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죽었다
[산 위의 마을 취화당]
인간은 결국 진리와 절대선과 하느님의 정의에 다가갈 수 없는 것인가? 지상의 삶에서 하느님 앞에 나갈 자격을 얻을 수 없다는 실존적 회의 앞에 비참했던 것입니다. 이런 회의는 도덕주의자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지요.
마르틴 루터는 아우구스티노 수도회에서 누구보다 훌륭한 수도사제였습니다. 자신의 삶을 성찰할 때 아무리 열심히 산다고 해도 정욕의 괴롭힘과 형제들에 대한 미움과 질투로 살고 있으니, 구원받을 수 없다는 생각 앞에 괴로워했습니다. 마르틴 루터는 단식기도 중에 로마서 3장의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명제를 발견하고 큰 깨달음에 이르고 이것이 종교개혁의 기초 영성이 되었습니다.
톨스토이는 복음서를 다시 읽기 시작하면서 교회의 교리와 제도가 예수님에게서 너무 멀리 떨어져 나왔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톨스토이의 육화신학은 하느님께서 아들을 보내신 이유가 하느님의 뜻이 인간의 삶 안에서 실현하기 위해서라는 것이고 따라서 예수님의 가르침과 인격에 합일되는 삶만이 하느님께 나갈 수 있다는 것이 골자입니다.
그는 4복음서를 통합하여 ‘스토리 바이블‘을 정리하고, 교회의 교리나 공의회나 성직자의 설교보다도 오직 예수의 가르침에 충실하여 초대교회 삶으로 돌아가자!’ 고 주장합니다. 그는 실제로 자신의 재산을 내어놓았고 후학들은 폴랴나에 공동체를 세웠습니다.
‘교회는 죽었다!’고 질타하던 그는 유명한 ‘부활’ 작품을 발표한 이후 정교회로부터 파문을 당하게 됩니다. 그 이유로 동서양 교회는 톨스토이의 신학을 폐기시키고 단지 문학인(문호)으로 폄훼하였습니다. 그렇더라도 톨스토이는 당대의 가장 위대한 신학자였고 신앙인이었고 예수님의 참제자였음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톨스토이를 단지 베스트 셀러 작가로 보거나 문명비평가 수준으로 보거나 심지어 종교적 이단으로 본다면 실수하는 것입니다. 톨스토이는 19세기 예수의 참제자입니다.
저는 우리가 인간으로서 구원을 받는데 있어 신성에 이르는 것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그렇지만 ‘인간이셨던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에 담긴 인간성, 품성, 정신, 가르침을 닮아 사는 것은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인간됨에 먼저 합일됨을 목표로 살아간다면 마침내 신성에 이르게 될 것이라는 믿음을 예수살이공동체 영성기반으로 제시했었습니다.
“아버지께서 완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라!”
“아버지께서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우리 신앙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수행의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인격과 품성으로 살고 가르침에 전적인 실행력으로 살고, 예수님의 마음으로 살고 예수님의 눈으로 보고 정신으로 판단하는 삶이어야 합니다. 그것이 하느님께 합일되는 지상의 길입니다.
박근혜를 찍은 사람들이 오늘만이라도 행복하기를...
박기호 신부(예수살이 공동체 산위의 마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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