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계획한다는 것
[신학 오디세이아]
이번 주말에 아주 심각한 모임에 참석했다. 내가 일하는 대학의 향후 5년을 준비하는 모임이었다. 말하자면, 앞으로의 5년을 어떻게 하면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을지 작전을 짜는 회의다. 미국대학에서 일하면서 제일 싫은 건 정말 많은 회의에 참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수업과 학생들과의 만남 외에도 커미티(committee)가 있고, 그 커미티 회의를 통해 학교의 방향을 정해간다. 그리고 대부분의 회의에서는 지나간 일을 평가하기보다는 미래를 계획한다. 미국은 미래 지향적인 나라이고, 항상 앞서서 준비를 한다. 좋고 나쁘고를 떠나 일종의 생활 방식이다. 6개월 전에 무언가를 준비하는 것은 기본이고, 학교는 2014년 수업 시간표도 벌써 다 잡혀있다. 오늘보다는 내일에 마음이 가 있다.
한국에서는 친구들과 마음이 맞으면, 바로 어디론가 떠나기도 했었다. 훌쩍 떠나고 싶은 날, 그냥 무작정 터미널에 나가 차를 타면 보헤미안이 된 듯 한 느낌도 나고 왠지 스스로가 인생을 사색하는 인간처럼 느껴져 기분이 그럴 듯 해지곤 했다. 그런 한국식 정서에서 보면, 미국 생활은 너무 판에 박혀있고, 계획대로만 움직이는 건조한 생활이다.
계획적이고 잘 정돈된 미국 생활, 가끔은 '무작정'이 그립기도
미국에서 중산층의 생활은 사실 지루하리만큼 잘 정돈되어있다. 토요일이면 대부분의 사람은 밖에 나와 일주일치의 음식을 사거나 산책을 하고, 저녁에는 외식을 한다. 일요일이면 아침 미사를 드리고 집에 와 청소와 빨래를 한다. 모든 것을 앞서 계획 하다 보니, ‘그냥’ 친구 집을 방문한다든가, ‘무턱대고’ 집 앞에서 기다린다든가 하는 행동은 단순히 비효율적인 것을 넘어, 무례하고 몰상식한 일이 되기 싶다. 아주 친밀한 사이가 아니라면 이메일로 전화하기 좋은 시간을 묻고 그 시간에 통화한다. 사실 회의를 전화로 하는 경우도 많고 그런 회의가 효율적인 면도 있다. 하지만 그런 깍쟁이 같은 회의보다는 무언가 엉성하고 허술한, 그래서 좀 ‘인간적인’ 회의에서 좋은 아이디어가 많이 나오기도 한다.
그러니까 내가 참여한 회의는 미래 전략을 짜는 이른바 ‘잘 준비된’ 회의였다. 이런 회의에는 늘 숙제가 있기 마련이다. 대학의 현주소에 관한 연구 논문들을 읽어가야 하고, 공동의 지평에서 그룹으로 사고를 발전시켜간다. 학교의 미래를 고민하는 이런 ‘아주 심각한’ 모임에 과연 누가 올까? 소득도 별로 없고, 힘만 드는 이 회의에 교수들은 많이 참석하지 않았다. 그런데 우리 학교는 역시 참 좋은 학교라고 믿을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직원과 졸업생, 그리고 재학생이 많이 참석했던 것이다. 그 회의에서 학생들은 학생들대로 학교의 미래는 이래야 한다고 제안하고, 졸업생들은 취업을 준비하는 방향으로 교과내용이 변화되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나누고, 직원들은 좀 더 효율적인 구조 개편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나에게 나름 놀라운 수확은 모든 이가 “학교는 더 이상 백인중심의 공간이 될 수 없다”고 한 목소리를 낸 것이다.
캘리포니아는 가장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사는 지역이다. 그리고 우리 학교는 미국에서 두 번째로 다양한 인종들이 모인 곳이다. 흑인과 히스패닉계 학생들이 백인보다 많고 하와이 학생들이 아주 많다. 우리는 아주 자연스럽게 교과내용과 학습방식, 그리고 평가가 모두 백인문화를 바탕으로 이루어졌다는데 의견을 모았다. 어찌 보면 당연한 발견이며 지적이지만, 백인 중심으로 이루어진 대학 교육제도의 기본을 공공연히 비판하는 그 자리에서 나는 짜릿한 감동을 느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이 백인 방식의 글쓰기를 익히지 못해서 사회에 나가 성공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됐다. 소수자가 힘을 발휘하려면 백인 중심의 글쓰기나 담론을 흠 없이 해내고 그 위에 자신의 악센트나 특유의 글쓰기를 해야 한다. 그러니 두 배의 노력이 필요하다.
미래에 대한 계획이란, 풀어진 마음을 다시 조율하는 것
학교의 미래에 대한 여러 가지를 계획하고 돌아오면서 ‘미래를 준비한다는 것은 무엇일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미래를 위해 다양한 정책 방향을 정하기도 했지만 결국 이야기의 많은 부분은 현재를 잘 살피고 분석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문화적 흐름, 사람들의 선호도, 공부하는 방식 등 현재의 동향을 살피고, 지금 경험하는 구조적인 문제들을 꺼내 놓았다. 그리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 데 가장 필요한 일들을 하나하나 나열하고, 중요한 순위를 매겼다.
물론 미국인들이 철학보다는 효율성을 우선으로 놓는 문제접근 방식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이 모임에서 진행한 방식은 개인적으로 우리 삶을 준비하는 방식으로도 손색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령 내 인생의 향후 5년을 준비한다면 어떻게 될까? 우선 삶에서 가장 만족스러운 것들을 뽑아 볼 수 있겠다. 나는 체력적으로는 좀 힘들지만,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영성에 관한 연구과 영성지도를 하는 일이 만족스럽다. 다음으로 지금 내 삶에서 가장 실망스러운 부분을 뽑아 본다. 수도회는 점점 노령화 되어가고, 나는 계속 수녀님들이 병들거나 돌아가시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수도회를 위해 내놓아야 하는 시간은 점점 늘어날 것이다.
만약 내가 30대 초반에 인생 5년 설계를 한다면 어떨까?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위해 뛰어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또 내가 그렇게 하지 못하는 장애는 무엇인지, 삶에서 30 중반이란 시점에 일반적으로 무슨 일들이 도전으로 오는지를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그런 후에는 결국 내 삶의 우선순위를 정해야만 할 것이다.
나는 우선 강의 청탁을 거절하기로 했다. 우리 수도회에 나를 내어줄 시간을 위해서다. 내가 외국인으로 살면서 어려웠을 때 기댈 수 있는 품을 내어주셨던, 이제는 지치고 병든 수녀님들에게 가능한 많은 시간을 내어 드리고 싶다. 지난 일요일에는 본원에서 회의 하는 중 쉬는 시간에 마당에 핀 꽃을 꺾어다 요양원 수녀님들의 방에 살짝 꽂아 놓았다. 뭐 위대한 일을 할 주제도 못되지만 크고 멋진 것 보다는 고마웠던 분들에게 정다운 인사를 할 수 있는 한 많이 건네고 싶다. 돌아가시고 나면 하고 싶어도 못할 테니까.
그리고 공부는 열심히 해야 할 것 같다. 우리 학교 학생들에게 자존감을 주기위해서 말이다. 자신의 선생님이 열심히 공부해서 새로운 논문들을 부지런히 내고, 그 논문을 함께 공부하면서 내 학생들이 이 대학을 자랑스러워 하길 바란다. 향후 5년 미래 전략으로 이 두 가지를 정하고 나니, 마음이 따스해진다.
미래를 계획한다는 것은, 헝클어진 마음을 바로 정리하고 해이해진 마음을 조율해 팽팽하게 해서 사랑하는 마음, 서로 위하는 마음이 개울물처럼 흐르게 하는 일인 듯하다. 사실 누가 미래를 알겠는가? 우리는 내일 일조차 모르고 살아가지 않는가? 그러니 미래를 놓고 작전을 짜는 것은 하느님 앞에 단정하게 앉아 내가 누구이며, 지금 이 순간 내가 보듬고 안아야 할 삶이 어느 것인가를 확인해 보는 작업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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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은 수녀 (소피아, 홀리 네임즈 수녀회)
1990년대 후반부터 미국에서 연구하며, 이방인이자 경계인으로 살아가는 자기 정체성에 대한 물음을 신학적으로 해석하고자 시도했고, 지구화된 세상에서의 '이주' 문제, 동양 종교의 몸 수행에 관한 책을 써 왔다. 현재는 캘리포니아 소재 홀리 네임즈 대학의 영성학 교수이며, '여성의 원'이라는 피정도 지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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