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번의 초대, 우정의 성사 하느님의 빵
[신학 오디세이아]
나보고 누가 가톨릭 신앙의 가장 핵심이 무어냐고 묻는다면, 나는 성찬이라고 말할 것이다. 영성수업 시간에 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해서 가르치는 부분이 이 성찬이다. 성찬이란 무엇인가? 결국 먹는 행위이다. 우리가 누군가와 가까워지고자 할 때, 하는 말은, “우리 저녁이나 함께 하지요?”이다. 함께 식사를 한다는 것은, 친밀한 관계로 들어간다는 의미이고, 운명을 나눈다는 뜻이다.
성찬의 의미를 설명하는 가장 좋은 우리말이 아마 ‘식구’일 것이다. 식구를 한자로 풀면, 함께 먹는 입이다. 우리가 한 식구라고 할 때는, 꼭 혈연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함께 늘 식사를 하는 사람, 즉 동고동락을 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미사에서 함께 성찬을 나누는 사람들은 한 식구가 되는 것이다.
한번은 수업 시간에 <바베트의 만찬>이란 영화를 보여주며, 성찬의 소중함에 대해 이야기 했다. 즉, 먹는 행위를 통해, 서로 갈라지고, 메말라가던 관계를 회복하고, 마시는 행위를 통해 아름답던 시간들을 기억하는 행위의 소중함에 관해 설명했다. 수업 후 한 학생이 복도에서, “당신은 정말 먹는 걸 좋아해, 그치요?”라고 했다. 결국 성찬의 의미가 먹을 것을 밝히는 나의 개인적 취미로 전달된 점에 대해 웃음이 나왔지만, “그래, 그런데 함께 먹는 건 정말 중요한 거야. 잊지마”하고 말았다.
초등학교때 첫영성체하고, 성체를 모시는 내가 신기해, 꼬박꼬박 매일 미사를 나갔었다. 아침 미사 중에 햇살이 장궤틀 위로 놓여지고, 성당 벽에 비치는 무릎을 꿇은 내 그림자가 좋아 그렇게 매일 미사를 다녔다. “하늘의 별수가 얼마인지 아는가, 그만큼 무수히 성체를 찬송하세.” 나는 이 말이 그렇게 깊은 뜻을 담고 있을 지 상상도 못한 채, 이 성가가 참 좋았었다. 우리 집은 삼양동 이었는데, 방학이면 친구 혜경이랑 명동까지 걸어가서 명동성당에서 미사를 드렸다. 배가 고플 때, 성체를 영하면 왠지 배부르고 든든한 느낌. 그건 해본 사람만이 안다!
하나가 되는 자리, 성찬의 식탁
대학 다닐 때도, 직장 다닐 때도, 나는 평일 미사를 좋아했다. 평일미사에서 나를 보고 전혀 평일미사 할 것 같이 생기지 않았는데 의외라며 놀라는 사람들도 많았다. 하지만, 나는 그 성찬의 조촐하고, 따스한 자리가 좋았고, 지금도 좋다. 성찬은 기억의 축제다. 예수님은 이 빵을 먹을 때 마다 “나를 기억하라”고 하셨다. 영어로는 ‘remember me’이다. ‘Re-member’란 내 몸과 마음, 그리고 관계에 있어서 떨어져 나간 부분들을 기억하고, 모아 들여 다시 ‘member’가 되게 하란 이야기다. 잃어버린 기억들, 만남들도 성찬의 식탁에서는 다시 기억되고, 그것이 현재가 되면서, 내 맘 속에서 다시 새로운 멤버쉽을 발휘한다. 그래서 성찬의 자리는 늘 현재 진행형이다.
청원자였던 어느 날, 수녀원에서 커다란 무쇠 솥에 스파게티 소스를 만들며 하루 종일 젖느라고 성체조배를 못했다. 주어진 기도를 못했다고 걱정을 하는 나를 보며, 함께 일을 하던 자매가 우리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면 그게 성체조배가 아니냐며 웃었다. 정말, 그 자매의 하얀 얼굴이 내겐 성체로 보였다. 그 후부터 난 더욱 성체 조배 보다는 성찬이란 행위를 좋아하게 된 것 같다. 성찬은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예수, 그분을 만나는 행위이고, 빵을 떼는 행위는 우리가 지닌 작은 사랑들을 나누는 행위이기에 말이다. 성찬은 함께 나누는 공동체의 행위이기에 말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였던가? 미사가 너무 남성중심이란 생각이 들면서, 미사에서 사용되는 언어에, 혹은 그 전례의 자리에 여성이 소외되어있다는 느낌이 들면서 서서히 매일 미사의 성찬의 자리도 내 마음에서 멀어져 갔다. 수도공동체에서 나누는 성찬례는 가슴이 저미도록 좋았지만, 그저 어느 성당이고 들어가 성체를 모시면 마냥 든든하고 행복하지는 그 옛날로는 돌아가지 못할 거라는 마음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에게 여전히 미사의 아름다움과 그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씁쓸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올해 9월 새 학기를 처음 시작하던 날, 나는 학교 성당에 가서 예수님께 이번 학기는 남성 중심적인 구조에도 불구하고, 지루한 강론에도 불구하고 꼭 평일미사를 다시 시작하겠노라고 말씀 드렸다. 수업을 마치고 뛰어가서 저녁미사를 기다리는 데, 미사시간이 지나도 미사를 시작하지 않았다. 알아보니, 이번 학기부터 매일 미사를 없애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미사에 나오는 사람도 별로 없으므로, 차라리 그 예산으로 학생들을 위한 사목적인 용도에 사용하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교목과 이야기를 하는데, 그이는 ‘성찬’이란 (미사라는 행위보다는) 학생들의 필요에 응답하는 봉사의 행위가 아니냐고 했다. 나는 “당신의 신학이 나쁘지는 않지만, 나는 충분히 동의할 수 없으며, 동의하지 않는다 해도, 학생들을 사랑하는 당신의 마음만은 응원한다”라고 이야기 했다. 그런데 자꾸 눈물이 나왔다. 예수님의 몸이 천대 받는 다는 느낌이 들어 서글퍼졌다. 나는 그이에게 이야기 했다. 미사의 질을 미사 참여하는 사람숫자로 계산하는 논리가 서글프고, 예산 문제로 미사를 드리지 못한다는 것은 더욱 서글프다고. 이건 신학의 문제가 아니라 신앙감의 문제인 것 같다고…. 성찬의 자리에서, 나는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을 기억하고, 힘들게 사는 사람들을 기억한다고… 그리고 나는 이 캠퍼스에서 수십 년 지켜온 거룩한 시간과 공간을 지켜가고 싶다고… 미사가 안 된다면 그냥 침묵 속에서 혹은 말씀의 전례를 통해서, 미사시간에 나오는 적은 숫자의 사람들과 그렇게 계속할 거라고….
수녀님들의 숨결이 배어있는 우리 학교. 많은 수녀님들이 이 대학에 평생을 바쳤다. 가톨릭 신앙을 주장함 없이, 사랑함으로써 신앙을 가르치고자 했다. 그런데, 성소가 줄어드는 현재 상황(나는 아마 우리학교의 마지막 교수수녀가 될 것이다)에서 과연 가톨릭 정체성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 하는 것이 도전이란 생각이 들었다. 케노시스. 자기를 비우는 예수그리스도의 육화를 일컫는 말이며, 우리 수녀님들의 이상을 담은 말이다. 우리가 가진 것을 다 내어 주고 나를 잃어버리면, 그때 진정한 가톨릭 정신이 살아날까? 혹은 그것이 가톨릭 교육일까? 처음으로 ‘가톨릭의 전통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또 동시에 다음 세대에 전해 주어야 하는가’하는 진지한 의문이 내 마음 안에 생겼다. 이런 고민을 하는 걸 보니 내가 나이가 들었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매일 미사를 지키고 싶다는 어떤 결연한 마음이 생기는 것을 느꼈다.
미사 드리는데 진보, 보수가 어디 있어!
어떻게 해야 하나 궁리를 하다가, 내게 성찬은 우정의 성사이기에, 우선 친구 신부님들께 도움을 청했다. 우리학교 영성대학원 소피아 센터의 짐 신부님이 월요일, 친구 과미 신부님이 수요일, 우리 학교 동네 본당 신부님이 목요일 그렇게 미사를 해 주시기로 했다. 물론 감사헌금이나 사례비는 없다. 신부님들도, 함께 미사를 지낼 공동체만 있다면, 당연히 와서 미사를 드리겠다고 했다. 나도 미사 때마다 개인적으로 학생들을 초대하기 시작했다. 이제 내게 매일미사는 그저 당연히 주어지는 전례가기 보다는 내가 책임지고 가꾸어 가야하는 공동체가 되었다. 미사 준비하러 뛰어가는 나를 보며, 우리학교 종교학과 교수가, “너 진보적인 신학자 아니었니?”하고 묻는다. “아마 아닌가 봐”하고 응수했다. 그리고 나는 속으로 외쳤다, “미사 드리는데 진보, 보수가 어디 있어!”
수업이 5시에 끝나는 날은 성당으로 거의 날아가듯이 달려 미사를 준비한다. 그러나 아주 정성스런 맘으로. 미사에 모이는 사람들이 그저 고맙고, 어쩌다 학생들이 오면, 나는 신이 난다. 그런데, 그렇게 미사를 봉헌하면서, 아주 극도로 보수적인 사람들과, 진보적인 사람들이 한 자리에 자연스럽게 앉아, 친교를 누리는 아주 신기한 현상을 발견했으며, 그 안에서 공동체가 가지는 연대감 같은 것도 감지했다. 그리스도 안에 “노예도, 자유인도, 남자도 여자도, 유대인도, 이방인도 없다”는 사도 바오로의 말씀에 ,“보수도 진보도 없다”는 한 가지를 덧 부치고 싶다.
본당 수녀 시절, 그때의 맘으로 돌아가, 미사를 차리고, 미사 후 얼른 성작수건을 빨아 놓고 성당을 나서면서, 결국 이 우정의 성사, 성찬의 축제에로 내가 다시 초대되었을 뿐이었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이번 학기에 예수님께 올린 기도의 응답으로, 이 성찬이 주는 조촐한 기쁨이 다시 내 영혼의 구성원, 멤버(re-member)가 되었음을 깨달았다. 마지막으로, 이 우정의 성사가 내가 스물일곱 살 되던 해, 젊은이 성찬제를 통해 나를 수도생활로 초대했음과 그때 나를 사로잡았던 고 김기창 화백의 문구, “예수는 담이 없으셨네”도 감사한 마음으로 새롭게 다시 기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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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은 수녀 (소피아, 홀리 네임즈 수녀회)
1990년대 후반부터 미국에서 연구하며, 이방인이자 경계인으로 살아가는 자기 정체성에 대한 물음을 신학적으로 해석하고자 시도했고, 지구화된 세상에서의 '이주' 문제, 동양 종교의 몸 수행에 관한 책을 써 왔다. 현재는 캘리포니아 소재 홀리 네임즈 대학의 영성학 교수이며, '여성의 원'이라는 피정도 지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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