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오로 이후의 여성관 "남편에게 순종하라"

[정양모 신부의 복음과 세상 이야기]

2012-07-04     정양모

사도 바오로 사후에 쓰여진 여러 서간에 가훈(家訓, 가정 규범)과 교회훈(敎會訓, 교회 규범)이 나오곤 한다. 바오로의 가탁서간집(假託書簡集, 저명인사의 권위를 빌려 그 이름으로 집필한 서간―편집자 주; 콜로 3,18-4,1; 에페 5,21-6,9; 1티모 2,8-15; 티토 2,1-10)과 베드로 1서 3장 1-7절에 이러한 가훈 또는 교회훈이 나오는데, 그 가운데서 여성과 관련되는 글귀만 차례로 소개하고자 한다. 먼저 가훈에 대해 알아보겠다.

“아내 여러분, 남편에게 순종하시오”

“아내 여러분, 주님 안에서 마땅히 그래야 하듯이 남편에게 순종하시오(hypotassein). 남편 여러분, 아내를 사랑하시오. 모질게 대하지 마시오. 자녀 여러분, 모든 일에 부모에게 복종하시오(hypoakouein). 사실 이렇게 하는 것이 주님 안에서 맞갖은 일입니다. 아버지 여러분, 여러분의 자녀들이 기가 죽지 않도록 그들을 들볶지 마시오. 종살이하는 여러분, 모든 일에 세속 주인에게 복종하시오(hypoakouein).” (콜로 3,18-4,1)

▲ "나는 여자가 남을 가르치거나 남자를 다스리는 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여자는 조용해야 합니다."(1티모 2,12) 그림은 한스 큉의 '그리스도교 여성사'(분도출판사, 2011) 표지 일부.
콜로새서 3장 18절-4장 1절은 부부(夫婦), 부자(父子), 종과 주인이 지킬 법도를 가르치는 규범이다. 이와 유사한 가훈이 에페소서 5장 21절-6장 9절과 베드로 1서 3장 1-7절에도 나온다. 그 양식과 내용이 매우 닮은 사실로 미루어 일련의 가훈들은 당시 사회에서 통용되던 가훈정식(家訓定式, Haustafil Formel)을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콜로새서 집필자는 전수된 가훈을 인용하면서 “주님 안에서”(18.20절)를 삽입했다. 부부, 부자, 주종(主從)이 상하의 질서를 지키는 것이 주님의 뜻이라는 것이다. 주님은 질서를 원하시지 무질서를 원하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부인더러는 남편에게 순종하라(hypotassein, 직역하면 '아래 있다, 종속하다')고 하고, 아들과 노예더러는 아버지 · 주인에게 복종하라(hypoakouein)고 한다. 순종과 복종이라, 그 뜻이 서로 다를까? 의미상의 차이점을 강조하는 학설도 있으나(S. Spicq) 아무래도 기지를 지나치게 발휘한 것이 아닌가 한다.

끝으로 다른 신약성서 집필자들과 마찬가지로 콜로새서 집필자도 노예 제도를 당연시했음을 유념하라(3,22-4,1). 오늘날 현대인의 감수성으로 볼 때 노예제도가 인권유린인 것처럼, 남녀차별 역시 여성 인권에 대한 모독이다.

“남편은 아내의 머리입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두려워하며 서로 순종하시오(hypotassein). 아내들은 주님을 대하듯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시오. 남편은 아내의 머리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이신 것과 같으니, 그분은 그 몸의 구원자이십니다. 그리하여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순종하는 것처럼 아내들은 모든 일에 남편에게 순종하시오. 남편 여러분,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어 그를 위해 자신을 넘겨주셨던 것처럼 아내를 사랑하시오. ···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은 자기 아내를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고, 아내는 남편을 두려워하시오(phobein).” (에페 5,21-6,9)

에페소서 5장 21절-6장 9절의 가훈과 앞에서 다룬 콜로새서 3장 18절-4장 1절의 가훈은 그 구조가 몹시 닮았다(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녀, 종과 주인). 에페소서 집필자는 콜로새서를 참고하여 쓴 것 같다(R.Schnackenburg, Der Brief an die Epheser, EKK, Zurich / Neukirchen - Vlun, pp.26-30).

다만, 에페소서 필자는 콜로새서의 가훈을 단순히 베끼지만은 않고, 나름대로 보강하고 재해석했다. 구체적으로, 그는 구약성서를 인용하여 보강하고(에페 5,31=창세 2,24; 에페 6,2-3=탈출 20,12와 신명 5,16), 부부 관계의 표본으로 그리스도(머리)와 교회(몸)의 관계를 내세웠다(에페 5,21-33). 부부 관계는 그리스도와 교회 관계마냥 수직 관계라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1코린 14,34) 및 콜로새서 집필자처럼(콜로 3,18) 에페소서 집필자도 아내들에게 순종을 요구하고(hypotassein, 5,22), 나아가 남편을 두려워하라고 한다(phobein, 5,33).

“아내가 자기보다 연약한 그릇임을 이해하고 함께 살아야 합니다”

“아내 여러분은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시오(hypotassein). 그래야만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남편이라 할지라도 아내의 말없는 처신으로 설득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두려움으로(en phobo) 깨끗하게 행동하는 것을 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머리치장과 금패물과 옷치레 같은 겉치장을 하지 말고, 온유하고 정숙한 정신 같은, 썩지 않는 장식으로 속마음의 인간이 되시오. 이것이야말로 하느님의 눈에 귀한 것입니다. 이처럼 옛날에 하느님께 희망을 둔 거룩한 아내들도 자기 남편에게 순종함으로써 자신을 치장했습니다. 예를 들어 사라는 아브라함을 자기 주인이라 부르며 그에게 순종하였습니다. … 마찬가지로 남편 여러분은 아내가 자기보다 연약한 그릇임을 이해하고 함께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생명의 은총을 함께 상속 받을 사람으로 알고 아내를 존중하십시오. 그래야 여러분의 기도가 막히지 않을 것입니다.” (1베드 3,1-7)

위의 글에서 1-6절의 남편은 외교인이고, 7절의 남편을 교우이다. 여기에서도 부부 관계를 수직 관계로 보고 순종(1절)과 두려움(2절)의 덕목을 아내에게 요구한다. “아브라함을 주인이라 부르며 그에게 순종한” 사라를 아내들의 귀감으로 내세운다(6절). 남편더러는 “아내가 자기보다 연약한 그릇임을 이해하고 함께 살아야 합니다”라고 하는데(7ㄱ절), 이는 당시 사회에서 유행하던 가훈을 옮겨 쓴 것이다. “생명의 은총을 함께 상속 받을 사람으로 알고 아내를 존중하십시오”는 구원론적 관점에서 남녀 평등 사상을 드러낸 것이다. 다음은 교회훈에 관련된 내용이다.

“여자가 가르치거나 남자를 다스리는 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나는 남자들이 화를 내거나 말다툼을 하지 말고 어디서나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바랍니다. 마찬가지로 여자들도 단정한 옷차림에다 정숙하고 소박하게 단장하기 바랍니다. 머리를 야단스레 꾸미지 말며, 금붙이나 진주나 사치한 옷으로 단장하지 말고, 오히려 하느님을 섬기기로 작심한 여자에게 어울리게끔 선행으로 단장하십시오. 여자는 언제나 순종하며(en pase hypotage) 침묵 가운데(en hesychia) 배워야 합니다. 그래서 나는 여자가 가르치거나 남자를 다스리는 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여자는 침묵해야 합니다(en hesychia). 사실 아담이 먼저, 그 다음에 하와가 빚어졌습니다. 그리고 아담이 속은 것이 아니라 여자가 속아 넘어가서 죄를 범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여자는 아기를 낳음으로써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다만, 그들이 믿음과 사랑과 성덕에 항구하며 소박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1티모 2,8-15)

▲ "사실 아담이 먼저 빚어졌고 그 다음에 하와가 빚어졌습니다. 그리고 아담이 속은 것이 아니라 여자가 속아 넘어가서 죄를 지었습니다."(1티모 2,13-14) 그림은 윌리엄 블레이크의 '이브의 유혹과 타락'(1808).
티모테오 1서 2장 8-15절은 가훈이 아니고, 남녀가 주로 교회 모임에서 지킬 수칙을 적은 교회훈(敎會訓, Gemeindetafel)이다. 티모테오 1서 필자는 여자 교우들에게 교회 모임 때 침묵하라고 명한다(11절). 필자는 여교우가 교회 모임에서 “가르치거나 남자를 다스리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12절) 이런 지침은 코린토 1서 14장 33ㄴ-35절의 지침과 신통하리만큼 흡사하다. 필자는 남녀 관계를 상하 수직 관계로 보는 이유를 창세기의 인간 창조와 범죄 신화에서 찾는다. 곧, 남자는 여자보다 앞서 창조되었다고 하고(13절=창세 2,7.21-22), 아담은 범죄하지 않고 하와가 범죄했다고 강변한다(14절=창세 3,6에 대한 유다교 풀이). 그렇지만 여자는 출산함으로써 구원 받을 수 있다고 한다.

티모테오 1 · 2서와 티토서 등 사목 서간집 필자들이 경계하는 이단 사상은 초기 형태의 영지주의라는 설이 득세하고 있다(L. Oberlinner, Erster Timotheusbrief, HThK, Freiburg, 1994, pp.52-73). 티모테오 1서 2장 8-15절 역시 초기 영지주의자들을 의식하고 쓴 교회훈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초기 영지주의자들의 모임에서, 영지를 터득한 여자들은 가르치는 것을 즐긴 반면 출산을 기피했으리라는 느낌이 든다.

나이 많은 여교우들과 젊은 여교우들의 의무

“그대는 건전한 가르침에 부합하는 말을 하시오. 나이 많은 남자들은 냉정하고 점잖고 분별력이 있어야 하며, 믿음과 사랑과 인내심이 강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나이 많은 여자들도 마찬가지로 거룩한 봉사를 하는 이답게 처신하며 험담하지 않고 과음에 빠지지 않으며 선을 가르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러면 젊은 여자들을 깨우쳐, 남편과 자식들을 사랑하며 지각 있고 순결하며 집안일을 잘하고 선하며, 남편들에게 순종하게 할 수 있습니다(hypotassein). 그래야만 하느님의 말씀이 손상되지 않을 것입니다.” (티토 2,1-10)

티토서의 가탁필자(假託筆者) 사도 바오로가 티토더러 “건전한 가르침”(Hygiainousn diclaskalia)을 전하라고 한다(1절). “건전한 가르침”이란 사상적으로는 영지주의를 배척하고 구원의 복음을 신봉하는 것이요(11-14절), 윤리적으로는 각자 자기 신분에 어울리는 삶을 살라는 것이다(2-10절). 필자는 나이 많은 남자들(2절), 나이 많은 여자들(3절), 젊은 여자들(4-5절), 젊은이들(6절), 티토(7-8절), 노예들(9절) 순으로 타이른다.

이 가운데서 나이 많은 여자들에게 요구하는 것들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젊은 여자들의 귀감이 되도록 처신하라는 것이다. 젊은 여자들에게 당부하는 것 가운데는 “저희 남편들에게 순종하게 할 수 있습니다(hypotassein)”라는 문구가 돋보인다. 결론적으로 가훈이나 교회훈에서는 남녀 관계를 상하 수직 관계로 보고 번번이 여자더러 남편 또는 남자 교우에게 순종하라고 훈계한다(1코린 14,34; 콜로 3,18; 에페 5,22·24; 1베드 3,1; 1티모 2,11; 티토 2,5).

또한 아내는 남편을 두려워해야 한다(에페 5,33; 1베드 3,2). 남편은 주인이고 아내는 연약한 그릇이다(1베드 3,6-7). 여교우가 교회 모임에서 침묵을 깨고 “가르치거나 남자를 다스리는 것은” 용인되지 않는다(1티모 2,8-15; 참조 1코린 14,33ㄴ-35). 이처럼 사도 바오로 이후의 여성 차별은 더욱 강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정양모 신부

   

1935년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성신대학(지금의 가톨릭 대학교 신학대학)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했다. 1960년부터 1970년까지 프랑스, 독일, 이스라엘에서 유학한 뒤, 한국으로 돌아와 1970년부터 2002년까지 광주 가톨릭대학교, 서강대학교, 성공회대학교 등에서 교수로 지냈다. 2005년부터는 다석학회 회장을 맡아 다석사상을 널리 알리는데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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