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주민들, "제발 우리를 도와주십시오"

밀양 송전탑 건설 지역 주민들, 국회에서 증언대회 열어
국회의원들에게 생생한 현실 알리고 "제발 도와달라" 호소...
주민들 "우리는 보상을 바라지 않는다. 살던대로 살기위해 죽음 각오하고 싸울 것"

2012-07-23     정현진 기자

"정부가 국민들에게 이러면 되겠습니까? 의원님들, 송전탑 건설 사업 멈추게 할 수 있겠습니까?"
"이제 더 이상 믿을 사람이 없습니다. 믿어도 되겠습니까?"

7월 23일 오전 10시 국회도서관 지하 소회의실에서 이치우 열사 분신대책위원회, 민주통합당 초선의원 모임인 '초생달'('초선의원 민생현장을 달려가다'의 약칭), 통합진보당 김제남 의원실이 공동 주최하는 '밀양 765kv 송전탑 피해자 국회증언대회'가 열렸다.

▲ 밀양 주민들이 지금까지의 피해상황과 송전탑 건설의 왜곡된 사실을 증언하고 있다. 이 자리에는 이치우 열사의 동생 이상우 씨(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나와 "국회의원들에게 속시원한 소리를 듣고 싶다"며 국민을 우롱하고, 외면하는 정부의 정책을 올바로 잡아달라고 요청했다. ⓒ정현진 기자

765㎸ 고압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며, 공사를 막아내고 있는 경남 밀양 상동면, 부북면, 산외면, 단장면, 그리고 경북 청도군 주민들은 이 자리에서 송전탑 건설 반대 활동 과정과 그에 따른 피해 상황, 정부와 한전 측의 인권 유린 등을 증언해 정치권에 사실을 전하고, 기자회견을 통해 결의문을 발표했다.

진행을 맡은 김준한 신부(부산교구)는 증언대회를 시작하며 "이 긴 7년의 싸움은 결코 일부의 지역 이기주의가 아니라 이 나라 정책 전반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어떻게 이 나라가 국민들에게 이런 고통을 줍니까? 아픈 몸을 이끌고 매일 산을 오르며 공사를 막았습니다. 우리는 아무런 욕심이 없습니다. 그저 짓던 농사 그대로 지으며 살다가 죽게 해 주십시오."

"한전 직원들과 시공사 직원들은 우리 주민들을 개 취급하며 조롱합니다. 손자뻘 되는 그들은, 우리가 나무 베는 것을 막으려고 이리저리 쫒아 다니고, 가파른 산길에서 기어다니는 것을 보면서 '오늘은 할머니들 열바퀴 돌리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너무나 힘이 듭니다."

"다 죽게 됐던 제가 이 마을(부북면 평밭마을)에 와서 다시 살게 됐습니다. 그 푸른 녹색으로 꽉 찬 아름다운 화악산에 송전탑이 웬 말입니까. 우리집 앞까지 들어와, 강제로 재산을 강탈하다니……. 정부는 국민들, 서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옳은 것 아닙니까? 매일 휘발유가 담긴 병을 들고 산에 오릅니다. 우리는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는 거에요. 우리가 죽어서라도 세상에 억울함을 알릴 수 있다면, 남은 여생 그나마 보람이라고 생각합니다."

▲ 증언을 듣고 있던 한 주민이 눈시울을 붉히고 있다. ⓒ정현진 기자

주민들은 하나같이 눈물을 흘리며 그간의 고통과 억울함을 호소했다. 주민들은 송전탑 건설이 지역 주민들의 의사를 반영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반대 의견을 표명하고 있음에도 강제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정당한 보상을 받더라도, 수십 년간 살아온 삶터와 일터를 잃는 '특별한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 주민들의 입장이지만, 공익을 위해 송전탑이 반드시 필요하다면 희생을 감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밝혀진 바에 의하면, 송전탑 건설의 필요성이란 모두 왜곡된 사실이며 명분을 잃어버린 사업"이라고 밝혔다.

▲ 참가자들이 침통한 표정으로 주민들의 증언을 듣고 있다. ⓒ정현진 기자

이날 증언대회를 공동 주최한 민주통합당 '초생달' 의원들은 지난 5월 23일 밀양 송전탑 건설 현장을 방문해 주민들의 목소리를 듣게 됐으며, 6월 13일에는 한국전력공사 측에 "밀양 송전탑 공사와 관련해 주민들에 대한 한국전력의 폭력적 대응과 인권침해가 또 다시 발생할 경우 좌시하지 않을 것이며, 할 수 있는 모든 정치적 대응을 하겠다"고 경고한 바 있다.

'초생달' 소속 민주통합당 김기식 의원은 "밀양 송전탑 문제를 바라보는 원칙은, 이것이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 문제라는 것이며, 더이상 강정 해군기지, 고리 원자력발전소 등 주민의 의사에 반해 국책사업이 진행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견해를 밝히면서 "열 명, 백 명의 편익보다 한 사람의 생존권이, 몇 백억의 이익보다 사람의 생명과 생존권이 더 중요하다는 철학의 변화을 위해 힘쓸 것"이라고 전했다.

▲ 밀양 주민들과 함께 증언대에 선 경북 청도군 삼평1리 주민. 청도군 삼평1리는 현재, 청도군 내 15개 송전탑 피해 마을 중 유일하게 남아 반대 투쟁을 하고 있으며, 이웃 · 가족간 불화 등 고통을 겪고 있다. 삼평1리 주민은 증언에서 "청도에서도 송전탑 투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서 오게 됐다. 2007년 쌍둥이를 데리고 귀농해 행복하게 농사를 짓고 살던 중, 송전탑 문제를 알게 됐다"면서 "송전탑 건설에 대해 알아갈수록 모든 것이 거짓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20명 남짓한 마을 어르신들이 매일 40~50명의 시공사 직원, 용역과 싸우며 온갖 욕설과 폭행을 견디고 있다"고 밝혔다. ⓒ정현진 기자

또 2009년부터 밀양 송전탑 건설 문제에 힘써 온 민주통합당 조경태 의원은 "밀양 송전탑 건설의 시작은 핵발전소"임을 분명히 하면서 "정부가 고리 1호기를 폐쇄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자금이 없기 때문이다. 곧 고준위 핵폐기물에 대한 사회적 문제 제기가 엄청나게 번질 텐데, 정부는 이 상황에 대해 국민들에게 어떤 것도 알리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핵발전소를 더 이상 짓지 않는 것이 순리다. 우리는 10년 이내에 어찌될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머리에 이고 사는 셈이다. 지금부터 시작인 싸움이다. 밀양 송전탑 싸움은 765㎸ 송전탑만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인류를 지키는 고귀한 싸움"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증언대회 후 자리를 국회 정론관으로 옮긴 주민들은 '밀양 주민들의 호소문'을 발표하고, 정부에 대해서는 공사 중단과 함께 송전탑 건설 백지화, 대안 노선 검토, 기존 송전선로 사용, 초전도체 지중화 밀양 시범구간 설정 등 대안에 대해 검토해줄 것을 요청했다. 또 대선주자들과 국회의원들에게는 전원개발촉진법 개정, 신고리 핵발전소 5·6호기 증설계획 취소 등을 요청하고 주민들과 대화에 임할 것을 호소했다.

▲ 정부와 국민들에게 전하는 밀양 주민들의 호소 ⓒ정현진 기자

밀양 송전탑 경과지 주민들의 호소

존경하는 대선주자님들, 국회의원님들, 그리고 양심적인 시민들에게 밀양 송전탑 주민들이 드립니다.

제발 살려주십시오!

저희들은 밀양 땅에서 농사를 짓는 농민입니다. 국가에서 시키는 대로 세금내고 열심히 흙 파서 먹고 살면서 자식 키우며 살아온 사람들입니다.

저희들은 공사를 방해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70대 80대 노인들이 대부분인 저희 주민들이 무엇을 바라기에 젊은 인부들과 매일처럼 맞서며 10억씩 손해배상소송을 당하고, 매일 100만원씩 물어내라는 가처분신청을 당하면서 생업을 아예 포기하고 2년째 이렇게 공사를 막아서고 있겠습니까.

우리는 보상을 바라지 않습니다.

다만, 살던 곳에서 지금 모습대로 살다가 그렇게 죽고 싶습니다. 우리 자손들에게 아름다운 밀양의 땅, 농토를 물려주고 싶습니다.

전원개발촉진법이라는 법이 있다고 합니다.

토지 소유자가 원하지 않아도 전원개발사업으로 지정되면 우리의 토지가 강제수용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땅을 빼앗긴 우리가 채무자가 되어 법원으로 나가 재판을 받아야 하고, 공사방해로 국가재산을 침해했다고 소송을 당해야 합니다. 세상에 이런 법이 있습니까.

우리는 퇴직금이 없습니다.

오직 농토와 집이 전부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민들은 자식의 결혼을 시키려고 농협에 대출을 받으려 해도, 이제 대출을 받아주지 않습니다. 이미 대출된 돈을 빨리 상환하라고 압박도 받습니다. 계약 직전까지 갔던 토지거래가 파기당하는 일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우리 재산은 송전선로 아래서 모두 반토막, 반의 반토막이 났고, 아예 제로 상태가 되어버렸습니다.

우리는 전자파가 두렵습니다.

한전은 아무 걱정말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아무리 이야기해도 두렵습니다. 이미 만들어진 수많은 765kv 송전선로 경과지를 둘러보면서 얻은 확신입니다. 그들 주민들은 한결같이 송전탑 전자파 때문에 사람이든 짐승이든 살 수가 없어졌다고 하소연하고 있었습니다. 76만5천볼트 초고압 전류가 어떻게 건강에 아무런 해가 없을 수 있다는 말입니까.그렇게 안전하면, 한전 사장님, 지경부 장관님, 공무원님들 사시는 집으로 송전탑을 세우면 되지 않습니까. 왜 자꾸 우리 힘없는 밀양 사람들이 국책사업이라고 일방적으로 희생하기를 강요한다는 말입니까.

우리는 청와대, 지식경제부, 한전의 고위 정책결정자님들께 간곡히 호소합니다.

1. 지금 밀양 지역에서 강행되고 있는 공사를 중단해 주십시오.

2. 밀양으로 직접 와서 피해 지역을 둘러 봐 주십시오.

청와대와 지경부, 한전의 고위 관계자들께서 협의체를 구성하시어, 밀양지역을 방문하시고, 송전탑 경과지를 둘러보고, 왜 주민들이 이렇게 7년간을 싸워왔는지, 품에 유서를 넣고 다니며 목숨을 걸고 막으려 하는지 그 이유를 살펴 주십시오.

3. 우리가 요구하는 대안을 검토해 주십시오.

①송전탑 백지화, ②대안노선 검토, ③기존 송전선로 사용, ④초전도체 지중화 밀양시범구간 설정에 대하여, 제발 ‘안 된다’고만 하시지 말고, 이 절박한 대안들을 실질적으로, 투명하게, 검토해 주십시오.

저희는 여·야 대선주자님들과 19대 국회의원들에게 간곡히 호소합니다.

1. 개발독재시대의 유물, 전원개발촉진법을 개정해 주십시오.

2. 신고리핵발전소 5호기와 6호기의 증설 계획을 취소해 주십시오.

3. 공사를 중단하고, 주민과의 대화에 임하도록 중재해 주십시오.

이대로 공사가 강행되게 된다면, 주민들은 다시 좌절에 빠지게 됩니다. 이렇게 가다가는 정말 다시 무슨 사고가 일어날까 모두 두렵습니다. 우리 주민들이 눈물로 호소합니다. 제발 우리를 살려주십시오. 우리는 살고 싶습니다.

2012년 7월 23일
765kv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는
밀양시 4개면 경과지 주민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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