층을 대표하는 자격 때문이 아니었을까? 유다인 사회에서 공식적으로 증인으로 채택되려면 남자여야 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일부러 여성들을 증인으로 보내신다. 인간적인 논리와 권위와 경력을 갖춘 남자 원로를 배제하시고 연약하고 힘없는 여인들을 파견하셨다. 인류 역사 속에서 여성들이 받은 억압과 차별과 폭력의 역사가 부활의 증인이 되기 위한 오랜 준비의 여정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떠오른다.
하느님께서 앞으로는 여성들을 통하여 어떤 구원의 경륜을 펼쳐나가실까 하는 기대와 바람을 갖게 된다.
강우일 주교 (베드로, 제주교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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