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조금 열린 창문, 조금씩만 더 열어가고 싶어요”
[인터뷰] 20주년 맞은 천주교여성공동체 김진희 · 최금자 공동대표
아무리 둘러봐도 교회 안에는 여자가 훨씬 많은 것 같은데, 왜 사목회에는 온통 남자뿐일까. 왜 본당 행사 설거지는 여자들만 하고, 성체분배는 남자들만 할까. 성서는 분명 “모든 이에게 차별이 없다”고 선언하는데 도무지 외면할 수 없는 이 차별은 대체 어떻게 하면 좋을까. 게다가 세상에는 왜 이렇게 폭력과 가난에 내몰리는 여성이 많을까. 교회는 이 여성들과 어떻게 손을 잡고 함께 울 수 있을까.
이 수많은 질문에 해답을 찾기 위해 1993년 4월 ‘새 세상을 여는 천주교 여성공동체’(공동대표 최금자 · 김진희, 이하 천여공)는 첫 발걸음을 내디뎠다. 그리고 2013년, 천여공은 스무 살이 됐다. 20년 전 던졌던 질문에 해답은 찾았을까? ‘평등한 교회, 평등한 세상’은 조금쯤 가까워졌을까? 20주년 기념행사를 앞두고 분주했던 서울 혜화동 천여공 사무실에서 최금자, 김진희 두 공동대표를 만났다.
김진희 대표는 “내가 스무 살 됐을 당시와 기분이 비슷하다”고 말했다.
“스무 살 때 독립했거든요. 성인이 되면서 내가 책임져야 할 몫이 늘어나더라고요. 천여공도 그런 느낌이에요. 자기 힘으로 잘 서야 하는 때죠.”
최금자 대표도 천여공이 자신의 길을 개척하기 위해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스스로를 재해석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자신을 직면하고 객관화하는 것이 ‘어른이 되는 길’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두 대표는 이번 ‘한국 천주교 여성운동 심포지엄’에 임하는 자세가 남다르다. 그들은 이번 심포지엄이 단순한 행사를 넘어서 가톨릭 여성운동과 천여공이 진지하게 어제와 오늘을 성찰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천여공은 2000년대 초반 이웃종교 여성들과 호주제 폐지를 위해 힘쓰고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와 함께 종군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해 활동하는 등 교회 밖 여성계와 연대했다. 한편, 교회 안에서는 다양한 소모임과 교육, 여성전례 및 여성사목에 관련한 연구를 지속적으로 이어왔다. 뿐만 아니라 부설기관으로 천주교성폭력상담소를 설립해 분리 독립시키고, 미리암 이주여성센터를 설립해 이주여성들을 위한 상담과 지원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렇게 교회 안팎의 여성들과 함께 걷기 위해 뜻을 모아 시작한 천여공이지만, 더 많은 교회 여성들과 소통하며 지평을 넓혀가기는 쉽지 않았다. 바로 ‘교회 밖’이라는 자리 때문이다.
이런 어려움을 자신의 한계로 받아들인 천여공은 ‘연대’가 답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독자적인 활동에 대한 숙제가 있어요. 그런 부분에서 여성전례개발, 여성의 눈으로 읽는 성서 공부 모임 같은 천여공의 몇몇 중요한 독자적 활동이 멈춘 것은 참 아쉬워요.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연대가 천여공이 갈 수 있는 방향이라고 봐요.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정대협, 한국여성단체연합 등과의 연대 뿐 아니라 교회 인준 단체들과도 더 활발히 손을 잡아야지요.” (최금자)
한편, 역사가 오래된 단체들 중 적지 않은 수가 그렇듯, 천여공도 ‘세대교체’를 고민해왔다. 회원들 대다수가 50~60대인데다가 20~30대 회원이 거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최 대표는 “기존의 패러다임으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개인적으로는 인천에서 어린이 카페를 운영하면서 처음엔 아이들의 직설적 화법에 충격받았어요. 걸러지지 않은 언어에 처음엔 ‘멘붕’ 상태가 되더라고요. 그런데 계속 같이 있고, 노력하다 보니 모든 언어를 다 이해할 순 없지만 대화가 되기 시작하더라고요. 물론 50대 아줌마가 가진 고정관념을 깨야 했어요. 천여공이 30주년을, 50주년을 맞이할 수 있을까 없을까는 그런 사고의 전환이 가능한가에 달려있다고 봐요.”
가부장제라는, 교회라는 단단한 바위에 미세한 틈을 만들기 위해 달려온 천여공은 지금 숨을 고르고 있다. 변하지 않은 견고함에 조금 힘이 빠지고 지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한계 안에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고유한 활동을 놓치지 않으려 애쓰고 있었다. 최금자 대표는 “천천히 가고 싶다”고 했다.
“어쩌면 인간이 사는 세상에서 불평등은 끝나지 않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2000년간 이어져 온 그리스도교잖아요. 어떤 어둠 속에서도 희망을 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긴 호흡으로 아주 조금 열린 창문으로 숨을 쉬고, 조금씩 더 열어가고 싶어요.”
김진희 대표는 “세상이 잘 안 변하니까 우리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권력은 속성상 알아서 놓지 않잖아요.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남성들이 가진 권력은 알아서 놓을 수 없어요. 그걸 나누게끔 하는 게 우리 역할이 아닐까 해요.”
천여공의 두 대표는 그 작은 창문의 틈이 닫히지 않도록 유지하고 싶다고 했다. 두 사람은 자신들이 역사 속 이야기의 주인공이 아니어도 좋다고 했다. 다음 세대가 한 걸음이라도 더 나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행간에서 살아 숨 쉬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것이다.
“가다가 막히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서 가고… 그러면 되지 않을까요? 빛은 어둠과 함께 하니까요. 새벽을 기다리는 파수꾼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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